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14-15절: 기도가 끝난 후
사역: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해설과 묵상:
주기도를 소개한 다음, 마태는 용서에 대한 말씀을 하나 더 덧붙입니다. 이 구절은 주기도에 나오는 ‘자신을 위한 두번째의 기도’(12절)를 부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절의 기도에서도 그렇지만, 이 두 구절에서도 하나님에게 용서를 거래하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하나님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할 자격을 얻고, 그렇지 않으면 그 자격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너무 작게 생각한 결과로 생기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산다 해도 그분은 우리를 내치실 수 있습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 앞에 나라는 존재는 티끌만도 못합니다. 내가 고층 빌딩처럼 의를 쌓아 올린다고 해서 그분에게 미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어떤 선행도 하나님께 내놓고 대가를 요구할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반면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악을 행한다 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이 사랑하신다면 그분의 전적인 선택이고, 그분이 심판하신다면 그것 또한 전적으로 그분의 결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서 단독자로 서게 되면 두려워지는 겁니다. 나의 존재와 운명에 대해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그분의 처분을 따라야 하는데, 그분이 어떻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 상 나타났던 종교들은 결국 이 두려움을 해결하자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치성을 드리고, 값비싼 제물을 바치고, 때로는 자식을 죽여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전능자’의 횡포에 희생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종교는 이 점에서 특별합니다. 그분은 전 생애를 바쳐서 절대자의 ‘절대 사랑’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절대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셨고,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활짝 열린 두 팔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도, 한계도, 기한도 없음을 웅변으로 전하고, 하늘을 향해 견고하게 서 있는 세로대는 그 사랑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전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가장 먼저 무조건적인 용서로 다가옵니다.
제자는 그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 경험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지속되어야 합니다. 기도자는 그분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합니다.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한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를 꿈꿀 수는 없습니다. 용서 받은 자로서 용서하기를, 은혜 받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한 실천합니다.
이러한 ‘용서의 연쇄 반응’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오해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너희가 하늘 아버지께 용서 받았으니 너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여라”고 말씀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죄 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좀 더 강한 표현이 필요했습니다.
“기도는 기도가 끝나고 나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말로 퉁 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행하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을 기도로써 털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기도했다면, 기도의 자리를 떠난 후, 기도를 통해 간구한 일들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약속하고 도움을 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 된 본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그 일을 행하도록 도와 주시기를 구하고 그렇게 결단하는 과정입니다. 마태가 이 두 구절을 주기도 후에 편집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용서를 기도했다면 용서를 실행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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