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목사·신학자 전유물 아니다"… 한국교회에 공부 바람
설 연휴 직후인 지난달 31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 새물결아카데미 강의실은 공부 열기로 후끈했다. 밝은 조명 아래 20여명의 수강생들은 ‘ㄷ’자 형태로 둘러앉았고 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수강생들은 볼펜이나 연필을 손에 쥔 채 강의 내용을 필기하거나 밑줄을 그었다. 강사로 나온 이재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가 설명했다.
“여러분, 종교개혁의 5대 솔라(Sola) 아시죠. 모두 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이 3대 솔라는 구원론의 중요한 체계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근거가 뭔가요. 오직 성경입니다. 이들 솔라는 독립된 개념이 아니라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이 네 가지는 개신교의 공통분모이기도 하고요. 여기에 5번째 솔라는 개혁주의 교회에서 더 강조합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입니다.”
수강생들은 이 교수의 설명에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이날 배포된 프린트물에 곧바로 밑줄을 쭉쭉 그었다. 노트북 컴퓨터에 강의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청년도 보였다. 강의는 새물결아카데미가 제공하는 기독교사상 시리즈 중 하나로 주제는 ‘종교개혁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가’였다.
수강생 정종욱(33)씨는 “교회에선 배우기 힘든 내용을 접해서 좋다. 종교개혁이 법률 분야에 끼친 영향을 알고 싶어 오게 됐다”며 “신앙과 직업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호사인 정씨는 특강이나 독서 모임에도 참여한다고 했다.
새물결아카데미는 2015년 10월 한국 개신교에 새로운 영적 신학적 목회적 활력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목회자 재교육을 비롯해 신자들의 기독교적 소양을 높이고, 젊은 세대의 도약을 돕는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인원 1500여명이 강의를 들었고 올해는 매주 320명이 강의를 듣고 있다. 수강생 분포는 일반 신자 60%, 목회자 40%로, 지적 갈증에 목마른 성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강의 주제도 다양하다. ‘맥북 100% 사용법’부터 시작해 ‘재미있게 공부하는 헬라어’ ‘정신질환과 신앙의 관계’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 ‘본회퍼의 그리스도론 강독’ ‘요한복음 성경공부’ 등 올해 계획된 커리큘럼만 22개에 달한다. 지난해 말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교계 안팎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 강의가 기존 신학교나 교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데다 지적 탐구를 추구하는 신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어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김요한 대표는 “아카데미를 찾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경우 한세대부터 한신대까지 다양하다”며 “이들은 세미나와 토론 과정을 거치며 상대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가까워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젊은층이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여기 오면 궁금한 것을 해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한국교회에 신학적 통찰과 인문학적 비평, 목회적 깊이를 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통성기도’ ‘경배와 찬양’으로 대표되는 한국교회의 영성이 감성에 치우쳤다면 상대적으로 약화됐던 지성의 영역을 복구하자는 몸부림인 셈이다.
한국교회의 아카데미운동은 1965년 고 강원룡 목사가 설립한 ‘크리스찬아카데미’가 그 신호탄이었다. 당시 크리스찬아카데미는 한국사회의 인간화와 양극화 극복,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문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 주요 이슈 연구, 새로운 지도력을 세우기 위한 중간 집단 교육을 표방했다. 크리스찬아카데미는 2015년 새롭게 출범해 ‘목회자 인문학’ ‘신학생 교육’ ‘평신도 아카데미’ 등을 키워드로 삼아 교회와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있다.
복음주의권에서도 다양한 아카데미가 출현했다. 두란노아카데미를 비롯해 에스라성경대학원, 기독교청년아카데미, 청어람아카데미, 기독연구원느헤미야, 현대기독연구원, 기독인문학연구원 등이 그것이다. 아카데미운동의 배경에는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신앙의 깊이와 지식을 추구하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지성적 신앙을 폄하한 것이 사실이다. “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많이 알면 머리만 커져 안 된다” “순종하는 믿음은 없어지고 교회 비판만 한다”는 식이었다. 목회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A교회 신자인 김모(30)씨는 “또래 청년들이 ‘교회 갈 때는 그냥 머리를 비우라’고 조언한다”며 “무조건 믿으라고 말하는 목회자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아카데미운동은 이 같은 현실을 극복해보려는 시도들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과거에 비해 고학력 신자들이 증가한 점과 교회마다 뿌리내린 성경공부와 QT 모임,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신학에 대한 욕구가 형성된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학이 더 이상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나 목사·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커진 것이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형원 원장은 “QT나 성경공부가 깊어지면 결국 신학적 문제에 부딪친다. 그런데 신자들은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고 그때마다 목회자에게 묻는 것에도 한계를 느낀다”며 “신학에 대한 욕구가 신자들 사이에서 공부의 열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미국교회 사례를 언급하며 신학 대중화를 강조했다. “미국 신학교는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목회학 석사·MDiv)뿐 아니라 다양한 공부 기회를 제공하면서 신자들에게 신학을 접하도록 합니다. 신학교 교수 중에는 목사가 아닌 사람도 많습니다. 실제로 저의 지도교수는 구약학자였는데 교회에선 집사였어요. 교인들의 신학적 수준이 올라가면 담임목사가 엉터리로 설교할 수 없겠지요. 신학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