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앞에서 처음에 인용한 보른캄의 말로 돌아가겠소.
“믿음이라는 말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가장 심오한 신비에 접하게 한다.”
가장 심오한 신비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오?
이런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소.
개념화할 수도 없소.
그것은 가까이 갈수록 빛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둡소.
한자로 현묘(玄妙)가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소.
성서는 그 세계를 가리켜 영광이라고 말하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말 이외에는 전달할 방법이 없으니
일부분을 말로 설명해보겠소.
시간을 생각해보시오.
역사를 생각해보시오.
지난 1천년의 역사는 분명히 세상에 있었소.
우리의 역사 문헌이 그것을 증명하오.
그렇지만 그게 얼마나 확실한 건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소.
1억년의 시간도 한 순간인데 5백년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요.
지금 우리가 삶을 생생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5백년이 한 순간으로 지나간 것처럼 지금 우리의 삶도 순식간이오.
이것을 실제로 살아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겠소?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소.
그러니 신비롭다고 말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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