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영적 장성 (에베소서4:1-16)

새벽지기1 2017. 2. 28. 14:17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베드로 후서 3장 18절에도, 사도 베드로가『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권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들의 가장 위대한 투사인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꼭 같은 말로 권면했습니다.『오직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가라』 이 두 사도가 이 말씀을 권면할 때에 단순히 이론적으로 추상적으로 권면한 것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자기들이 친히 걸어온 경험이올시다. 자기가 이 말씀을 친히 쓸 때에도 그네들이 상식적으로 친히 노력하는 그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도 바울은 장성해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화해서 이방에 큰 사도가 되기까지에는 거기에 영적 장성이 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시몬이 오순절 아침에 3천여 명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회개시키는 위대한 사도 베드로가 되기까지에는 장성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파란 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마는 장성해서 오늘 우리에게 그 장성한 경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가 높이 솟아서 공중에서 넓은 날개를 펴는 것과 같이 우리의 신앙이 번성하고 레바론의 백향목(柏香木)이 높이 푸른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라서 높이 장성하는 것같이 우리의 신앙이 높은 곳을 향해서 장성하는 것이 우리의 이상입니다. 나무가 장성해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고 나무가 장성해야 꽃도 피고 나무가 장성해야 열매를 맺고 나무가 장성해야 재목으로도 쓸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도 어린아이로부터 장성하지 않습니까, 어린애가 갓난아기 그대로 있다고 하면 이쁘기는 이쁘지마는 부모는 실망할 것입니다. 아이는 커야 되는 것입니다. 몸도 크려니와 그 지혜도 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예배당에 와서 장성한 것을 복음서에 묘사한 것을 보면『키가 자라고 지혜가 자라매 하나님과 사람에게 고임을 보시더라』했습니다. 사람은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랍니다. 그러기에 심리학자들이 자연 연령을 말하는 외에 지력 적 연령을 말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25, 6세 낫다고 하면 누구나 키가 그만큼 자랐다고 해서 지력도 꼭 25, 6세 만큼 자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키는 그만큼 자랐지만 지력을 조사해 보면 12, 3세의 지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이런 사람을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나이 30세 가량 되었지만 그 심리를 보면 그 지력 적 열매를 조사해 보면 5, 6세 아이의 지력 이상 자라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천치 혹은 백치라고 합니다.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연히 연령도 있고 지력의 연령도 있는데 거기에 한 가지 연령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연령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영적 연령이 장성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하였으니까 어떤 분은 이것을 오해하고 우리의 신앙도 그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4장 12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했습니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 무사기하고 참된 방면, 거기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두 위대한 사도의 장성하라는 교훈을 토대로 해서 잠깐 생각함으로써 우리 신앙 생활에 은혜가 되기 바랍니다. 이미 읽은 대로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장성하라고 이와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잘라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장성하라고 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장성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1장 5-7절을 보면 어떻게 우리의 신앙 생활이 장성해야 될 것인가 하는 단계를 가르친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오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어떠한 것이 있어야 되겠다고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있어야 할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오는 은혜입니다. 먼저 이 은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 위에 덕을 더해야 되겠고 또 다시 그리스도에서 오는 지식을 더해야 되겠고 또 절제를 더하고 인내를 더하고 그 위에 경건(敬虔)을 더하고 그 위에 형제 화목을 더하고 맨 나중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더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장성하라는 이 말씀을 하실 때에 그의 머리 속에는 이 여덟 가지 은혜가 다 생각된 줄로 압니다. 이 여덟 가지 은혜 가운데는 믿음, 덕, 지식, 인내, 경건, 절제, 형제 화목, 사랑, 이 모든 것이 빠짐 없이 있어서 장성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은혜의 수가 다 구비해야 할뿐더러 은혜 가운데 장성하라는 말씀은 믿음 가운데서도 작은 믿음이 아니고 믿음 위에 더 믿음이 있고 더 튼튼해지면 장성해 진다는 것입니다.
덕도 작은 덕이 아니고 장성하라는 것이고 지식도 작은 지식을 그냥 가지고 있지 말고 지식도 장성하라, 절제, 인내, 마지막에는 사랑까지도 장성하라, 모든 은혜가 구비할뿐더러 하나 하나가 장성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장성하라는 말씀은 이 모든 은혜가 구비하여 장성할뿐더러 조화가 있어서 똑 같이 고르게 장성하라는 뜻도 있는 줄 압니다. 여러분 나무가 자랄 때에 한끝만 자라지 않고 모든 가지가 고르게 자라나야만 둥글고 아름답게 됩니다. 한 가지만 자라면 자라기는 자라지만 모양이 없습니다.


어린이가 자라는 것도 좋지만 사지백체(四肢百體)가 고르게 자라야지 어떤 아이가 머리만 자라고 다른 것은 트지 않으면 그것은 기형아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여러 가지 은혜를 받지만 모든 은혜가 고르게 장성해야 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열심은 있는데 지식이 부족하고 또 경건은 한데 사랑이 없고 어떤 한 방면만 있고 다른 방면이 없으면 이것은 역시 자란 것이 못 됩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구비하고 장성하는데 이 모든 은혜가 고르게 장성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결과는 이런 모든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고 구르게 장성하면 이것은 우리의 성품으로 나타나고 우리의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가깝게 되고 성경 말씀 그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장성하라는 말씀은 이 모든 은혜가 구비하고 조화 있게 장성해서 너희의 성품이 그리스도화하고 너희 생활이 그리스도화해서 마지막에는 장성한 분량이 충만 한데까지 이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여덟 가지 은혜를 말했는데 음악에도 여덟 가지 음계가 있지 않습니까, 이 여덟 가지 음계가 조화되고, 크게 낼 때 크게 내고 작게 낼 때 작게 내어 여덟 가지 음계가 고르게 잘 조화된다고 하면 그것이 합해서 아름다운 음악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이 여덟 가지 은혜가 구비하고 조화되고 장성하면 이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은 품성,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생활과 같은 생활,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은 음악을 이 세상에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라는 것입니다. 이미 은혜 가운데 지식이 포함되었는데 사도 베드로께서 다시 강조해서 아무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더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훈이나 그리스도의 단순한 모범만이 기독교가 아니고 그리스도 자신이 기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아야 기독교를 압니다.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인성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선재적 현상이 어떠하며, 그리스도교의 수립이 교리가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재림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모든 교훈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인격 내용 등의 모든 것을 신학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우리의 심령으로 그리스도를 알아야겠습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제하고 그리스도와 매일 매일의 생활을 구상해서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심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인내, 그리스도의 자비,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교훈이 어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높이 그 넓이 그 복음을 좀더 아는 자리에 나아가야 우리의 신앙 생활이 장성하여 집니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장성해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우리가 받게 되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장성해서 기독교를 알고 인정하는 그런 자리에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남한에 큰 복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 동포의 심령은 복음을 향해서 열러져 있는 줄 압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바로 전파만 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얼마든지 구원해 낼 줄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나 내나 아는 것처럼 이와 같이 큰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셨지만 이 문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데 두 가지 큰 장해가 있는 것을 압니다.
첫째는 우리 교계 안에 여러 가지 분파와 분쟁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신학적 논쟁과 분열은 우리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에도 있고 이 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쟁과 분열이 한국에서처럼 중상 모략 혹은 예배 볼 때 소동하고 예배당 쟁탈 싸움이 나고 이런 형태로써 이런 논쟁이 벌어진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한국 교인의 신앙이 이 여덟 가지 은혜를 고르게 받아서 우리의 품성이 기독교화 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혹 머리로써 예수를 믿었지마는, 어떤 방면의 은혜가 고르지 못해서 우리의 신앙이 품성 화하지 못하고 우리의 신앙이 생활화하지 못하여 교계의 분쟁과 분열이 이와 같이 전도에 방해되기까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장성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장성해서 그리스도의 품성화해야 되겠습니다.


둘째 방해는 지식의 결핍입니다. 벌써 몇 주간 전에도 포천(포천) 지방에서 안찰 해서 병 고친다고 하다가 사람이 죽은 일이 생겨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것을 우리가 압니다. 무슨 통일교회니, 무슨 집단이니 그런 사이비한 것들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의혹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한국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결핍입니다.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파악하지 못하므로 사람의 꾀임에 요동되고 여러 가지 미신에 빠지게 되고 그릇된 데로 따라가서 오히려 복음 전파에 큰 장해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장성해야 하겠습니다. 요사이 어떤 부흥회에 가보면 손뼉치며 찬송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어떤 방에서는 매주일 손뼉치며 찬송합니다. 어떤 방인가 하면 바로 여기 기도실에서 영아들을 모아서 찬송 배워 주면서 손뼉치며 찬송하고 저 베다니 이층에 유치부 아이들에게도 찬송 배워 줄 때 손뼉치며 배워 줍니다. 제가 오늘 아침도 유심히 바라보니까 어떻게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모르겠어요. 그것 좋습니다.
그러나 나이 40, 50이 되고 70이 된 할머니들이 손뼉치는 것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암만 보아도 아이들처럼 곱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럽지도 못합니다. 거기에 안된 일을 조금도 없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하여야만 은혜를 받는다는 심리는 유치원 아동의 심리입니다. 좀 장성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장성해야 됩니다. 한국의 교회가 70년이 되었습니다. 이 70년을 지낸 오늘 한국 교회가 좀더 그리스도의 은혜에 장성하고 좀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장성하여야 우리 한국 동포를 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장성할 수 있을까요? 장성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장성의 비결에는 장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장성의 법칙을 준행(遵行) 할 때에만 장성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성은 산 것만 할 수 있습니다. 죽은 것은 크지 못합니다. 나무도 살아 있어야 크고 아이도 살아 있어야 큽니다. 생명이 있어야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먼저 생명을 얻어야 장성할 수 있습니다. 2장 1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할 때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 우리 영이 죽었습니다. 아주 죽었습니다. 이 죽은 심령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죄악을 회개하고 완전히 성신으로 거듭나도 중생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그 때에야 장성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4, 5년 교회에 출석하지만 5년 전이나 5년 후에 비해서 여러분의 생활이나 심리 가운데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까? 그러면 과연 여러분이 중생 경험이 있나 찾아 보세요. 온전히 하나님께 회개하고 온전히 성신으로 거듭나면 살아있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살려면 영양을 주어야 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옥토에 심어야 되고 물이 있어야 되고 햇볕이 있어야 되고 사람으로 말하면 좋은 음식과 영양을 섭취해야 됩니다. 영양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궤휼(詭譎)이 없는 도의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도라는 말은 말씀이란 말이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섭취할 때에야 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 읽기를 힘써야 되고 성경 통신과를 해야 되고 공부 예배에도 참석해야 되고 매일 성경을 읽어야 되고 할 수 있으면 성경 학교도 가야 됩니다. 특히 가을은 등화가친의 계절이요, 책읽기에 좋은 때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성경을 좀더 읽어서 영양을 섭취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어서 영양을 섭취할뿐더러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직접, 우리가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양을 직접 섭취할 수 있는 줄 압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영양이 되고 성례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종교 서적을 읽는 것도 영양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좀 잘하려고 할 것이면 공부하여야 합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하니까 공부 안 하고 구원받으려고 합니다. 성경도 읽고 종교 서적도 읽고 성경 통신과도 공부하여야 우리의 믿음이 장성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기독교 진리는 물론 간단하지마는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로 공부해야 깨달을 것도 많습니다.


셋째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장성하려면 운동이 필요합니다. 어린애들이 난 후 2개월간이 제일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어린애들이 빨리 크는 데는 젖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운동도 잘 하여야 합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어린애들이 무슨 운동을 할까 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어린애들이 누워서 팔다리를 가지고 운동하는 것이 굉장합니다.
교육심리학자들이 얼마나 운동하나 실험해 보기 위해서 어린애가 같이 하루 종일 운동했다고 합니다. 해 본 결과 도저히 어린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어린애들이 아주 열심히 운동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력무력 자라납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신앙 생활도 운동해야 됩니다. 일하여야 됩니다. 설교를 들을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전도를 하여야 내 신앙이 큽니다. 심방을 받을 뿐 덜어 다른 사람을 심방 하여야 내 신앙이 큽니다.
우리 교회의 성가대를 통해서, 주일학교를 통해서, 각 구역 권찰(勸察)의 책임을 통해서, 여러 가지로 일하고 봉사하는 일 많습니다. 이와 같이 이 가운데 일할 것이 있는데 얼마든지 아직까지도 일하지 않고 구경만 하는 구경꾼 많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무슨 책임을 맡지 않는다고 하지마는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전에 도와주지 않던 사람을 도와주고 고학생 하나라도, 지나가던 거지 하나라도 도와주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좋은 사업을 도와주고 어떻든지 내 신앙 생활을 매일 매일 실행하는 사람이 영양을 얻어서 신앙이 자랍니다.


이렇게 생명이 있고 영양을 섭취하고 운동을 잘하면 자라는 것인데 이렇게 해도 병이 있는 사람은 자라지 않습니다. 병이 없어야 됩니다. 우리가 영양도 섭취하고 일도 하지만 신앙이 난쟁이와 같이 크지 못하는 사람이 이 가운데 있습니까?
내 스스로 살펴서 내 속에 숨은 죄가 없는가 찾아보세요. 내 속에 하나님과 나 만이 아는 죄가 없습니까? 내 속에 교만함이 없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내 생활 가운데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 안 돌려 준 것 없습니까? 스스로 살펴서 병 있나 봅시다. 이렇게 하면 내가 거듭나고 영양을 섭취하고 일하고 숨은 죄를 고치면 반드시 그 영혼은 장성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장성 안 하면 그 반대로 퇴보하고 마르고 위축합니다.
장성해야 내 영혼이 더 튼튼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집에서 좋은 재목이 되고 하나님의 가정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되겠습니다. 좀더 장성하는 우리 한국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가만히 여러분을 바라볼 때 산에 가서 모든 풀이 무성하게 자란 것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산에 가서 보면 모든 나무가 위를 향해서 자랍니다. 여기에 앉은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실상은 이렇게 앉았지만 위를 바라보고 자라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종려나무와 같이 레바론의 백향목 같이 장성해서 발육되고 번성해서 일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여러분의 인격과 신앙이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55년 9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