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깨어 있으라(2)(막13:34)

새벽지기1 2024. 2. 8. 04:56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막13:34)

 

위 구절에 따르면 제자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비유의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할 형편입니다. 그는 종들에게 각각의 일을 맡기면서 “깨어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초기 기독교에서 신앙의 중심축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는 기대도 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지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뭔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뜻일까요? 또는 예수님의 재림이 그들의 생각과 다른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런 질문은 신학적으로 복잡한 어떤 사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짧은 묵상의 자리에서는 더 길게 나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것보다는 재림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기대가 말하려는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그 중심은 아래와 같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는 생명의 완성입니다.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으로 그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체로 경험되었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은 아직 현실로 드러나지 않은 궁극적 생명의 세계로 올림을 받은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들은 공생애 중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다시 온다는 말씀을 말입니다. 그분이 와야만 생명이 완성된다고 그들을 믿고,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이런 사람은 깨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궁극적인 생명이 드러날지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인과 똑같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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