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디모데 후서 4:1-8)

새벽지기1 2017. 3. 3. 11:23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는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는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責)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虛誕)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면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는 말씀이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라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옛날 성전에서 제가 드릴 때 불을 붙여서 제단에 부었는데 다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생명의 모든 것을 이미 주의 제단에 다 부었다. 그리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 내가 세상에 살날이 며칠 없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떠날 기약이 가까운 것을 인식하면서 이 말씀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제사 디모데에게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어느 서신을 보아도 은혜가 많지마는 특별히 디모데 4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읽기만 해도 깊이 우리의 심금을 울려 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마지막 날을 인식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옛날 내려오는 글 가운데 새가 죽을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줄을 때에는 그 말이 선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설교 제목을「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이렇게 잡았습니다. 아침 조반을 먹을 때 우리아이가 하는 말이 오늘 저녁 설교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잡았어요? 하고 묻기에 어떠냐고? 한, 아이 말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저녁 설교 문제가 좀 심각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 인생의 생활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지날 때에 심각한 일을 많이 당합니다. 우리 한국에서 된 일을 신물을 통해서 볼 때에도, 여러분도 다 읽으셨겠지만 경주에서 갑자기 우리 국군이 탄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떨어지는데 하필 국민학교에 떨어져 그 학교 네 교실이 다 부셔지고 거기 천진난만하게 공부하던 아이들 거의 20명이 죽고, 7, 80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또 얼마 전에 부산에서 갑자기 화재가 일어나 많은 집이 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세 명이나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제도 영락교회 장로님 가운데 한 분이 화재를 당했습니다. 방금 들으니 오늘 오후에도 교우 중 한 사람이 화재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불의의 사고가 언제든지 일어납니다.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남양 어떤 섬에서 갑자기 화산이 폭파되어 뜨거운 기운이 옆으로 빠지면서 거의 4만 명이 사는 도시를 휩쓸어 가면서 거의 전원이 일시에 죽었습니다. 이런 천재나 지변 이외에도 또 갑자기 일어나는 사고 이외에도 많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우리 한국도 점점 사고가 많아지지만 미국에서는 사고로 죽는 사람이 일년에 평균 9만 6천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점점 이런 사고가 우리 한국에도 많아질 것입니다.
천재 지변 이외에도 갑자기 우리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이 있습니다. 갑자기 심장의 마비 또는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습니다. 이 인간 생활은 심각한 생활입니다. 우리가 다 원치 않고 온 세계가 이것을 피하려하지만 원자전쟁 같은 큰 전쟁이 있어난다고 하면 '세계 인류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까'를 염려하며 삽니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생활이 어떤 생활이겠습니까? 매일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인 줄 알고 사는 생활밖에 더 지혜로운 생활이 없는 줄 압니다. 성경에도 야고보 4장에 그와 같이 기록하지 않았습니까.『네가 어떤 성에 가서 장사를 해서 일년을 유하며 이익을 많이 얻어 가지고 돌아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네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했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생활은 매일 매일의 생활이 나의 마지막 날로 알고 사는 그 생활이올시다.


여러분 오늘 저녁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살겠는가 생각해 보세요. 사실 우리가 다 이런 때를 한 번은 당합니다. 가만 보면 제가 매주일 매주일 설교할 때에 어떤 주일날 제 설교를 들은 교구 가운데 한 두 주일이 지나면 제 설교를 다시 못 들은 교우가 많습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설교가 나에게 있어 마지막 설교인지도 모르고 이 설교를 듣는 어떤 개인에 있어서는 오늘 저녁 이 설교가 마지막 설교가 될지 모릅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우선 하지 않을 것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지난 몇 주일 가운데 제 마음을 퍽 상하게 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 가까운 교회에 어떤 부부가 있어서 믿는 사람끼리 관력(官力)을 의탁해서 다른 편 사람들을 많이 불잡아서 가두었습니다. 같이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 일 가만히 생각해 볼 때에 저희들이 만일 오늘 사는 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죽기 마지막 날에도 이런 일 할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마지막 날인 줄 알았다면 그런 일은 안 할 줄 압니다.


만일 가룟 유다 가 죽기 전날 예수를 팔고 은 삼십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죽기 전날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만일 가룟 유다 가 다음날 자기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못 이겨 자기의 목을 매고 자살할 줄 분명히 알았다면 은 삼십 량을 받았을까요?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을 안다면 우리가 안 받을 돈을 받지 않을 줄 압니다. 또 제 생각에 이것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을 안다면 아마 가지 않을 데가 많은 줄 압니다. 누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북에 어떤 목사 한 사람을 찾아갔는데 불행히 찾아간 목사는 공산당 앞에서 앞잡이 노릇하면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을 다른 일을 위해서 찾아갔단 말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날 저녁에 애국 청년들이 그 목사님 집을 습격해서 그 목사는 죽지 않고 빠졌는데 찾아갔던 목사를 죽었습니다. 나의 매일 매일의 생활을 마지막 날처럼 생각하면 의심스러운 사람의 집에 안 갈 줄 압니다.


백림(伯林)이 점점 함락되어 갈 때 도망 갈래야 갈 수도 없고 마지막에는 자기 애인을 자살케 하고 자기도 자살한 히틀러의 최후가 얼마 전에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인데 소련에 잡혀갔다 돌아온 그의 부하가 말해서 온 세계가 히틀러의 최후의 비참하고 참혹한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히틀러가 10년 전에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로 살았다면 그리고 자기의 최후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 일생의 마지막 날로 알고 매일 매일을 산다면 우리가 하지 않을 것, 가지 않을 곳도 많고 조심할 것도 많을 줄 압니다.


또한 그 반면에 내가 오늘이 마지막 날로 알고 산다면 할 일도 많을 줄 압니다. 제일 먼저 내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자기의 죄를 회개할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조금 후에 내가 우리 주님을 만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내가 아직까지도 회개하지 못한 죄를 가지고 주님을 대할 것인가 생각하고 제일 먼저 다른 것 다 제쳐놓고 자기의 죄를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기는 믿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두어 두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늘 살 것 같아서 그냥 두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분 보면 임종시에 회개하지 못했던 죄 다 회개하고 임종하는 분 있습니다. 그런 분은 대단히 축복 받은 분으로 온전히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천당에 가는 것도 우리가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회개할 기회가 있어서 그랬지만 그런 회개의 기회가 없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면 그는 회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줄 안다면 조금도 가리는 것 없이 내 생활 어떤 면이든지 회개할 것은 온전히 회개할 것입니다.


만일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고 산다면 서로 회개할 줄 압니다. 대단히 섭섭한 말이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서로 외면하는 사람, 서로 말을 아니하는 사람, 한 교회에 다니면서 서로 얼굴을 피하는 사람 있고, 마음 가운데 화를 품고 원한을 품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때가 많습니다.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다 그런 것도 없어지고 그 자매나 형제나 서로 화평하고 세상을 떠날 줄 압니다.
제가 어느 곳 누구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잘 아는 곳에 잘 아는 목사님 가운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큰 교회 문제로 노회에 두 파가 갈려서 그 두 파가 오랫동안 분규하고 어지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한 파의 수령 격되는 분이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이 목사가 하나님을 대면할 준비를 할 때 가만히 생각하니까 자기가 동역하는 어떤 분에 대해서 마음 가운데 담을 막고 미워하는 마음이 양심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청해서 자기 잘못을 다 말하고 그 사람도 자기 잘못을 서로 말하고 서로 화목하고 그 후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줄 알고 매일 매일 생활한다면 성경의 말씀과 같이 분을 내어도 그 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않고 그 이튿날까지 오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 화목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제가 분명히 믿기는 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인 줄 압니다. 하지만 혹 어떤 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할뿐더러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 사랑하시겠지만 우리 하나 하나를 내려다보시고 기뻐하시는가? 생각해 볼 것입니다. 우리 형제끼리 서로 담을 막고 서로 외면하고 이와 같이 산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얼굴을 찡그리고 왜 애들은 이런가 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려고 하면 먼저 형제와 자매끼리 어떤 원인이나 무엇으로 담이 막혔든지 그 담을 헐고 온전히 화목 하는 사랑을 할 것입니다.


셋째는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로 알고 산다면 우리의 의무를 다할 줄 압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여러 가지 임무를 맡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어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으므로 여러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이 마의 마지막 날인 줄 안다고 할 것이면 그 의무를 더 충성스러이 할 줄 압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줄 안다고 할 것이면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다른 일 하지 않고 먼저 기도하고 성경 읽었을 줄 압니다. 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가족 기도회를 보았을 줄 압니다. 전에 내가 들으니까, 개천에 계시던 황 목사님은 내일이면 자기가 세상을 떠날 것인데 오늘 자기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제직도 다 모아서 예배 보면서 나는 내일 세상을 떠날 하나님의 지시가 있다고 하며 우리가 다같이 예배 보자고 하면서 이렇게 같이 예배보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런 분은 예외로 자기가 세상 떠날 것을 알고 가족 기도회와 제직 기도회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가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로 안다면 아무리 분주해도 마지막 날 기도회를 볼 것입니다.
또 내가 마지막 날인 줄 알고 그 날이 주일이라고 하면 아무리 세상에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제쳐놓고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 드릴 줄 압니다. 또 주님 앞에 예배할 때에 헌금하는 것이 있다면 또 특별히 일년 동안을 감사하는 감사절이라고 하면 마지막 헌금이니까 정성을 다해서 할 줄 압니다. 어떤 여인이 요한 웨슬리 목사에게 와서 묻기를『만일 목사님이 이 세상에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할 것이면 무엇을 하겠습니까?』하였습니다. 이 목사님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대답하기를 자매 님 내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지금 내가 오늘 하여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할 것밖에 없습니다. 하니까 이 여인이 놀랐다고 합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할 것이면 다른 것 다 치우고 조용히 집에서 기도하든지 하리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다가 내가 오늘 맡은 이 일밖에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로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토요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어제 토요일인데 여덟 시에는 우리 권사님 중에 한 분이 환갑이라고 청하니 내가 마지막 날이라도 환갑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 열두 시에는 우리 경로원 창립 기념일로 꼭 오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마지막 날이라면 창립 기념에 더 가야겠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하여야 할 일이고 오후 두 시에는 우리 교회 고 장로님의 아들 결혼식이 있는데 아버지도 없는데 꼭 가서 결혼식을 해 주어야겠어요. 이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마지막 날을 당해도 내가 할 의무를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 가운데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사는 지혜로운 방법은 우리가 무슨 일을 맡았든지 충실히 행하면 우리의 생활이 바르게 된다고 하는 말씀인 줄 압니다. 그리해서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매일 매일의 임무를 충실히 감당한다고 할 것이면 언제 하나님께서 부른다고 하여도 우리는 준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래 전에 책에서 읽었습니다. 청교도 시대에 영국에서 의회가 모였습니다 여러 가지 나라 일을 의논하는데 그 때는 신앙이 좋은 영국 사회인지라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을까 하는 말세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회로 모여 의논하는 가운데 갑자기 천지가 변하고 하늘에 이상한 징조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여기에 모였던 여러 국회 의원들이 천지가 심상치 않으니까 주님께서 재림할지 모르겠는데 주님이 재림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국회에 앉아서 있기만 하면 될 수 있는가 어서 폐회하고 준비를 하자고 어떤 국회의원이 말하니까 어떤 청교도 국회의원 한 사람이 일어서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 시간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할 것이면 주님께서 우리 국회에 임한다고 할 것이면 우리 국회의원이 여기 그대로 앉아서 우리가 여러 수천 수만 사람을 대신해서 하는 이 의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줄 압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 더 가까우므로 우리의 의무를 더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을 더 잘 이행할 것입니다.


넷째로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줄 안다면 글을 써 놓든지 말로 하든지 유언이 있을 줄 압니다. 우리가 몰라서 혹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혹 유언이 있는가 물으면 대개 없다고 합니다. 갑자기 우리가 세상을 떠남으로 별로 유언이나 유서가 없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미국 사람들 보면 나이 많지 않은 사람도 유언을 써서 봉해 놓고 이 다음에 죽은 후에 보라고 합니다. 아마 유언이나 유서 남기기를 원할 줄로 압니다. 가령 우리 가족에게 혹은 사랑하는 친척에게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 날인 줄 알면 꼭 무슨 부탁이 있을 줄 압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보셨습니까?


여러분 오늘 저녁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면 사랑하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무엇을 부탁하겠습니까? 아마 이런 이야기 저런 부탁 많겠지만 잘 믿는 부모라면 특별히 부탁을 할 것은 온전히 주안에서 믿음을 독실히 지키고 믿으라고 부탁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부탁을 할 것이면 우리의 매일 매일의 생활을 마지막 날로 산다고 하면 어떻든지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매일 매일 예수를 잘 믿으라고 권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국의 교회 혹은 우리 영락교회에 대해서 혹은 일반 교회에 대해서 무슨 남길 말이 있을 줄 압니다. 아마 그것도 여러 가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지만 보통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이라고 할 것이면 어떻든지 우리의 받은 바 믿음 위에 튼튼히 서서 진리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랑으로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도와주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할 것이면 우리가 매일 매일 이것으로써 외칠 수밖에 없을 줄 압니다. 또 우리 민족이나 국가에 대해서도 아마 남길 말이 있을 줄 압니다. 여러 가지 말로 남길 수 있지만 보통 잘 믿는 이들이 국가를 향해서 하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나라를 세우고 공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고 죄는 백성에게 수치를 가져오는데 공의로써 모든 걱정을 시행하고 어떻든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남북을 통일하고 민주주의 한국을 굳게 세워서 어떻게든지 자손만대에 축복 받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마지막 날 이런 말을 하게 된다고 하면 내가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 이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 가운데 확실한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세 가지 사실만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입니다. 이 세 가지만이 확실치 않은 까닭에 가장 지혜로운 생활을 언제든지 내가 마지막날처럼 사는 생활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자기의 밭에 곡식이 잘 되니까 스스로 하는 말이 이렇게 곡식이 잘 되어서 내 곡간이 적으니 어떻게 할까? 내가 곡간을 크게 짓고 이 모든 곡식을 내 곡간에 간직해 두자고 생각하고는 내 영혼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먹고 마셔라 네 창고에 먹을 것이 많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다시 찾으리라.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매일 매일이 나의 마지막날인 줄 알고 내가 바로 살도록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우리가 매일 매일 마지막 날처럼 산다고 장래에 대하여 전연 경영이 없고 전연 바라보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성 엘몬드와 같이 우리가 일하는 것은 영원히 살 것처럼 일하고 사는 것은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생활입니다. (1955년 11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