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깨어 있으라(3)(막13:35)

새벽지기1 2024. 2. 9. 0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13:35)

 

예수님의 비유가 계속됩니다. 종들이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집 주인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주님이 언제 재림하실지 제자들이 모른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도 그들과 똑같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으나 언제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2절은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인 것은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 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큰지, 그 너머에도 무엇이 존재하는지, 창조의 단초인 무(無)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금 우리의 정체성이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궁극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들도 우리가 완전히 아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사물이 왜 고체, 액체, 기체로 구성되어있는지 모릅니다. 물은 왜 0도에 얼고, 100도에 끓을까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앵두나무도 있고 토끼는 있는데, 왜 앵두나무와 토끼 중간 쯤 되는 것을 없을까요? 그래서 하이덱거는 “왜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하고, 무는 더 이상 없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을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인식론적 단절이 있습니다. 이를 성서는 토기장이와 질그릇의 비유로 설명합니다.(사 64:8) 질그릇은 토기장이의 생각을 모두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피조물의 인식론적 한계는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은총이 아닐는지요. 창조주처럼 눈이 밝아지려는 욕망으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취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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