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 (마7:24-27)

새벽지기1 2019. 3. 23. 08:22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

(7:24-27)


본문


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나의 이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서론


사랑하는 새내기 여러분!

오늘 이렇게 DFC공동체 안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대학 합격을 다시한번 축하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왜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질까요? 그것은 바로 기초가 잘못 되었거나 건물이 잘 못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기초를 든든히 세우는 일! 당연히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에서는 부실한 건축물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할 것은 건축물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기초! 인생의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특히,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새내기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건물이 잘 세워지도록 반석위에 집을 지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론

 

그러면 인생의 건물이 잘 세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1994.10.21. 오전740출근시간대 한강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사망 32, 부상 17명 차량: 6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식천(당시 46)씨는 하늘나라에서 보낸 딸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딸 연수(당시 16세 무학여고2)가 아침 등교 도중 성수대교와 함께 추락한 16번 시내버스 안에서 숨을 거뒀다는 비보를 들은 지 몇 시간 뒤의 일입니다.

빗물과 강물에 젖은 채 돌아온 가방 안에는 소소한 잘못으로 아빠에게 매를 맞고 눈물로 쓴 편지가 고이 접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저는 요즘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아빠가 저를 때리셨을 때 제 마음보다 100, 1000배나 더 마음 아프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빠! 저를 때리신 것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제 속에 있던 나쁜 것들을 때려서 물리치신 거라 생각하세요. 아빠, 저를 위해 한번 더 마음을 풀어주시지 않겠어요?“

이런 가슴 아픈 사건은 그 다음해인 1995 0629일 오후 557 다시 발생합니다. 강남에 있는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어 사상자 7백 여명과 수 백명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사고당시 백화점 안에는 고객 1천여명과 직원 56백명이 있었습니다.

벌써 이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픔과 상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동경에 국제 호텔은 미국의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는 사람이 건축했습니다. 그는 호텔의 공사를 맡은 뒤 그 기초공사를 하는 데만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매달렸습니다. 기초공사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만큼 돈도 두 배 이상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시간과 투자를 통해서 기초공사 하는 것에 대해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기초공사에 2, 나머지 공사에 2년이 걸려 결국 4년 만에 이 호텔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지어진지 52년이 지난 후 동경에 대지진(1923/사망자:143,000)이 발생했습니다. 이 대지진 때 많은 건물과 도로들이 파손되었지만 바로 이 호텔만큼은 그 안에 있는 것이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채 견고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후로 라이트라는 이름은 일본 건축계의 신화처럼 남아있습니다.

건물의 기초가 잘 못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인 마5-7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산상 수훈은 천국 백성들이 이 땅을 살면서 지켜야 할 기독교 윤리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그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먼저 본문 24-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기초를 반석위에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돌과 반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벧전2:4)”

그러면 신앙의 기초를 어떻게 반석에 세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라는 신앙 고백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이십니까? 그러면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혹시 그런 확신이 없다면 오늘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런 오해를 할지 모릅니다.

내가 왜 죄인이냐?’

충분히 그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란 소위 원죄를 말합니다. ‘원죄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유전 된 것을 말합니다. 마치 검은 콩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검은 콩인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지어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1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반문을 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교회 나가 예배드리고 있는데 그러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는다고 식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입양되어야 가족이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즉 교인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구원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내기 여러분!

인생의 건물이 잘 세워지려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세워야 합니다.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려면 먼저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바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의 약속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며(1:12), 천국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3:20)

오늘 저를 포함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의 건물이 잘 세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 ‘신앙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다윗이 아니라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울 왕조가 사라졌을까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이유는 사울의 신앙 부재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믿음으로 산 적이 없습니다. 신앙의 기초가 부실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비참하게 마쳤습니다. 역시 신앙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3년간 함께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동방의 의인이었으며 절대 신앙으로 살았던 욥이 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모두 잃고 자신의 몸까지 망가졌던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한 마디로 인생이 완전히 끝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도 인생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할렐루야!

저는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풍요로울 때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

또 하나는 극한 가난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

끝으로 유혹 앞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입니다.

사울은 왕좌에서도 신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가장 측근에 있었지만 역시 신앙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욥은 극한 고난 가운데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세운 인생의 건물도 무너지고, 가룟 유다의 인생의 건물도 무너졌지만, 욥이 튼튼하게 세운 인생의 건물은 견고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문제 많은 교회 중 하나가 바로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한다.

여기 어린 아이들은 미성숙을 말합니다. 만약 이 미성숙한 아이들을 잘 양육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날 우리 대한민국교회처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많은데 신앙 훈련이 안된 성도 때문에 우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인 저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신앙도 인격과 함께 자라야 합니다. 이것을 성숙 또는 성화라고 합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성숙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5:12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는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장성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는 아주 작은 일에도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어린 아이는 스스로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예수를 믿어도 신앙의 훈련이 안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내기 여러분!

우리 수원 DFC는 두 가지 사명을 가진 기독교 동아리입니다.

하나는 캠퍼스의 불신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에게 신앙 훈련을 시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욕심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청년들이 영적 전사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 훈련하는 사역입니다.

신앙 훈련은 핵심은 말씀 훈련이며 경건 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7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세속의 모든 것)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훈련)하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기 가지장들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신앙의 멘토가 될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분이 DFC 공동체 안에서 신앙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제자로 성장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의 건물이 잘 세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헌신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잠언3015-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새번역성 경)

거머리에게는 '달라, 달라' 하며 보채는 딸이 둘이 있다. 전혀 배부른 줄 모르는 것이 셋,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넷이 있으니, 곧 스올과 아기 못 낳는 태와 물로 갈증을 없앨 수 없는 땅과 만족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불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바로 헌신결핍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돌아 볼 것이 있습니다. 130여년 전 우리 민족에게 생명의 복음을 들고 찾아온 갓 대학을 졸업한 수많은 청년 대학생(선교사)들의 희생 말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복음의 통로로 살다가 청춘을 이 땅에서 바치거나 순교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을 향한 영혼사랑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빚진 자의 사명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민족 교회가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해외 선교사도 파견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득이 최근 자료가 없어서 7년전 자료를 인용하겠습니다.

2012 한국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1000명 중 크리스천은 172(17.2%)이었습니다. 이들 기독대학생 중 선교단체에 참여한다고 응답한 학생은 13명으로 0.8%에 불과했습니다. 기독 대학생 100명 가운데 불과 1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7년이 지난 지금 캠퍼스는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기독학생들 가운데 선교단체에 가입하고자 하는 사람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는 여기 참석한 학생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기쁜데 주님은 얼마나 더 기쁘시겠습니까?

여러분! 참된 신앙의 모습은 언제 나타날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도 아니며, 성경 공부할 때도 아닙니다.

그것은 헌신할 때부터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beforeafter가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재물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고독하게 살던 삭개오가 어느날 예수님을 만납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19:5) ”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날 삭개오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8)”

삭개오가 평생 모은 재물일 것입니다. 그토록 욕을 먹고 비난을 받으면서 애써 모은 그 재물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겠다고 합니다. 그 남은 돈으로 남에게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어떻게 삭개오는 한 순간에 그 모든 것을 놓아 벌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가지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서 할 수 있는 헌신과 봉사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시대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요즘 시대적 특징 중 하나가 혼밥, 혼술, 혼행입니다. 그리고 반려묘와 반려견으로 상징되는 반려 동물입니다. 이 두 현상이 이면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혼자외로움입니다.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쉴 새 없이 스마트 폰을 검색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게시물이 올라옵니다. 우리 캠퍼스에도 적지 않은 외톨이들 또는 정신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영혼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만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공허한 것입니다. 이들의 외로운 마음의 공간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가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에게 그냥 따뜻한 말이라도 걸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를 성령께서 예비 된 영혼에게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최고의 사랑이며 헌신입니다. 아무리 우리 시대가 영적으로 피폐했다고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예비 된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의 곁에 서 있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그러한 사명자로 살기로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저는 오늘 제가 존경하는 지인 한분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 분은 제가 대학 때 선교 동아리에서 알게 된 분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말 그대로 <아는 선배> 정도였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내가 15년간이 군복무를 마치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 분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수원지구 사역을 후원할게요

학생도 회관도 없는 황량한 개척지에서 그분의 이한마디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습니다.

그 날 이후 그 분은 매월 50만원씩 후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매월 70만원씩 후원을 하셨고,

또 몇년 후 100만원씩 후원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때는 매월 150만원씩 후원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려 20년간을 해 주셨습니다.

그 후원금을 모아 지금 센타 보증금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금액(거금)만이 아닙니다.

지난 20년간 매월 단 한 차례도 후원을 거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매학기 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수원지구만 후원해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외에도 수십 명의 국내외 선교사와 목회자를 매월 후원하셨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정작 당신은 지금까지 <월세>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해 여름 집에 갔을 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 거실에 낡은 선풍기 한대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요즘도 정확하게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우리 지체들에게 아침마다 말씀 묵상을 보내십니다.

이 또한 거의 단 하루도 거르지 않습니다.

그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분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배재철장로이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분이 왜 그런 헌신을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분이 <대학생 때 선교단체에서 받은 훈련> 때문입니다.

그 분 인생의 BCAD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분기점이 바로 대학 때 선교 동아리였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캠퍼스 선교에 20년간 올인하셨습니다.

저는 그 분의 인생 중 20대부터 60대까지를 본 사람입니다.

그 분이 세운 인생의 건물은 참으로 견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분이 세운 인생의 건물은

첫째,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새워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캠퍼스 선교단체에서 받은 신앙 훈련 때문입니다.

셋째, 아낌없이 주는 헌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 어떤 폭풍우가 흔들 수 없는 집!

그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집을 짓는 여려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