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강요2

[기독교강요](22) 성화(3.14~18)

새벽지기1 2017. 2. 28. 07:02


성도의 선행


1. [의와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

‘행위의 법이 아닌 믿음의 법’
A. “그리스도와의 사귐 없는 성화는 없다.” (3.14.4)
B.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히11:6; 롬14:23).
C. 믿음이 없으면 선행도 죄로 변한다(어거스틴).
D. 믿음과 무관한, 행위로 성취하는 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선행은 은혜다]
A. 택하심을 받은 성도만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는다(벧전1:2).

   순종은 은혜의 선물이다(3.14.1~6).
B. 성도도 범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의 중재로' 허물이 사함 받고 죄가 가려지는 은총이 평생 필요하다(3.14.9).
 

3. [오직 믿음에서 난 의]
A. 은혜는 칭의와 성화에 모두 관계한다. 양자를 분리하면 ‘불구가 된 믿음’만 남는다(롬3:22 주석).
B. ‘잉여행위’의 공로는 없다! 모든 일을 다 행한 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할 뿐이다(눅17:10).
   선행의 공로는 없다.


4. [믿음은 구원의 원인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을 빌리면, 구원의 동력인은 하나님의 사랑(성부의 은혜)이고,

   구원의 질료인은 그리스도 자신 혹은 그분의 죽음(성자의 공로)이고,

   구원의 형상인(도구인)은 믿음(성령의 조명)이며,

   구원의 목적인은 하나님(삼위)의 영광이다(요3:16; 롬3:23~26). (3.14.17,21)
 

5. 하나님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시되 성도의 행위를 ‘종속적 원인’으로 삼으신다.

   행위를 요구하시되 오직 은혜로 이루신다.


6. [선행은 선물이고 성화는 공로가 아니다]

   성도의 선행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그분의 선하심을 깨닫게 하며 소명의 표로서 그분의 택하심을 돌아보게 한다.
 A. (어거스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행을 주시고 그것을 '우리 것'이라 부르시며

    그것을 받아주실 뿐 아니라 그것에 상을 주겠다고 증거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약속에 감격해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도록(갈6:9; 살후3:13) 용기를 내며

    하나님의 큰 친절을 충심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

    행위에 참으로 칭찬할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다.”(3.15.3) 

    내 선행에 조금이라도 공로가 돌려질 수 있는 구원이나 상급은 없다.
 B. (어거스틴) “저는 제 손으로 한 일들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것들을 보시고 공로보다 더 많은 죄를 발견하실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 가지를 말하고 바라고 간구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제 속에서 제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을 보시옵소서.’

    저의 행위를 보신다면 주님은 그것을 정죄하실 것이지만 주님 자신의 행위를 보신다면

    주님은 그것에 면류관을 씌우실 것입니다.

    저에게 선행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주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3.14.19~20). 

    행위를 자랑할 수 없는 이유

     : 1) 무슨 선행이 있다면 그 안에서 자기 것은 조금도 없기 때문에,

       2) 이런 행위도 무수한 죄에 압도되기 때문에.


성화: 성도의 행위가 의롭다 함을 받음


7.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 않는다]

    믿음과 선행은 결합되어 있지만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으면 거룩함도 붙잡지 않을 수 없다.

    주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기 때문이다(고전1:30).

    성도가 그리스도의 의에 동참하는 것이 구원의 전 과정에서 역사하는 은총이다.

    그리스도를 나눌 수 없듯이(고전 1:13) 칭의와 성화도 나눌 수 없다. 칭의는 성화의 출발이다(3.16.1).
 

8. [율법의 약속은 복음 안에서 실현된다]

   법이 요구하는 의와 거룩이 은혜로 말미암아 신자들 안에 성취되게 하시는 세 가지 근거 (3.17.3)
  A. 하나님께서는 종들의 행위를 보시지 않고—그들의 행위는 언제든지 칭찬보다 책망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을 포용하시며 행위와 관계없이 믿음의 중재만으로 그들을 자기와 화해시키신다.
  B. 하나님은 행위의 가치 자체를 헤아리기 보다는

     자신의 긍휼과 선하심으로 그것을 자신의 영광의 자리로 끌어당기신다(3.17.3).
  C. 주님은 자신이 베푸신 모든 선하심을 자신이 받으실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심으로

     자신의 너그러움을 더하신다(3.17.5).
 

9. 오직 믿음으로 행위도 의롭다 함을 받는다(벧전1:17). (3.17.10).

  성도들의 행위가 의롭다고 간주되는 것, 즉 의로 인정됨은(롬4:22)

  그것이 그리스도의 완전함으로 덮이고 그분의 순결하심으로 깨끗하게 되기 때문이다.

  선행은 우리의 공로도, 의도 아니다.

  "선행은 의롭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즉 의롭게 되도록 여겨진다." (3.17.8).


보상의 약속


10. [행한대로 갚아주신다?(마16:27) (3.18.1)]

  신자들이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참여하게 되면 그들 안에 영원한 생명이 시작되고

  그들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날까지 그것을 완성하실 텐데,

  이 완성은 그들이 의와 거룩함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되는 것이고 참으로 그 자녀답게 되는 것이다.


11. [보상을 약속하시는 목적(3.18.4)]
   A. 선행에 대해서 보상을 약속하시는 목적은 다소의 위로로 육의 약함을 도우시려는 것이며

     우리 마음을 허영으로 교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B. 거룩한 생활은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게 하는 길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선택된 사람들을 인도해서

     천국을 엿보게 하는 길이라고 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12. 천국은 보상이나 삯이 아니라 자녀가 받는 기업이다(엡1:18). (3.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