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악인” 혹은 “포악한 자”(1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공격적인 언어입니다. 그들은 “뱀처럼 날카롭게 혀를 벼린” 사람들이며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을 품고 있습니다”(3절). 그들은 “혀를 놀려 남을 모함하는 사람”이며 “폭력을 놀이 삼는 자들”(11절)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악을 계획하고, 날마다 전쟁을 준비하러 모입니다”(2절). 그들은 “몰래 덧과 올가미를 놓고, 길목에는 그물을 치고 나를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습니다”(5절).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동일한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과거에 주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전쟁을 하는 날에” 그의 머리에 “투구를 씌워”(7절)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8-9절). 그들이 도모한 악이 오히려 그들에게 쏟아지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10-11절).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이 고난받는 사람을 변호해 주시고, 가난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분임을”(12절) 알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분명히 의인은 주님의 이름에 찬양을 돌리고, 정직한 사람은 주님 앞에서 살 것입니다”(13절)라고 고백함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묵상:
언어는 치유하는 약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생명을 해치는 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음 담긴 축복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위안과 용기와 소망을 주지만, 뱀처럼 날카롭게 벼린 혀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육신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흉터만 남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잘 아물지 않습니다. 아문 것 같다가도 다시 곪아 터지는 것이 마음에 난 상처입니다. 때로 마음에 난 상처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듭니다. 말로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그의 손에 칼을 쥐어 주는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삼사일언'(말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현대적 표현으로 하자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 철저한 ‘자기 검열’을 하라는 뜻입니다. 요즈음에는 속에서 나오는 감정을 여과 없이 말로 쏟아내는 것을 잘 하는 일로 여깁니다. 그로 인해 주고 받는 언어에 야만과 혐오의 비루함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거침 없이 조롱하고 모욕하고 혐오하는 ‘언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이기에 우리는 더욱 우리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엡 4:29) 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과학은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실제로 듣는 사람의 뇌에 영향을 미쳐 그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따라서 살리는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우리 자신에게 복된 일이고 이웃에게 평화를 전하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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