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 (롬9:30-33 이스라엘을 유기한 이유①)

새벽지기1 2019. 3. 26. 07:23

9

10

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

왜 이스라엘을 유기하셨는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바울의 고통과 근심(1-3)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4-13)

하나님의 주권(예정)(11-13)

하나님이 주권(토기장이 비유)

(14-24)

하나님의 주권과 이방인(25-29)

행위로 의를 구했기 때문!

(9:30-33)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

(10:1-15)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16-21)

이스라엘의 남은자의 구원(1-10)

이방인의 구원과 자만경고(11-24)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14)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약속(25-32)

이스라엘 유기의 기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2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의 변론)

10(일부 9)

본장은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율법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없이, 형식적인인 율법의 준수로 스스로 의를 세워 구원을 얻고자 한 형식주의을 지적하고, 유대인들이 결국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복음을 배척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했기 때문!

(9:30-33 이스라엘을 유기한 이유)


본문


30.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해석과 설명


9:30-33(원래 9장임에도 내용상 롬10장에 포함하여 정리하였음) 본문은 믿음으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를 얻었으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구원 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이해하지 못해 구원을 얻지 못했음(유기한 이유: 내어버려 두심)을 기술하고 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30-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 말은 이방인 가운데에서도 선택받은 자가 있는 반면, 이스라엘이 거부된 것은 저들이 믿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으로 항변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런즉은 바울은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이야기들의 결론을 진술하려는 것이다.

그 결론이란 한 마디로 행위로 를 얻고자 한 이스라엘은 의를 얻지 못했으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는 역설(paradox)이다. (the Righteousness)’의 특징은 바울의 복음이 오히려 의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the Righteousness)’는 행함이 아니라 믿음만으로 소유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의의 법, 즉 율법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율법의 본질은 외면한 채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준수함으로써 진정한 의의 법에 도달하지 못했다. 즉 율법 주의적 유대교는 구원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의 구체적 이유가 다음절에 제시되고 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32-33)

어찌 그러하뇨?’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율법까지 수여 받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적 질문에 제기될 것을 예상하고 본절과 다음 절을 통해 이를 해명하기 위해 어찌 그러하뇨?라는 말로서 독자의 주목시킨 것이다.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함과 같으니

여기서 이는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율법까지 수여 받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말한다. 바울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서에서 8:14절과 28:14절을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가(예수 그리스도)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유대인들)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8:1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28:14)”

바울은 하나님께서 직접 견고한 반석을 두셨다는 것을 확증하기 이사야서를 인용했다. 바울은 그 돌(반석)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즉 본문에서 반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직접 인용(시편 11822)하셨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2142)

바울은 본문에서 어떤 이들(유대인)에게 예수님은 거치는존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거치는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스칸달론이며, 지금 우리가 쓰는 스캔들이 거기서 나왔다.

바울은 고전1:23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대인에서 거리끼는 돌이었다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부딪힐 돌이며 거치는 돌이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하지만 그 돌이 결국 그들에게 심판의 돌(뜨인돌)’이 될 것이다.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2:45)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본장 전체의 결론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리>-성경에 나오는 돌!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돌, 반석, 바위는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벧전2:4)”

머릿돌(Capstone)

건축의 최종을 장식하는 돌을 말한다. 스가랴는 포로지에서 돌아와 여러 고난을 겪으면서도 제 2의 성전이 완성될 것을 격려하는 의미로 머릿돌을 언급하였다(4:7). 이 머릿돌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이기도 하다(21:42; 4:11; 2:20). 모퉁이 돌, 모퉁이 머릿돌을 참고(비전성경사전)

모퉁이 머릿돌(Capstone)

건물의 가장 중요한 돌로서 이 돌을 중심으로 벽을 쌓고 이 돌에 건축자의 이름을 새겼다. 시편 118:22에 나오는 모퉁이 머릿돌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는 말로 그들이 열방으로부터 버려진 돌과 같았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과 같이 소중하게 쓰신다는 것을 비유하여 쓰였다. 예수님은 시편 118:22모퉁이의 머릿돌을 자신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으로 인용하여(21:42-43) 예수님 자신이 유대인들에게는 버린 바 된 돌과 같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모퉁이의 머릿돌과 같은 분이심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비유하여 모퉁이의 머릿돌로 표현하였다(벧전 2:7). 모퉁이의 머릿돌은 안전, 수호, 토대 등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에 쓰였다(28:16; 51:26; 38:6). (비전성경사전)

모퉁이 돌(Coner-stone)

건축에 가장 중요한 기초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28:16) 두 개의 벽이 직각으로 마주치는 곳에 놓여 그 벽을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큰 돌을 말한다(38:6).

모퉁이 돌은 교회의 머리이자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을 비유한다(21:42; 4:11; 2:20).

(비전성경사전)

다듬지 않은 돌!-제단 되신 예수 그리스도!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27:6)”

뜨인 돌!-심판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2:45)”

보배로운 산 돌! 산 돌!-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1:4-5)“

건축자들이 버린 돌!-믿는 자달에게는 보배로운 돌이나, 믿지 않는 자들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버려짐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벧전2:7)”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고 사사 건건 진리에 대하여 충돌하게 되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밖음.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

 

교훈과 적용


산돌인가? 아니면 거치는 돌인가?

본문은 바울은 이제 지금까지 논의한 이야기들의 결론을 맺고 있다.

그 결론이란 한 마디로 행위로 를 얻고자 한 이스라엘은 의를 얻지 못했으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는 역설(paradox)이다.

하나님의 의가 오히려 의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한편 이스라엘은 의의 법, 즉 율법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율법의 본질은 외면한 채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준수함으로써

진정한 의의 법에 도달하지 못했다.

유대인들로서는 이러한 논리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32절에서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어찌 그러하뇨?’

이에32-33절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서 율법까지 수여 받고

이를 지키려고 애쓰는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

그분이 우리에게 둘 중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분의 대속적인 희생을 믿는 것은 구원하는 믿음의 토대(산돌)이든지

아니면 우리가 마침내 거절로 마치게 되는 하나의 거치는 가르침(거치는 돌)이 된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거치는 돌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산돌인가? 아니면 거치는 돌인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