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고귀한 낭비(7)(막14:6)

새벽지기1 2024. 2. 13. 06:3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14:6)

 

어제 묵상에서 마지막으로 말씀드린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초월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 초월은 내재와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한다는 기독교의 신론에 근거해서 본다 하더라도 초월 개념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초월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고귀한 낭비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생명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혹은 우리의 의로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생명과 의는 우리가 생산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것은 기껏해야 시간의 연장이거나 상대적인 만족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에 참여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을 초월해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야겠군요. 중학교 3학년 한 학급이 학기말 시험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고등학교 진학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학생만은 그 결과에 대해서 무심합니다. 왜냐하면 중학교를 졸업하면 곧 가족과 함께 모두 먼 나라로 이민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이 학생은 학기말 시험에 초월해 있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은 전혀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떠나야 할 사람과 비슷한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자를 받은 겁니다. 신약성서는 모두 이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비록 일상에 의해서 흔들릴 때가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초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초월적인 신앙만이 우리로 하여금 고귀한 낭비의 신비와 그 능력을 알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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