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저주 받는 자, 복 받는 자 (렘17:5-11)

새벽지기1 2017. 11. 17. 07:01

 

1 육신을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 아닌 피조물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고 이미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자이다.

형식적으로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겠지만,

그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났고 그 마음은 온통 사람과 세상, 피조물로 가득차 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도 그러하다.

(마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과 먼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제사를 멀리한 적은 없다.

꼬박 꼬박 제사를 드리면서도, 율법을 읖즈리면서도, 그들의 마음은 콩밭(세상)에 가 있었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고서는 곧장 산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의 산당으로 달려갔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온통 세상과 우상으로 가득차 있었다.

복있는 자는 율법을 갖고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고, 율법을 듣고 행하는 자이다.

 

우리의 마음과 행실이 이중적이 되지 않도록 참으로 주의해야 할 일이다.

우리 마음은 고요하다가도 유혹과 시련의 풍랑이 오면 어떻게 요동칠지 모른다.

‘내 마음 나도 몰라요’, 요동치는 불신과 두려움과 악한 생각 앞에 내가 놀랄 뿐이다.

 

베드로는 자기가 주와 함께 목숨도 바칠 줄 알았다. 그래서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그도 죽음의 위험 앞에서는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말았다.

다윗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기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를 줄은 몰랐다.

한번 밧세바에게 쏠린 마음은 가장 충성스런 부하 장수를 비열하게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책망하기까지는 죄책감도 없었다.

 

부자가 손님이 오니까 가난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새끼를 잡았다고 했다.

‘그 사람은 마땅이 죽을 자’라고 했는데 다윗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진다.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겼은 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10)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지 않으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청교도 존 오웬은 그 자신과 동료 청교도 속에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도덕적 부패, 오만함, 외식주의에 대하여 경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혹은 칼과 같아서 고기를 자를 수도 있지만, 사람의 목을 찌를 수도 있다.

즉, 유혹은 유익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해악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다.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면서 주님을 유혹했을 때,

주님은 그 영광을 바라보고 만국을 고려하면서 머뭇거리고 서 있지 않았다.

오히려 주님은 지체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당신은 시험에 부딪쳤을 때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신앙으로 그 시험에 대처하라. 그러면 시험은 사라질 것이다.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결코 협상을 시도하지 말고 논쟁하려고도 하지 말라”고 하였다.

<신자 속에 내재하는 죄>라는 그의 책에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범하는 죄 가운데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불신앙이라고 지적하였다.

“죄가 습관이 되면 죄책감이 마비된다. 세상은 죄의 부끄러움을 앗아 간다.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매일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자신의 육적인 자아를 부단히 죽이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의 죄가 이리 무섭다.

죄에는 반드시 저주가 따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도이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다윗이 범죄한 후의 삶이 그러하였다.

칼과 간음이 그가 죽는 날까지 그의 집안 가운데서 떠나지 않으며 불행한 생애를 보냈다.

암논의 여동생 강간, 압살롬의 보복 살인, 압살롬의 반란, 세바의 반역, 왕위계승쟁탈전 ---

죄를 범한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사탄이 자리 잡은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죄는 사욕에서 시작을 한다. 그때 잡지 못하면 죄는 장성하여 사망을 낳고 만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롬6:12,13)

 

그 사망의 모습이 사막의 떨기나무의 모습이다.

떨기나무는 광야 황폐한 땅에서 나와 기력이 없고 애처롭고 쓸모가 없는 나무이다.

이 떨기나무의 모습처럼 그의 생애가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때 그때 응징을 안하시니까 안계신 줄 알고 여전히 육신으로 힘을 삼는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했다.

풀이 베이듯, 등불이 꺼지듯, 순식간에 그들의 존재가 사라질 날이 온다고 했다.

 

그의 힘이 되고 위안이 되던 것들이 다 없어질 날이 오고야 만다.

그 자신 또한 기력이 없어지고 낙심하여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짓밟혀질 것이다.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좋은 일을 나누어 가질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될 것이다.(그리도 좋아하던 것들이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아니하고, 의미도 보람도 생기도 희망도 없는 신세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왕년에 힘깨나 쓰던 사람들의 말로를 보면 이 말씀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된다.

(역대 왕과 대통령들, 사담 후세인, 카다피, 무바라크, 알 아사드 ---)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재물들로 마음과 환경을 가득 채우면 형통할 줄로 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이것은 알을 품으나 그것을 부화시키지는 못하는 자고새와 같다.

그 알들은 깨어지거나(욥 39:15) 내버려질(사 10:14)것이며 혹은 썩게 될 것이다.

부자는 재산을 모으기 위하여 온갖 수고를 다하며 알을 품듯이 황금알을 품지만

그것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하고, 마침내는 어리석은 자로 전락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된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내가 가진 것, 남이 가진 것만 믿는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해도, 보이는 것만 믿을려고 한다.

의인들의 잠깐의 가벼운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고 해도, 믿지를 않는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그러다가는 광야 간조한 땅의 떨기나무 신세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떡만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하신다.

때로는 낮추기도 하시며, 주리게도 하시며 이 훈련을 하는데도, 사람들은 믿지를 않는다.

성경에서 쓰임받은 사람들의 삶의 과정이 곧 나의 삶의 과정인 것을 믿지를 않는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의 훈련 과정과 복된 결말이

곧 내 인생의 거울과 경계로, 위로와 소망으로, 기록한 것인데,

내 인생을 그 방정식에 대입해서 풀어볼려고 하질 않는다.

 

하긴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다.

(눅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제발, 여러분의 인생에, 또 하나님께, 의문이나 토를 달지 말고

그들의 생애의 방정식에 나를 대입하여 풀고 위로와 소망을 굳게 붙드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의 복은 하나님의 때가 차고, 때가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믿음과 인내로 참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행 7장을 보니까, 스데반집사가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에서 모세의 때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그 때에” 모세가 났다고 했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다고 했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났다고 했다.

“사십 년 동안을”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했다.

 

“때가 차매”, “때가 이르매”에 하나님의 역사와 비밀이 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60:22)

 

그 때가 되면,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친 것과 같아서,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다윗의 생애의 결말이 그러하였다.

오랜 광야 훈련에 시달리고 쩔여서 시험이 들어가지고, 낙심하고 믿음을 다 팔아먹지 말고

끝까지 믿음과 인내를 지켜서,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은 항상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긴 자의 몫이다.

우리가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전능하시고 만왕의 왕이신 그분이 만유 안에서 위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그분의 계획 속에서 우리의 생애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 그분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환경이나 소유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떡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신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풀리지 않는 환경 때문에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우리가 말씀의 결실을 못맺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의 가시덤불 때문이라고 하신다.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힘을 삼고 살다가 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결과,

저주받고 비참한 종말을 고하지 않도록,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경고하신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의 복을 받도록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권고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