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복음의 능력 (롬 1:16-18)

새벽지기1 2017. 7. 13. 07:17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이 복음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복음은 없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하며 시작한다.

 

그분의 영원전부터의 하나님됨(신성), 육신으로 오신 사람됨(인성), 그리고 사역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 보좌 우편에서의 사역, 앞으로 오실 사역 등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성품과 사역이 복음의 중심을 이룬다.

우리의 사도신경은 바로 그 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1.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복음을 자랑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하고, 그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노라고 고백한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

 

(갈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의 고백은 곧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정과 자랑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 하게 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눅 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복음과 대조되는 것이 율법이다.

율법은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율법을 아는 지식이 나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할 수 없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알고 가르쳤지만, 그 율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일을 해내고 성공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이다.

 

로마서 8장이 이를 강조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복음은 이러한 최종적인 결론을 향하여 일하고 있으며,

결국 그러한 최종적 결과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떠한 것도 우리를 끊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도 내 손에서 저희를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절대로 확실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신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고, 점도 흠도 주름잡힌 그러한 것이 없을 때까지 구원하신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 속에서 시작되면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구원은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중간의 여러 단계에서도 우리의 구원은 항상 보장을 받는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죄사함을 받으며, 그리고 거룩함을 입은 모든 성도들 가운데 기업을 얻게 한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만일 구원이 우리의 선함에 달려 있다면 우리 모두 다 구원 받지 못할 것이다.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로 들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왜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인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을 정하셨다.

그 방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분 자신의 의를 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그 모든 것을 청산하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두루마기로 옷입고 나는 하나님 앞에 선다.

그것이 바로 사도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말하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났다.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나타나셨다.

이것이 복음의 전체 메시지이다.

 

바울 사도는 이 의가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반복하여 강조한다.

(롬 3:20-21,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하고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말한다.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나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한 가장 분명한 진술은 빌립보서 3장9절이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이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믿음으로 우리가 가지게 되는 그리스도의 의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을 때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 설 수 있다.

 

그것이 구원이다. 그것의 구원의 핵심이다. 바로 그것이 구원의 중심이다.

구원의 핵심은 여러분의 느낌이나 저의 느낌이나, 또는 이러저러한 체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이 엄청난 것, 바로 그것이다.

 

예수, 주의 피와 의

그것은 내 모든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운 의복일세--.

 

이 의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점점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3. 불의로 복음을 막는 사람들의 불경건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복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호멧교처럼 칼과 코란을 들고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처럼 살인하며 정복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카톨릭과 그것을 닮은 선교방식이 지어내는 악한 산물들이다.

 

복음을 가져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복음 전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삶으로 향기로 전하였다.

복음은 면죄부 팔 듯이 강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준비된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

그 준비기간이 얼마나 긴가? 아브라함과 모세, 요셉과 다윗을 보라.

그런데 우리는 번개불에 콩 튀어먹듯이 전도와 선교를 업적 쌓듯이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

도무지 성품과 삶이 달라진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전도와 선교를 입술에 달고 산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복음의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법도도 모르기 때문에 모든 불의와 불경건을 행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먼저 그들이 그런 정욕의 더러움에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으로 온다.

우리 인간의 모든 블행과 비극과 위기는 죄, 곧 불경건과 불의로 인하여 온다.

하나님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다.

(롬1:29-32)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인 줄을 그들은 모를 뿐이다.

우리 인생이 왜 이리 안 풀리느냐고 탄식들을 한다.

불의로 복음 진리를 막는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로 오는 고난과 역경인데, 회개할 줄은 모르고,

고난을 해결한답시고, 괴롭다고, 더 죄를 향해 달려간다.

죄는 사망을 가져옴을 알면서도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하며 공범자들을 만들어간다.

 

마틴 루터는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우리에게 오는 고난이 있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해 오는 고난이 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은 최고도로 연단되고 정화된다.

고난과 시련을 싫어하고 거기로부터 도망치는 자들은 무지하고, 유치하며, 위선적인 자들이다.

이 십자가를 지기를 거부하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회교도요 그리스도의 원수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의 불을 통하여 연단하신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게 하시고 허무는데,

우리는 없게 하는 것을 어떻게든 붙들려고 하고 어떻게든 세울려고 한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고난의 해결만 서두르면 늪에 빠진 사람이 움직일수록 더 빠져드는 것과 같다.

원인을 알고 원인부터 해결해야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이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인생을 살기만 해도 많은 잘못을 돌이킬 것이고

복음 앞으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할 것이다.

세상과 내 인생의 불행과 비극들을 해결하는 길은

그것이 우리의 불의와 불경건으로 인해 오는 하나님의 진노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모든 비극과 불행도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정책과 자원을 동원하지만 사회는 날로 악해져 갈 뿐이다.

 

“죄를 회개해야 천국이 가까이 온다”는 우리 주님의 복음의 제일성은 언제나 진리이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죄를 회개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과 세상에 평온할 날이 있을 수 없다.

 

큰 기쁨과 평화와 행복은 우리의 거룩함이 자라는 만큼 오는 것이지

세상의 소유를 많이 쌓고 바벨탑을 높이 세운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은혜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행복과 천국과 형통이 온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불의와 불경건으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말로는 항상 비참할 수 밖에 없다.

불과 4년전에 이겼다고 점령군 행세하며 온갖 전횡을 일삼던 사람들에게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

역사는 그대로 되풀이 하면서 주인공만 잠시 다를 뿐 결론은 항상 똑같이 맺어지고 있다.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시작하면 끝을 책임지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혀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화에 이르게 하신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소유와 바벨탑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블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사도 바울처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믿으라.

선한 향한 고난과 역경으로 인하여 이 복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우리에게 보장된 기업과 영화를, 믿음과 소망으로 꼭 붙들고 즐거워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