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강요2

[기독교강요](19) 신자의 삶: 자기 부인(딛 2:11~14)

새벽지기1 2017. 2. 17. 08:51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그 성경적 근거


1.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1)성도의 마음 속에 의에 대한 사랑이 주입되고 확립되고

  2)성경에 나타난 삶의 규범을 통해 의에 대한 열심에 있어 방황치 않게 된다. (3.6.2) 


2.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레 19:2; 벧전 1:15~16)이

  신자에게는 의의 기초와 부르심의 목표가 된다.
 A. 그리스도의 구속이 이룬 거룩과 영광을 훼손하지 않고 살겠다는 생각(엡 5:23~33; 히 10:10; 고전 6:11,15; 벧전 1:15,19), 세속 욕망을 버리고 하늘을 동경함(골 3:1이하)
 B. "복음은 혀의 교리가 아니고 생명의 교리다.

  다른 연구 분야는 오성과 기억력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복음은 복음이 영혼을 전적으로 점령하고

  속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안주할 때 받아들여진다."(3.6.4)
  i. 약간의 배움(성경공부/제자훈련)으로 뭐가 되는게 아니다. 성령님께서 복음으로 온 심령을 사로잡으셔야 한다.
 C. 이 땅에서 복음적 완전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추구하고 분투할 목적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롬 12:1~2): 자기 부인


3. 전제1: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A. 그를 위해 살고 그를 위해 죽으라(롬 14:7; 고전 6:9)
 B. 내 이성과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뜻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주관하게 하라(갈 2:20).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님을 배우고 자기 이성에서 지배권을 빼앗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참으로 큰 유익을 얻는다." 


4. 전제2: “자기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속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을 구하라.”
"자신에 대한 근심 걱정을 버리라고 명령할 때에 성경은 소유욕, 권세욕, 명예욕을 우리 마음에서 씻어버릴 뿐 아니라 인간적 영예에 대한 야심과 갈망 그리고 그 밖의 더 깊이 숨어있는 독소들을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일생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상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충심으로 느낄 만큼 마음의 자세를 확정해야 한다. 그래서 그의 것을 모두 하나님의 결정과 판단에 맡길 뿐 아니라 하고자 하는 것까지도 양심적으로 온통 하나님께 맡길 것이다. 할 일이 무엇이든 항상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사람은 동시에 모든 허탄한 생각을 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다(마 16:24). 일단 이 자기 부인이 제자의 마음을 점령하면 그것은 우선 자만이나 교만이나 허식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탐욕이나 욕망이나 방탕이나 나약이나 그 밖에 우리의 이기심이 빚어내는 죄악들을 전연 허용하지 않는다(딤후 3:2~5). 반대로 자기 부인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을 때는 가장 추악한 죄악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횡행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보기에는 선한 것이 있다고 해도 타락한 명예욕으로 더럽혀진다."(3.7.2) 


5. 디도서 2:11~14에 나타난 자기 부인
 A. 자기 부인의 장애물/방해거리
 i. 불경건: 하나님께 대한 성실한 두려움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포함
 ii. 세상(육신) 정욕(요일 2:16; 엡 2:3; 벧후 2:18; 갈 5:16)
  B. 자기 부인의 세 가지 특징
 i. 신중함: 정절과 절제 뿐 아니라 세상 재물을 순결하고 검소하게 사용하며 빈곤을 참는 것
 ii. 의로움: 각 사람에게 그가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공정성의 모든 의무를 포함(롬 13:7)
 iii. 경건함: 세상의 불법에서 분리된 우리를 하나님과 결합시켜 참으로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 경외와 순종.
 C. 하늘에 있는 우리 기업이 없어지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하늘 영광을 추구하고 이 세상을 나그네 같이 살라.


6. 자기 부인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한다.
 A.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갈 6:9) 모두에게 예외 없이 선을 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 자체보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그 형상에 경외와 사랑을 표해야 한다.
 B. 특히 믿음의 식구들 사이에서(갈 6:10) 그리스도의 영을 통하여 중생하고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보도록 주의해야 한다.
 C. 주님은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하셨는데(마 5:44)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길 밖에 없다.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악의를 생각하지 않고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3.7.6)
 

7. 자기 부인과 하나님과의 관계
 A. 우리가 현세에서 평안을 누리려면 자신과 모든 소유를 주의 뜻에 맡기며

   우리 마음의 소원을 주께 일임해서 길들이며 복종시키도록 해야 한다.
 B. 재산, 명예, 권력, 재물, 나은 삶에 대한 우리 욕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지 않고서 어떤 다른 방법으로 번영하겠다는 욕망이나 희망이나 계획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 주께서 주시는 복에만 몸을 맡겨라.(3.7.8)
 C.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만 의지하는 사람은 일반인들이 미친 듯이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악한 술책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자기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이 잘 될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여길 것이고, 안 될 때 참고 견딜 것이다.

   그는 섭리 안에서 평안을 누릴 것이다. (3.7.9)


십자가 짐: 자기 부인의 일부—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8. 십자가는 우리로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믿게 만든다.

   특히 십자가는 우리의 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적극적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을 억제하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심히 무능함과 연약함을 증명하시는 것이다(시 30:6~7)." (3.8.2)
 

9. 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을 경험하는 기회와 장래의 소망을 준다. 

   "우리 자신의 힘에 대한 그릇된 과대 평가를 바로 잡으며 우리를 기쁘게 하는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십자가는 육에 대한 우리의 위험한 신뢰를 없애버린다.

   이렇게 교만이 꺾인 우리에게 십자가는 하나님만을 믿을 것을 가르치며

   그 결과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항복하지 않게 된다. 그뿐 아니라 승리의 뒤를 이어 소망이 생긴다.

   이는 주께서 약속을 지키심으로써 앞으로도 신실하시리라는 확증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만 가지고도 우리는 평소에 십자가를 질 필요가 얼마나 큰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3.8.3)
 

10. 십자가는 우리의 인내와 순종을 훈련시킨다.

   고난이 없으면 인내도 없다.

   십자가를 통해서 신자는 자기 경박한 생각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배운다.

   모든 일이 자기 소원대로 된다면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1. 십자가는 약이다.

   "한없이 풍부한 재산 때문에 방탕에 흐르지 않도록, 자신의 영예를 자랑하며 교만하지 않도록,

   그밖에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또는 운 좋은 일들로 거만하게 되지 않도록

   주께서는 십자가의 치료법을 적당히 적용하셔서 우리의 광분하는 육을 제압하시며 굴복시키신다." (3.8.5)
 

12. 십자가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계다.


13. 의를 위해 고통을 받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얻는다(고후 1).

   "주께서 가치있는 것으로 인정하신 일들을 현세의 허망한 일시적 유혹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을

   우리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3.8.7)
 

14. [기독교와 스토아 철학의 고난(인내)관]
  A.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슬픔을 표현한다.

    스토아철학이나 유교철학이 말하는 인내(인고)는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주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심으로써(마 5:4) 울음을 인정하셨고, 공포를 친히 느끼심으로써(마 26:37)

    공포가 다 회의가 아님을 보이셨고 친히 슬퍼하심으로써(마 26:38)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긍정하셨다.
 B. 고난을 참고 견딜 때 우리는 필연성에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유익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동안 우리가 자연히 그 가혹함을 느끼며 우리 마음이 아무리 아프더라도

    동시에 영적인 기쁨이 우리 마음에 가득할 것이다. 여기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는 기쁨이 없으면 감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께 대한 찬양과 감사는 유쾌하고 기뻐하는 마음에서만 올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마음을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통은 분명히 영적인 기쁨으로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3.8.11)
 

15. 현실의 슬픔과 현실의 인내는 서로 충돌한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할 때, 그에게는 공포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억지로 끌려갔을리는 없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공포를 극복하고 기꺼이/즐거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의 슬픔/공포는 현실의 인내/순종과 충돌하지만

    결국 순종과 인내로 주의 뜻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 신자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