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고귀한 낭비(8)(막14:7)

새벽지기1 2024. 2. 14. 05:40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막14:7)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을 책망한 사람의 논리는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게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위 구절에서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제자들과 늘 함께 하지만 주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는 말씀이 교회 현장에서 왜곡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별로 시급한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주장은 잘못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유대인들에게서 아주 중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전통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그대로 전수되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에서 초기 기독교가 구제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구제활동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조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 함께 하듯이 그들을 향한 구제도 항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의 가능성은 위 구절에서는 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이 대립되어 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가난한 자의 구제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일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배와 삶이 일치하듯이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입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은 구제를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예배만 과잉으로 나타나고 구제가 없다면 건강한 예배라 할 수 없겠지요.

 

문제는 예수님을 예배해야 할 그 자리와 그 순간에 구제를 거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그 순간에 휴머니즘을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자리와 순간이 있습니다. 위 구절에서 ‘지금’은 예배해야 할 순간(카이로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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