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참 하나님, 참 사람 (히 2:10-18)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3. 13. 06:11

해설:

저자는 9절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라고 했는데, 10절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과 그분의 계획(“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 들이실”)에 어울리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영광에 이끌어 들인다”는 말은 “구원한다”는 뜻이다. 그 구원은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므로 “구원의 창시자”는 먼저 고난과 죽음으로 들어가셔야 했다. “고난으로 완전하게 하다”는 말은 “고난으로 구원을 이루기에 완전하게 하다”라는 의미다. “창시자”는 “길을 낸 사람” 혹은 “앞서서 이끄는 사람”을 가리킨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1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거룩하게 하다”는 죄로부터 씻음 받는 구원을 가리킨다. 구원하시는 예수님과 구원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 하나님께 속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특별한 아들이고 구원 받은 이들은 모두 자녀들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 받은 이들은 예수님의 동생들이 된다. 

 

이어서 저자는 시편 22편 22절을 인용한다(12절). 시편 22편은 지독한 고난 중에 올린 기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이 시편의 첫 절(“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을 기도로 올리셨다. 여기서 22절을 인용한 이유는 고난과 죽음을 통해 그분이 높임 받으셨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함이다. 13절에서는 이사야서 8장 17-18절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 받은 이들이 한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죄 가운데 있는 인간(“형제자매들”)을 구원하기 위해 죄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피와 살을 가졌다”(14절)는 말은 한계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15절) 위해서는 구원자 자신도 죽음을 겪어야 했다. 죽음을 겪어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14절)를 멸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을 몸으로 와야 했다. “모든 점에서”(17절) 사람과 같아져야만 했다. 그것은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셔서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18절) 시험 받고 고난 당하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었다. 

 

묵상:

대학생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려면, 초등학생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마을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려면, 건강한 의사가 감염될 것을 각오하고 그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죽는 줄도 모르고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을 살리려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불나방이 되어 그들에게 그 위험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자리에서 요술을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역사 안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되셔서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모든 유혹과 고난을 당했고 죽음의 문을 통과하셔서 우리를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vere deus)이며 ‘완전한 사람’(vere homo)이셨다”는 고백을 정통 교리로 고수해 왔습니다. 그동안 이 정통 교리를 거부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나사렛 청년의 몸을 잠시 빌려서 활동했다”는 주장(가현설, docetism)을 한 사람들도 있었고, “나사렛 예수는 탁월한 위인이었다”고 말하며 신성을 부정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공유하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9절)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렇게 하셔야 할 아무런 이유도, 의무도 없습니다. 인간 중에 누구도 하나님께 그렇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리라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택한 방법이며,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분은 죄를 택하여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낮아지게 하시고 죽음을 겪게 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진압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롬 5:8)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것은 신비를 품어 안는 일입니다. 삼위일체로 존재하신다는 것도, 성육신도, 십자가의 희생도, 부활도, 승천도, 성령을 통한 임재도, 다시 오심도, 새 하늘과 새 땅도 모두 신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저희의 이성과 경험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들을 보면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저희는 겸손히 고개 숙여 그 신비를 품어 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은혜와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