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나의 증인, 나의 종

새벽지기1 2018. 2. 10. 08:18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다” 하나님께서는 절망하고 좌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 내가 너를 양육하겠다. 내가 너를 인도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어떤 소문에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또한 열등감과 좌절감에 빠져있고 자존감이 망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런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약점이나 나쁜 점을 보시지 않습니다. 현재의 고통보다는 미래의 영광을, 현재의 악함보다는 미래의 선함을 보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을 보여주시며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매사가 잘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이 잘되면 저것이 어렵습니다. 삶에는 굴곡이 있어서 계속 이런 일들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굴곡이 있는 삶을 사는 백성들을 향하여 “걱정하지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택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네가 아무리 더럽고 형편없고 소망이 없어 보여도 나를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외면하지 않고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결론은 “너를 버리지 않겠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너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 몸은 상처투성이요, 세상에서 패배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너를 보배로운 존재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신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사명자를 부르시는 하나님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적인 단어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명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랑만 받고 사명을 받지 못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사명이 주어질 때 인간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격려하시고 사랑하시는 것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단어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을 일깨워주십니다. 증인과 종입니다.


10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크리스천의 삶은 증인의 삶이어야 합니다. 증인은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환된 사람입니다. 증인의 증언은 재판의 결과에 큰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매우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비전이요 미션입니다. 우리가 마귀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고 병과 절망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증인으로 서서 온 세상을 향하여 선포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을 증언했습니다. 삼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말씀을 들으며 살았던 그들은 예수님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지하실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던 온누리교회 초창기 12가정을 비롯해 현재 여러분들도 온누리교회의 산 증인들입니다. 일제 강점기, 6.25를 겪으신 우리 역사의 증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총소리를 듣고 자랐고, 공산주의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가난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피부로 체험했습니다.  


종과 증인의 삶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과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떻게 채찍에 맞고 조롱을 당하고 처절하게 못에 박혀 죽으셨는지를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았고 옆구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의 증인이었습니다. 구름타고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장면을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이외에 가장 탁월하게 예수님을 증거 했던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원래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예수님의 증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결혼도 가정도 직업도 집도 다 버리고 감옥을 집인양 들락날락거렸습니다.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 몇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넜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수많은 예수의 증인들이 역사에 남았습니다. 이 증인의 모습에는 종의 모습이 있습니다. 할 수 없어서 종이 되었거나 팔려서 노예가 된 사람은 불행하지만 스스로 종이 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로 종이 된 사람과 스스로 종이 된 사람의 인생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스스로 가난해진 사람,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는 사람, 그렇게 살면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살기로 결정한 사람은 다릅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고난 받는 종입니다. 이 종은 불평이 없습니다. 원망이 없습니다. 힘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죽습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불속에도 들어가고 물속에도 들어갑니다. 이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죽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억지로 하는 종, 할 수 없이 하는 노예는 가련하고 불쌍하지만 스스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충성하는 사람은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귀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 증인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후 말씀을 보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이들이 소경이요 귀머거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부르시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다른 하나는 이방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재판하십니다. 누가 진정한 구원자이냐, 이스라엘이냐, 이방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8절과 9절 말씀입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증인으로 불러들이고, 9절에서는 이방인을 증인으로 불러들입니다. 먼저 8절입니다.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여기서 백성은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눈이 있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증인으로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사실 나보다 하나님께서 답답해 하시고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이사야 42장 18절~22절입니다.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증인과 종으로 존귀하게 사용하려 했으나 그들의 불신앙과 오만과 부주의함 때문에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증인으로, 종으로 쓰려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쓸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만하고 교만하게 다른 곳에 가서 탕자처럼 산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다시 재판장으로 불러서 증인으로 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결정  


여기 귀머거리요 소경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끌어다가 증인석에 앉혀놓았습니다. 9절에 보니 이방인을 부르십니다.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이방인들에게도 증인을 세워서 이방신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이방신이 증언을 했을까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경이었고 귀머거리였지만 다시 이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운 이야기가 10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하나님은 마음에 몇 가지 결정을 하셨습니다. 첫째, 종과 증인으로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증인으로 소경과 귀머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데려와 보니 쓸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엉뚱한 짓만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은 “내가 너를 나의 증인으로 나의 종으로 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깨닫게 해주시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암도 주시고 교통사고도 나게 하시고 고난 속에 집어넣기도 하십니다. 이 모두가 증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종을 삼기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고 하나님의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말잘 듣는 충성된 종이면 참 좋겠는데, 말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을 증인과 종으로 삼으려니 하나님의 속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가 나를 알고 믿고 깨닫게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결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쓰겠다고 하십니다. 나이가 많든 병이 들었든 세상에서 실패했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의 종, 나의 증인으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증언의 내용  하나님은 이방인을 들어 쓰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꼬집고 맞아도 모르다가 어느 날 알게 됩니다. 안개 속에서 벗어난 것처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고 은혜를 받으면 모든 껍질이 벗겨집니다. 새로운 태양이 뜨고 새로운 세계가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내 안의 모든 세포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들이 해야할 증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유일한 구원자이시다’라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증언의 내용이 11~12절입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것이 증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증인이란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하나님만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당신을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겠다. 그분이 유일하신 분이구나. 우상이 아니구나. 점쟁이가 아니구나. 마술하는 분이 아니구나. 그분이 진정한 창조자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13절입니다.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참된 승리란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나의 구원이 완전한 까닭은 우리의 행위가 온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까닭은 우리가 실수가 없고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죄가 크고 실수가 많을 지라도 하나님의 거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능력에 묻혀서 우리가 다 거룩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원이 완전한 것은 우리의 행위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만든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이요 하나님께서 약속한 구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내가 좀 부족한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비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열정도 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여러분을 영광스런 증인으로 만들고 마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귀한 감동적인 종으로 세우시고 말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증인으로, 종으로 사용해 주시니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안심하고 당신 앞으로 나가오니

온전한 구원과 거룩 안에 우리를 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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