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고귀한 낭비(5)(막14:5)

새벽지기1 2024. 2. 13. 06:31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막14:5)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 붓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의 논리는 표면적으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입니다.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게 좋다고 말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을 오늘의 화폐 가지로 환산하면 2천 내지 3천만 원입니다. 이렇게 비싼 향유를 그냥 쏟아버린다는 건 그런 합리적 휴머니스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들의 주장이 옳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인간다운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합니다. 이런 이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비인간적인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복지 문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나라도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끌어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위해서 시민 각자의 투쟁이 필요합니다. 위 구절에 나오듯이 세금을 허비하지 않도록 감시해야합니다. 우리처럼 신앙의 관념화와 제도화에 치우친 교회에서는 이런 도전들이 훨씬 강력하게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은 늘 그런 합리적 도덕성으로만 재단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 복지와 역사 진보로만 인간의 삶이 성취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 세상이 곧 하나님 나라와 일치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우리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선물을 받으려면 이런 도덕주의를 넘어서는 파격이 필요합니다. 고귀한 낭비 말입니다.

 

기독교 역사에도 수도원 전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도승들은 영성 훈련을 위해서 자기 인생 전체를 바쳤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비싼 향유를 부은 여인과 비슷한 행동입니다. 이런 고귀한 낭비야말로 하나님의 생명을 맛본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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