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 물음 안에, 예루살렘 멸망과 주님의 재림과 세상 끝이 하나로 얽혀 있다.
이 세 가지가 24장 가운데 얽혀 있어서 그것들을 정확하게 분리하고 풀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분명한 사실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고 있으며
이 24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먼저, 유대인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 똑같은 강조점을 가지고 있다.
즉, 전자는 후자를 상징한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절)
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멸망의 예언은 말씀하신 약 40년 후에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다.
우리 주님의 예언이 아주 작은 것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음을 뚜렷하게 증거해 준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던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멸망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다른 어느 도시도 이처럼 고통 받지는 않았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어떤 나라에 임한 재앙도
이 유대인들에게 일어났던 재앙에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도시가 포위된 상태에서 유대인이 겪은 공포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4절)였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파괴는 그 역사적 사실 외에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옛 유대인들 통치의 중심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이 파괴되었을 때 오래된 모세의 종교적 제도들도 끝이 난 것이다.
매일 드리던 희생 제물, 해마다의 절기들, 제단, 지성소, 제사장들 이 모든 제도가 끝난 것이다.
(제도권의 끝장의 상징이다. 카톨릭, 국교도 ---)
우리 주님은 “그 거룩한 곳”이 황폐해질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이 예언은 AD 70년에 이루어졌지만, 그보다 훨씬 멀리, 그리고 깊이 적용될 수 있다.
2천년 만에 재건된 지금의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과 함께 말씀하는 이 24장에도 부합된다.
교부들 중에서 이레니우스와 힐러리 등은 이 예루살렘의 멸망이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나타날 세상 끝날에 성취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힐러리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이란 구절을
이교도들이 숭배하는 인격적 적그리스도가 강력하게 나타날 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후 2:4도 그렇게 말한다.
(살후2: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
예언은 이렇게 통시성을 가지고 있다.
가까운 미래를 말씀하면서 먼 미래를 함께 관통하며 예언을 한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이 구약의 예언에서 정확하게 분리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에 있을 징조에 대한 주님의 첫 교훈은 이렇다.
(4-5절)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는지
요세푸스의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사탄은 항상 예언을 흩트리느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
대부분의 기독교 이단들이 그리스도를 사칭하고 재림의 날을 호도하여 사람들을 모았다.
지금도 재림 예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 가운데 이미 예수가 재림하여 교단주로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와 재림을 철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적인 의미만을 취하는 자들이 있다.
역사적 사실과 미래에 성취될 예언이 오직 철학적이고도 신학적인 의미로만 파악이 된다.
이 또한 적그리스도의 미혹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잘못된 신학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끝날을 혼란시키고 있다.
이런 잘못된 신앙과 신학에 물들지 않는 길은 성경을 깊이 알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신뢰할만한 믿음의 선진들의 올바른 성경 해석을 공부하는 것이다.
(11-1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지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신다.
지금 자유주의 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형통의 신학, 믿음의 신학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신학이다.
이들로 인하여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다.
(사람은 진리를 붙들 때 진정한 사랑을 한다.)
“바벨탑에 갇힌 복음주의”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 작가들과 유명 TV 설교자들이
복음주의 교회들을 미혹하고 있음을 설파한다.
그런데 그 책들과 영상들이 여과없이 한국교회에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유명 신학대학의 교수들이 이들을 추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진리와 참된 복음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유명 영상이 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라.
우리 기독교 TV 매체들과 책들이 그대로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마이클 호튼은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는 책을 썼다.
우리 나라 교회들이 미친 듯이 좇아가는 미국제 영성이 얼마나 반성경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지,
그 영적 독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낙관하고 실용주의와 성공제일주의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향한다.
이를 위한 갖가지 방법론과 테크닉으로 하나님을 체험할려고 하는 영성운동이 미국제 영성이다.
진리와 복음은 항상 성결과 성화와 함께, 성경과 성령과 함께, 간다.
그러나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신학은 항상 성공과 실용성과 함께 간다.
빠른 것 같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고, 늦는 것 같지만 거기에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
말세에 주님의 경고를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날 징조에 대한 주님의 둘째 교훈이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 말씀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세상 끝의 징조로 분명히 “전쟁과 기근과 질병, 그리고 핍박”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종말이 오기 전에 세상에 평화와 성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왔다.
주님 재림 전에 세계의 평화와 행복, 번영의 통치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주님 재림 전에 지상 천국이 교회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이것은 잘못된 견해이고 크게 속는 것이다.
평화의 왕이 돌아오실 때까지 이 땅에 평화를 바란다는 것은 헛된 것이다.
그 때가 이르기 전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사자와 같이 노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가 이르기 전에 세상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홍수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세속적인 일에 열중하였다.
노아의 경고를 그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들은 홍수가 올 것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침내 예기치 못한 홍수가 났고 “그들 모두를 전멸시켰다.”
물론 노아와 함께 방주에 있던 것은 모두 구원받았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다 죽었다.
그리고 주님은 “인자가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재림이 아직 멀은 것처럼 아예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과 같다.
주님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당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그러니 섣불리 주님 오시는 날을 임으로 정하고 요동할 일이 아니다.
주님의 셋째 교훈은, 주님이 언제 오실는지 알 수 없으니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신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조급함도 금물이고, 방심도 금물이다.)(맡겨주신 작은 일에 의무에 충실하여야 한다.)
그 때에는 무서운 선택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말씀을 두 번이나 반복하신다.
기막힌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함께 섞여 있다.
그러나 주께서 돌아오시는 날, 마침내 철저한 구별이 있을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각 사람마다 영원한 선별이 이루어진다.
부인과 남편, 부모와 아이들, 형제와 자매, 주인과 노예, 설교자와 청중사이에도 서로 구별된다.
그때에는 서로 작별 인사할 시간도 없고, 회개할 시간도 없다.
주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때 모습 그대로 주께서 데려 가실 것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영광과 명예와 영생을 얻을 것이다.
믿음이 없는 자는 치욕과 영원한 멸시 속에 남겨 진다.
주님이 돌아오셨을 때 택함을 받은 자의 행복을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뒤에 남겨진 자들의 비참함을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제 주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날의 징조를 보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성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살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과 세상 끝날은 마치 도둑이 밤에 들 듯 온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적의 땅에 주둔한 군대의 보초병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어다”(살전5:6)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주인이 집에 없을 때의 훌륭한 종처럼 살아야 한다.
“주인이 올 때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지구 종말의 때가 갑자가 닥쳐왔을 때 영원히 버림받지 않고 “복있는 자”가 되도록 살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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