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표적은 거의 같은 의미이다. 기사는 이적과 같고, 기적적인 표징을 의미한다.
표적은 증거가 되는 표시이며, 기사와 같다.
표적은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는 목적에 초점을 둔다고 할 수 있다.
기사와 표적은, 주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증언하실 때와,
제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실히 증언해 주실 때, 두 경우에 이루어졌다.
어느 경우이든 기사와 표적을 앞세운 적이 없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된 적이 없다.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목적으로 구할 때 주님은 거절하셨다.
(마12:38-40)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막8:11-12)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믿지 않는 그들에게 표적을 앞세워 굳이 자신을 증거하실 필요를 느끼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에서 자연스럽게 필요에 의해 나타난 것이 기사와 표적이었다.
인격은 굳이 기사와 표적으로 증거하고자 할 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사와 표적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 기사와 표적은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이루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사와 표적을 자랑하거나 자기들의 능력인 것처럼 행세하지 않았다.
사탄의 종일수록 기사와 표적을 앞세워 사람들을 미혹하고자 한다.
기사와 표적을 앞세운 능력전도라는 것은 그래서 문제가 있고 그 연원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한국 교회를 휩쓸었던 빈야드나 G-12가 이런 행태를 보였다.
은사와 신비한 체험을 한다는 것을 앞세우는 것도 기사와 표적을 앞세우는 것과 같다.
기사와 표적은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인간의 속임수와 탐욕이 깃들게 돼 있다.
계시록에 보면, 사탄은 더 큰 능력과 표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하였다.
(계13:11-14)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많은 이적을 행한 선지자들을 모른다고 하셨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의 열매로 알 수 있다고 하셨다.
(마7:15-16)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열매로 그들을 알려고 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우선 능력(현상)에 압도되고 현혹되어서
그들이 참 선지자인줄 알고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과 행실을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만 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면, 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양의 옷 속에서 노략질하는 이리를 발견해 내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진리의 말씀보다, 기사와 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넘어가게 돼 있다.
말씀과 표적간의 관계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
두 사도는 기사와 표적을 앞세워 손님을 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고니온에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이를 보고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사도는 주를 힘입어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했다.
이에 주님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여 주셨다.
항상 순서는 말씀의 선포가 먼저이고, 주님의 주권으로 기사와 표적이 뒤따르는 것이다.
마가복음 마지막 절 말씀도 이와 같다.
(막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할 때, 주님이 함께 역사하셔서 표적이 따르게 하심으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주께서 확실히 증언하시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증언의 수단이 기사와 표적이지, 기사와 표적이 목적이 되거나 자랑이 아니다.
가장 큰 기사와 표적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거듭나고 회심하는 것이다.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한 것이지, 자랑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은 기사와 표적을 자랑한 적이 없다. 오직 구원하는 말씀을 전하는 것에 충실했다.
참된 부흥의 시대에 쓰임 받은 종들도 기사와 표적을 앞세운 적이 없다.
오늘날 잘못된 능력전도나 신비주의들은 이 순서가 뒤바뀌어서 표적과 현상을 앞세워 사기 치고
말씀은 왜곡되거나, 별 볼일 없는 치장걸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본다.
성령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거의 백프로가 잘못된 사람들이다.
참으로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은 부흥이니 뭐니해서 자랑을 하거나 요란을 떨지 않는다.
은사와 표적들을 앞세우는 것은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들은 조작을 서슴치 않는다.
그들은 많은 표적의 증거들을 내세우나, 그것들의 대부분이 거짓인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놀래서,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을 다 부정하는 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죄에 해당한다.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참된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증언하기 위해서
기사와 표적을 능히 행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그분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실 때 행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마음대로 조종(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구하고 기도하고 기대할 수 있다.
우리가 부흥을 구하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행해 주시고 이루어주실 때, 우리는 감사하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보여줄려고 하는 것은 사기치는 것이다.
말세가 될수록 이런 영적 사기가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 집회에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가고 그들의 책들이 수백 수천 만부가 팔리고 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나, 유명 신학대학 교수들이 추천서를 쓰고 직접 번역 출판하여 팔기도 한다.
기사와 표적,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사람들이 마치 자기 포켓에서 끄내어 자기 마음대로 나누어 주는 것처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하는데도 불구하고,
성경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마주하면 미혹되고 만다.
저도 목회 16년 하는 중 거의 10년 가까이를 이들의 손에 놀아났다.
로이드 존스 목사를 통해 청교도들을 만나고서야 이들이 거짓선지자들인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그들이 말하는 기사와 표적들에 현혹되고 있는지 모른다.
기사와 표적을 도무지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과 신정통주의자들은, 또 사람의 지혜로,
성경 말씀을 왜곡하고, 자기들의 사상을 그 위에 놓아 사람들을 편하게 하고 위로해 준다.
표적과 기사를 앞세우는 자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라.
(렘23:15-1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렘25:34-38)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평화로운 목장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
거짓 선지자들에게 더 이상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순전한 말씀을 버리고, 세상 지혜와 신비주의로 혼잡하여 성도들을 세상으로 끌어내린다.
사도 바울의 경고를 듣고, 우리는 순전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예수를 가장 잘 믿은 청교도들은 이 말씀대로 살았다.
그들이 사도들처럼 순전한 말씀으로 사역할 때 하나님은 친히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많은 기사와 표적으로 그 은혜의 말씀을 확실히 증언해 주셨다.
청교도들의 시대는 가장 핍박이 심하여 가장 사역과 삶이 어려운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순전한 말씀만을 전하고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그들 위에 임하셔서 많은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작은 자가 천이 되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이 되는 역사를 일으키셨다.
그런데, 그 뒤로 찰스 피니를 위시한 거짓 선지자들이 인위적으로 가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교인들을 많이 모으고 교회들을 세웠지만, 그들은 알곡이 아니고 가라지였을 뿐이다.
오늘날 전도방식은 가라지도 좋다. 많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편법들이 등장하고 성령의 역사가 없는데도 그들은 구원을 조작한다.
속아 넘어가는 영혼들이 불쌍할 뿐이다.
쉬운 구원과 쉬운 축복과 형통의 약속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말씀이 순전하지 않은 곳에 성령의 역사, 기사와 표적은 있을 수 없다.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역사이고 속임수이다.
그런 기사와 표적을 앞세우고, 위로와 평안만을 가르치는 곳에, 말씀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순전한 말씀이라는 시금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며
다 지켜 행하는 것을 우리의 최우선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과 형통이 있게 될 것이고, 기사와 표적이 하나님의 역사로 있게 될 것이다.
순전한 말씀으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결한 삶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순전한 말씀이 있는 곳에 자기 은혜의 말씀을 확실히 증언해주는 기사와 표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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