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자기 신념이나 철학, 강한 자기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요 그분이 성경에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다.
대상이 확정되어 있고, 그 대상이 하신 약속을 믿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다른 종교의 사람일 뿐이다.
그때부터 그것은 철학의 차원이지 믿음의 차원을 벗어난다.
헛된 철학과 속임수를 조심하여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해야 한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고,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고,
지식이 많아질 것이고, 자기 귀를 즐겁게 할 스승을 많이 둘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많은 지식과 많은 스승들의 홍수 속에서 진리의 길,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교회도 세상을 닮아 숫자(대량)와 힘(자본)을 믿는 시대가 되었다.
성경의 진리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숫자와 세력이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고 있다.
세상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얻기 위해 누리기 위해 아귀다툼이다.
하나님은 성경에서나, 기독교 역사에서나 항상 남은 자 사상을 말씀해 오고 있다.
어떤 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가 다수다”라고 하였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기드온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자.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큰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철저히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숫자와 힘에 대한 하나님의계산법은 세상의 계산법과 다르다.
(마7:13-1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왕의 법도, 천국의 법도)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이어지는 말씀을 더 읽어 보자.
21절,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4절,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숫자와 힘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다.
숫자와 힘은 이 시대에 하나님을 대신하고 진리를 대신하는 우상들이다.
야곱은 이 우상들을 마음에 품고 입술로만 ‘엘엘로헤이스라엘’하고서는 안심을 했다.
하나님이 거주하고 머물기를 원하시는 곳은 벧엘이고, 엘벧엘의 제단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세상 따라 내 편리를 따라 세겜 숙곳을 엘엘로헤라고 착각하는지 모른다.
외동딸 디나가 세겜족들한테 강간을 당하는 수모를 겪고,
그 복수로 언약백성의 표로 주신 할례를 팔아 살인하고 두려워하는 비극을 겪고서야,
그리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서야, 엘엘로헤를 버리고 엘벧엘로 가는 야곱이다.
그 비극과 불행을 겪고서야,
엘엘로헤를 즐기던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엘벨엘로 향한다.
우리도 엘엘로헤하다가 이같은 비극과 불행을 맛보고서야 비로소
마음 속 우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엘벨엘로 향할 일이 아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진노가 임한다는 것은
구약 말씀이 아니라, 신약 로마서 1장 18절 말씀이다.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는 형벌이요 믿는 자들에게는 징계의 채찍이다.
하나님이 그때 그때 진노의 심판을 하지 않으니까 사람과 같은 줄로 착각한다고 하셨다.
의롭다 여겨지는 믿음은 그런 형식적이고 입술에 바른 믿음이 아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멀도다” 하는 하나님의 탄식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첫째 계명은,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이다.
그것은 십계명의 요약이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하나님께 마음과 뜻을 드리지 않는 사람의 이웃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의롭다 여김을 받는 믿음은 마음과 뜻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이다.
마음이 세상과 우상들에 가 있는 믿음은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 마음과 뜻을 드리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대로 살 리가 없다.
하나님과 진리는 내 야망, 내 바벨탑을 쌓기 위한 허울좋은 방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그 진리에 마음과 뜻을 드리지 않은 악인의 형통은 등불이 꺼질 날이 오고 만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니까
진리대로 사는 성품과 삶은 면제부를 받고 입술만 나불거리는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다.
사람도 입술만 나불거리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의 믿음을 우습게 아는데
하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려고 하는 거짓 믿음이 통할 리가 없지요.
우리는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믿음을 균형있게 받아야 한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
오늘 로마서가 말씀하는 아브라함의 믿음도 행함이 없는 믿음이 결코 아니다.
의롭다 여겨지는 믿음의 핵심과 내용을 바로 알 때 우리의 구원도 확실해 지는 것이다.
의롭다 여겨지는 믿음은 내 마음과 영혼을 중심에서부터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이다.
그럴려면, 수시로 우리 마음을 차지하는 숫자와 힘의 우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의복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성결한 성품 성결한 행실로 살려는 의지와 결단이 우리 삶 가운데 있어야 한다.
거룩함을 이루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야곱이 엘벧엘을 하였을 때,
하나님은 오셔서 축복하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창35:9-12)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곳은 그가 20년동안 훈련 받은 메소포타미아를 말한다.
그는 그곳에서 곧장 벧엘로 왔어야 했는데, 마음 속 우상따라 옛 사람의 행실을 따라
세겜 숙곳으로 가서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 한 것이 비극이었다.
그러나 엘엘로헤를 떠나 엘벧엘의 신앙으로 돌아 왔을 때
하나님은 후손과 땅의 축복을 해주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정말 자식들의 축복과 기업의 축복을 원한다면 이 가르침을 따라야 할 것이다.
악인의 형통은 거룩하지 않고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비극적 종말을 우리는 보아야 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만이 영광스러운 것이고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선 잘 나가는 것같지만 하나님과 그 진리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종말은 항상 비극이다.
그런데 왜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굴복할까요?
그것은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의 역사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믿음을 주셨고, 그것으로 살도록 믿음을 주셨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은혜로 선물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떠나서는 무용지물이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그 약속들을 믿을 수 있었느냐?
하나님이 그 믿음을 주셨고, 그것을 받아 그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17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다른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믿음을 은혜로 성령의 역사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성경과 기도로 그 하나님을 더 알고 더 가까이 하고 그 믿음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은혜로 주신 믿음이 죽은 믿음이 되지 않을려면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믿음은 자라야 하고, 믿음은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고 우리가 해야 할 믿음의 의무이다.
바울 사도가 제자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이다.
(딤전 6:3-12)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이제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다른 교훈에 미혹을 받고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면 경건한 삶이 큰 유익이 된다.
그러나 그렇질 않고 부하려 하고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이다. 영생을 취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우리의 믿음을 해롭게 하는 교훈과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한다.
이 믿음의 삶과 선한 싸움 끝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엘엘로헤를 떠나 엘벧엘의 믿음의 삶을 살 때 그 끝에 축복과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이 축복과 영광을 살게 하기 위해 하는 고난의 훈련들을 감당치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의롭다 여김을 받는 믿음은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이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그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이다.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도 그대로 해당이 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
이 사실을 알고 믿고서야, 어떻게 다시 죄가운데 살며 불의와 불법으로 살 수 있겠는가?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할 것이다.
자신(성품)을 정결케 하는 일과 의복(행실)을 바꾸는 일에 헌신하고 충성할 것이다.
믿음의 사람, 의인은 부와 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이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의 신분과 특권을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확실히 알고 믿음을 견고케 해야 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세상과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영생을 취해야 한다.
우리는 로마서 말씀대로 이 은혜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자녀들이다.
이제는 죄와 세상과 육체와 사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다.
이제는 오직 은혜가 왕노릇하며 우리를 아들을 안음같이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의 목적지 종착지는 하나님의 영광과 더불어 천국과 영생을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 교회에서 훈련하고 연단하시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고 있음을 믿으시라.
고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룸을 믿으시라.
이 믿음이 바로 아브라함이 믿었던 의롭다 여김을 받은 믿음이요.
우리도 의롭다 함을 받을 믿음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된다.
오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끝이 아니고 다가 아니다.
끝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이다.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셨다.
자기 힘으로써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임에도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받으시고 축복하셨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다 여김을 받는 믿음으로 살 때
아브라함의 축복과 영광은 우리의 축복과 영광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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