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새벽지기1 2019. 9. 13. 07:31


저격병이 총구가 긴 총으로 적군을 겨누고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전투기가 적군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진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둥근 기둥에 붙였습니다.
그러자 총구는 저격병 자신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고,

자신이 발사한 미사일은 자신의 전투기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기발하지 않습니까?

이제석이란 청년이 만든 이 광고로 그는 국제 광고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습니다.
이제석은, 뉴욕 언쇼 페스티발 최우수상, 광고계의 오스카상으로 알려진 클리오 어워드 동상,
미국 광고 협회의 애디 어워드 금상을 비롯, 국제 광고제에서 50여개의 상을 받은,
세계 광고계가 주목하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천재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전형적인 ‘루저’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만화만 그렸고,
중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는 일찌감치 포기한 불량학생으로 부모조차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4년제 대학은 나와야 할 것 같아 입시준비를 하였는데, 선택한 과목은 미술.
그래서 들어간 곳이 한 지방대학의 디자인과였습니다.
졸업은 하였으나 지방대학 출신에다 수상경력이 전무하므로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네에서 간판이나 현수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동네 이미지를 바꾸는 일도 의미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일하고 있는데
그의 자존심이 박살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네 국밥집 간판 수주가 동네 명함집 아저씨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순간 창피함과 함께 그의 마음을 찾아온 것은
“그래 아무한테도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결심이었습니다.

2006년 8월 가방 하나에 5백 달러만 달랑 들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거장을 만나 한수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입학한 곳은 실용미술을 가르치는 한 시각 디자인 학교였습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가까스로 마련하고, 가장 싼 방을 빌렸는데,
집주인은 명색만 집주인일뿐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이었고, 그에게는 무료급식소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거길 따라다니며 끼니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무료급식소에서 또 한방을 맞습니다.
“멀쩡한 청년이 왜 이런 곳에 드나드느냐?”는 자원봉사자의 말이었습니다.
그 이후 거길 가지 않았습니다.

굶으며, 핫도그로 끼니를 때우며 줄기차게 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공모전에 응시하는 일입니다.

돈도 줄도 빽도 없는 그가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가 걸려들었습니다.
2007년 수업시간에 만든 ‘굴뚝총’이라는 작품으로 원쇼 광고제에서 최고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학교당국은 지금까지 이렇게 큰 상을 받은 학생이 없었다며,
앞으로 공모전 비용은 모두 학교가 부담하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마음 놓고 공모전에 출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줄줄이 큰상을 받은 그는 유학 온지 10개월 만에 미국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에 스카웃되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중역들까지 모이는 회의에 참석한 직후였습니다.
틀에 박힌 따분한 이야기만 오고갔습니다.

중간에 전화가 온 양 가장하고 그 길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하였습니다.
단돈 5백 달러를 들고 찾아온 뉴욕에서 1년 반 만에 7만 달러를 받는 직장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운이 안 따라 준다고 하여도 10년 안에 전용기를 타고 다닐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말 행복하니? 네가 원하는 가치가 이거니?”
그는 그 질문에 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또 그만두고 이제석 광고 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좋은 광고란 사회와 개인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광고입니다.”
광고를 하는 이유를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는 적십자사,
사랑의 열매, 월드 비전, 풀뿌리 시민운동단체들의 광고기획을 돕고 있습니다.

이제석 씨는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표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의 삶은 언제나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