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가 되면 요단을 건너게 하신다
광야생활은 길고 끝이 없을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마치고 요단을 건너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은 이루어질 날이 온다.
하나님의 약속을 나의 기업으로 인내와 믿음으로 받을 날이 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 사람의 방법으로 이를 이루고자 한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역사하는 분이시고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야(교회)생활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법도를 따라 사는 훈련을 하는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미끼 삼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세상 풍속 따라 사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시면서 세상 풍속을 경계하셨다.
(레18: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행하지 말아야 할 애굽 땅의 풍속과 규례는 무엇인가?
우상을 섬기고 거기에 절하고 세상 풍속을 따라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 풍속을 따라 공중잡은 자의 권세를 따르는 것이다.
행하지 말아야 할 가나안 땅의 풍속은 무엇인가?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교회안의 잘못된 신앙과 신학과 속임수들이다.
바울은 바른 교훈을 떠난 헛된 철학과 속임수들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예수님도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하고 하셨다.
항상 교회는 잘못된 교훈과 속임수들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제사장들이 말씀을 혼잡하고 미혹된 영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가나안의 풍속과 규례인 것이다.
가나안 풍속은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대세가 그러하기 때문에, 속기가 매우 쉽다.
성경과 신학적인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내용을 세상과 미혹의 영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저도 목회생활 10년 가까이를 이 미혹 속에 살지 않았나 돌아보고 있다.
사도와 선지자들 터 위에 세워진 바른 신학은 초대 교회 3세기 동안이고
이를 집대성한 사람이 바로 어거스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세 1000년 동안 말씀을 세상과 적당히 혼잡한 가나안의 신학이 지배하였다.
하나님께서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다시 순전한 말씀과 성령으로 바로 잡고
이어서 이를 약 2백년 동안 더욱 온전케 하고 실천하고 산 사람들이 청교도들이다.
(보수신학이라 하는 것도 말씀과 성령을 혼잡하는 면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신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하여 광야훈련을 받게 하신다.
교회는 광야 훈련을 하는 곳이지, 축복을 추구하고 축복을 자랑하고 키재기 하는 곳이 아니다.
(신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지 아니 사는지 시험하고 훈련하는 곳이 교회생활이다.
교회생활은 낮추기도 하시며 주리게도 하시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는 곳이다.
그런데 말씀으로 낮아지기 보다는 높아지기를 좋아하고
주리는 것보다는 풍요한 것을 추구하느라 광야생활을 다 채우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은 전혀 모르고, 떡 노래만 떡 자랑만 떡 추구에만 여념이 없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우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도 알아,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빌4:11-13).
바로 우리가 광야생활을 통해 배워야 할 비결이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든 풍족하게 살림을 늘리고 채우느라 매일 매일을 수고하고 세월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말씀보다는 떡으로 사는 줄을 아느라고 일생을 다 보낼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려면
예배를 사랑하고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과연 이를 위해서 하루에 아니 한 주간 동안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떡으로만 사는 줄 알고 일생을 보내다가 이스라엘처럼 망할 날이 오고야 한다.
일생동안 까닭이 없지 않은 징계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잠26:2-3)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고
성경을 항상 소지하여 다니고 시간 나는 대로 읽고 묵상하고 그대로 살기를 힘쓰시기 바란다.
또한 성경은 성경만 보아가지고는 어렵고 싫증이 나기가 쉽다.
좋은 경건 서적과 함께 읽어야 한다.
그러면 자극을 받게 되고 해석이 되고 말씀으로 사는 맛을 알게 된다.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려면 경건생활에 힘쓰시기 바란다.
그러면 때가 되어 요단을 건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 떡에 묻혀 살다가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2.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게 하신다
사람들은 광야생활도 스스로 힘으로 극복할려고 하고 요단도 스스로 건너갈려고 한다.
떡을 많이 가지면, 높아지고 풍요해지면, 건너가는 줄로, 건너 간 줄로 착각을 한다.
요단은 우리의 가진 것으로 건너는 곳이 결코 아니다.
높아진 벼슬로, 화려한 학력과 경력으로, 많은 부와 재물로 건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하시고 강하신 손으로 건너가게 하시는 곳이 요단이다.
홍해를 가름 같이 요단을 갈라 맨 땅을 밟고 건너게 하는 곳이 요단이다.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요즘은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않는 세대가 되고 말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 많은 기적을, 기독교 2천년동안 있었던 그 많은 기적들을 믿지 않는다.
오직 믿는 것이 내 가진 것, 눈에 보이는 것, 세상 풍속, 세상 가치관을 믿을 뿐이다.
믿음으로 사는 내 일생에,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시라.
부활과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실 때,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셨다.
그들도 성령이 부어지고 성령으로 충만해지지 전에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을 수가 없었다.
육신 덩어리들은 하나님의 강한 손과 기적을 믿지 못한다.
믿음이 작은 자들이 되지 말고 믿음이 크고 견고하고 강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너는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이 본문에 나와 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면 땅의 모든 백성들이 그분의 능력이 강하심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홍해를 마르게 함과 같이 요단을 마르게 하셔서 건너게 하셨다.
그것은 땅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 같으신 분이시고 오늘날에도 그같이 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요단을 강한 손으로 가르실 때 제사장이 법궤를 매고 요단을 밟게 하셨다.
제사장이 법궤를 매고 요단을 밟을 때, 하나님은 강한 손으로 기적을 행하셨다.
제사장이 법궤를 매고 요단 한 가운데 서 있을 때 백성들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
그리고 법궤를 맨 제사장이 뭍으로 첫 발을 내딛을 때, 다시 요단이 흐르게 하셨다.
광야생활을 훈련할 때도 법궤가 중심이고 그를 가르치는 선지자와 제사장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크신 손과 팔을 펴실 때도 항상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스스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시지만 광야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친 모세를 통해 하셨다.
광야에서 훈련된 제사장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 제사장은 부와 재물을 어깨에 맨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법궤를 매고 요단을 밟는다.
광야생활도 법궤,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 받고, 요단을 건너는 것도 법궤를 매고 앞세운다.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 요단을 건너려면, 나도 또한 법궤를 맨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요단을 건너는 기적의 현장 그림은 우리에게 그렇게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을 진정 살게 하는 것은 세상의 떡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아야 한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말씀이 능력으로 선포되는 예배와 멀어지게 만들고,
어떻게든 세상의 풍속에 빠져 말씀과 멀어지게 하느라 최선을 다한다.
이 사탄의 감언이설에 속지 마시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의 감동과 조명을 따르시기 바란다.
유혹과 타락은 사탄의 역사로 이루어지지만,
요단을 건너고 기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강한 손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광야생활을 말씀으로 성공적으로 마친 이들에게 하나님은 강한 손을 펴서 요단을 건너게 하신다.
내가 가진 것으로가 아니다. 말씀으로 훈련하시고 말씀으로 요단을 가르시고 건너게 하신다.
순전한 말씀의 법궤를 맨 제사장을 따라, 제사장이 되어, 요단을 잘 건너시기 바란다.
말씀과 성령의 훈련생활을 잘 마친 자에게 하나님의 기적으로 요단을 건너게 하심을 믿으시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심을 믿으시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요단을 건너는 때가 가까워 왔음을 예고하고 있다.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강하신 손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여호와의 손이 강하심을 알고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란다.
3. 이를 기념하며 영원히 경외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요단 강 바닥에서 열 두 돌을 취하여 건너간 길갈 땅에 세우게 하셨다.
대를 이어서 계속되는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함이다.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오늘도 그 하나님의 손이 강하심을 알고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맨 제사장을 통해서, 법궤를 맨 제사장에게,
요단 물을 밟게 하시고, 갈라지게 하셔서,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실 것이다. 이를 믿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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