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저자는 앞에서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높은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므로”(1절)는 1장에서 입증한 내용의 결론이다. “들은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킨다. “굳게 간직하여”는 의식적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을 의미한다. “빠져드는”으로 번역된 ‘파라레오’ 동사는 부두에 묶어 놓은 배가 거센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는 상황을 묘사한다. 히브리서 독자들 중에는 믿음에서 떠내려갈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2절)은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시내산 이야기에서 천사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세는 죽기 전에 기도하면서 “수많은 천사들이 그[주님]를 옹위하고, 오른손에는 활활 타는 불을 들고 계신다”(신 33:2)고 회상 했다. “모든 범행과 불순종하는 행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범한 것 각각에 대해 마땅한 처벌(“공정한 갚음”)을 정하셨다.
천사들을 통해 주신 율법이 이렇게 귀중하다면, 천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으신 아들을 통해 주신 말씀은 얼마나 더 귀한지 생각해 보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도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얻은 구원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3절)이라고 표현한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구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소홀히 하다”는 “무시하다” 혹은 “하찮게 여기다”로 번역할 수 있다. 천사를 통해 주신 율법을 범하는 것에도 벌이 있었다면, 아들을 통해 주신 복음을 하찮게 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에는 얼마나 더 큰 벌이 있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안겨 주신 구원의 복음은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것이다. 네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그것은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며, 둘째,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이다. “그것을 들은 사람들”은 사도들을 가리킨다. 셋째, “하나님께서도 표징과 기이한 일과 여러 가지 기적을 보이”(4절)시어 확증해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기적을 가리킨다. 넷째,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의 선물을 나누어 주심으로” 증언해 주셨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짜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는 네 겹의 동아줄과 같다. 이 줄을 붙들고 있으면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밀려 떠내려가지 않는다.
묵상:
히브리서 저자는 나중에 믿음에 대한 유명한 정의를 남겼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믿음의 대상은 “바라는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나 불신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도 “핸드폰을 어디에 두었더라?” 하면서 찾아다니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보이는 것도 그런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저자는 믿음이 식어지고 회의감이나 불신에 빠지는 것을 “떠내려 가는 것”(1절)이라고 표현합니다. 항구에 단단히 묶어 놓은 배가 풍랑에 휩쓸려 떠내려 가는 것을 상상하고 한 말입니다. “떠내려 가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완전히 멀어지기 전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해야 합니다. ‘프로세코’는 “단단히 잡다” 혹은 “바짝 잡아당기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에 우리 자신을 단단히 잡아매기 위해서는 든든한 동아줄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우리의 믿음을 잡아 맬 네 개의 동아줄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 그리고 복음을 통해 얻은 구원은 1) 주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 것이며, 2) 사도들이 전해 준 것이고, 3) 여러 가지의 이적과 기사로 증명되었으며, 4) 성령을 통해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의문이나 회의감이 들 때, 이 네 가지의 증거를 기억하면 떠밀려 내려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도:
주님, 저희의 믿음을 네 개의 동아줄로 단단히 동여매 주십시오. 저희의 귀는 너무 얇고 저희의 마음은 너무나 어리석고 저희의 의지는 너무나 약하여, 작은 의심에도, 사소한 시험에도 흔들려 미끄러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쳐 선물로 주신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저희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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