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겟세마네(2)(막14:33)

새벽지기1 2024. 2. 23. 04:30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내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막14:33)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렇게 세 명의 제자들만 따로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좀더 깊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지간입니다. 이들 세 명만 예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들은 막 9:2 이하의 ‘변화산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그곳에 나타난 엘리야, 그리고 모세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도 새로운 형태로 변화된 상태였습니다.

 

겟세마네와 변화산은 동일한 주제입니다. 세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특별한 신적 계시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역사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했으며, 겟세마네에서 인류 구원을 향한 기도 현장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 명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구원과 계시 사건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세 명의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고 슬퍼했다고 합니다. 공포와 불안입니다. 예수님에게 사용된 이 단어는 시편에서 사용되는 언어라고 합니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시 31:10) 뼈가 쇠할 정도의 공포와 불안을 가리킵니다.

 

공포와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까요? 일리가 있긴 합니다. 죽음을 육체의 감옥에서 영혼이 해방되는 사건으로 본 헬라 전통과 달리 유대적 전통에서 죽음은 그야말로 파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죽음 자체를 공포와 불안으로 받아들였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웬만한 정신적 경지에 오른 사람들도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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