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포도주는 낡은 부대에 넣을 수 없다.
새 포도주는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열리게 된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와 복음이다.
성경은 이 새 질서와 복음을 새 언약이라고 하였다.
옛 언약(율법)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옛 언약을 온전케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흘리심으로 이 새 언약은 인준이 되었고 시행이 되었다.
옛 언약은 짐승의 피를 뿌려 인준이 되고 시행이 되었다.
묵은 포도주, 옛 언약은 부대도 낡아져서 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묵은 포도주를 담은 낡은 부대는 묵은 것이 좋다고 하며 새 것을 원치 않았다.
묵은 포도주를 담은 낡은 부대들은 새 포도주를 담은 새 부대들을 터뜨리고 쏟아지게 했다.
오늘 본문은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기로 결단한 세리 레위(마태)의 잔치집에서
묵은 포도주만을 좋아하는 낡은 부대들과 예수님과의 논쟁이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치 않는 낡은 부대들이 공격을 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새 포도주와 새 부대를 대표하는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그들은 말한다.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 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 날에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는 이렇게 새 포도주와 다르다.
그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형식과 그들이 만든 전통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예수님은 그 율법의 정신과 취지에 따라 새롭게 해석을 하며 사람을 자유하게 한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율법(묵은 포도주)과 복음(새 포도주)의 차이를 말씀해 주신다.
첫째 비유는 새 옷과 낡은 옷의 비유이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
왜 그러냐?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묵은 포도주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없다’ 하고,
새 포도주를 대표하시는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쓸 데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신다.
이 대화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기들은 의인이기 때문에 죄인인 세리와 함께 어울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들 같은 의인은 나와 관계가 없다.
너희는 그러고 있는 한 낡은 포도주에 취한 낡은 부대일 뿐이다.
너희 눈에는 죄인과 먹고 마시는 것만 보이느냐?
세리가 죄인인 것은 보이고 너희가 죄인인 것은 보이지 않느냐?
나는 병든 자에게 의사와 같이, 죄인을 회개시켜 의인을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느냐?이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예수님은 오직 죄를 회개케 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묵은 포도주로 죄인과 의인을 구별하고 있고,
예수님은 새 포도주로 의사가 병자를 치료하듯 그들을 회개시켜 의인을 만들고 있다.
금식의 문제도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는 대립한다.
그들은 관계는 상관 없이 그들이 전통적으로 정한 금식이 중요하다.
바리새인들은 일 주일에 두 번 금식한다는 것을 자랑하는데,
그것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 목요일과 내려온 월요일에서 그들이 만들어 낸 금식이다.
율법 레위기는 일 년에 한 번 7월10일 속죄일에 금식하라고 할 뿐이다(레16:31).
또 금식의 본래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하는 것에 있지,
행위를 보이고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고 있다.
그분은 신랑으로 오셨고 그 제자들은 지금 신랑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다.”
‘그 날’은 묵은 포도주들이 새 포도주를 미워하여 신랑을 십자가에 못박는 날이다.
제자들이 또한 금식하는 것은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였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행13:2)
묵은 포도주의 낡은 전통을 따라 형식적으로 보이기 위해 강제한 것이 아니었다.
신랑과 함께 있으면서 금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새 옷을 찢을 뿐이고,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
새 포도주, 즉 하나님나라의 새질서와 복음은,
묵은 포도주를 담은 낡은 부대, 즉 형식화되고 억압적인 강제의 율법에 넣을 수가 없었다.
새 포도주의 주인을 죽일려고 덤벼드는 그들의 낡은 부대에 넣을 수가 없었다.
묵은 포도주와 낡은 부대들은 새 포도주가 오기까지 가정교사로 주어졌다.
새 옷이 오기까지 낡은 옷으로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길이 새 포도주로 주어졌다.
이 믿음의 새 포도주를, 율법의 묵은 포도주를 담은 낡은 부대에 넣을 수 없었다.
새 옷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일 수가 없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새 영, 새 마음의 부대)에 넣어야 한다.
새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거듭나지 않은 영에는 넣을 수가 없다.
하나님 나라를 볼려면, 거듭나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또는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죄인이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전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이 변화는 “영적인 변화”이다.
영적인 위대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영혼 내부에서 발생되는 영적 변화’이다.
이것은 내적이며 영적인 혁명을 뜻한다. (제임스 뷰케넌)
이 변화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셔서 지성과 마음의 온전한 변화를 가져온다.
성령께서 지성을 비춰주고, 그 의지를 복종케 하고,
그 감정을 정련하고 정화하며, 마음을 새롭게 해준다.
성령께서는 죄를 생각나게 하심으로써 잠자고 있는 우리의 양심을 깨우신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강퍅하고 패역한 마음을 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으심’을 받게 한다.
이 변화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곧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된 것이다.
이 위대한 영적인 변화가 우리 영혼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를 믿고 여기고 이를 삶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변화가 와야 한다.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산 것이 죄인 것을 알고 회개를 해야 한다.
회개는 죄를 인정하고 고치고 다시는 살지 않기로 결단을 하는 것이다.
내가 옛 사람으로 산 것에 대해서 죄의식도 없고 통회하며 자복한 적이 없다면
그 영혼은 자기의 거듭남을 의심하고,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성령에 의해 영혼이 거듭났어도 변화가 미미한 사람은 여전히 묵은 포도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3. 새 부대에 넣어진 새 포도주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영혼에 온 위대한 변화는 우리 심령의 변화로 어어지고
그 변화는 우리 삶을 새롭게 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 안에서 위대한 영적 변화가 이루어졌다면 이제 삶으로 그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서 날마다 변화된 성품과 삶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레위는 이 변화가 일어나자 합당한 열매를 맺었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주님을 따랐다.”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도 “곧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다.”
삭개오도 곧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옛 사람의 행위와 습관들을 성령과 말씀을 힘입어 벗어버리는 작업은 내가 곧 해야 한다.
내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 작업은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날로 나아질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은 이것이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성령을 힘입어야 한다.
그럴려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정하시고 허락하신 은혜의 방편들을 규칙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예배와 기도회를 사랑하고, 그 통로를 통해 주의 은혜와 능력이 오심을 알아야 한다.
그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로마서 6장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롬 6:12-14)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9)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이 말씀대로 행한 만큼 우리는 변화되고 성숙해질 것이다.
내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만큼 변화되고 성숙해질 것이다.
내 마음에 천국은 이루어질 것이고, 나와 관계된 사람과의 사이에도 천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
인생의 고된 바람과 훙수가 몰려오면 그 넘어짐이 심하다고 하셨다.
선한 고난으로 인한 연단도 있지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징계도 있다.
듣고 행할려면,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복있는 사람은 그렇게 한다고 하였다.
복이 싫은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1장까지 교리를 말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렇게 시작한다.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새 포도주가 새 부대에 들어왔다면,
이제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
이제 우리 몸으로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그 삶을 영적 예배로 받으신다고 하신다.
새 포도주가 들어왔다면, 우리는 이제 이 세대의 악한 삶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 풍조를 더 이상 따르지 않아야 한다.
더 이상 우리의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을 따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불경건에 대하어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가져오지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을 가져오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심는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는 역사 속에서 항상 시행되어 왔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혀 주셨다.
새 옷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새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여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갈5:24).
내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 죽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의는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아야만 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
새 포도주가 새 부대 안에 부어졌음을 우리는 보여주어야 한다.
순서는 먼저 영이요, 다음은 마음이요, 다음은 우리의 생활에서 보여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따라 우리는 회개하는 삶, 변화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들을 맺고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변화와 성숙만이 우리의 미래를 밝혀 주고 가정과 일들을 복되게 한다.
거룩과 성숙을 심어야 복과 영광을 거두게 된다.
우리의 현재의 고난들이 장차의 영광을 가져오게 하자.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루매 거두게 될 것이다.
에브라임(번영) 같고 므낫세(고난을 잊음) 같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이다.
(게르솜(나그네) 시절을 지나 모세의 영광의 시절이 온다).
회개할 줄 모르는 악인들은 형통하는 것 같지만 등불이 꺼지듯 꺼지고
풀이 베이듯이 베일 날들이 반드시 온다.
그것은 성경이 증명하고 역사가 증거하는 바이다.
새 포도주가 새 부대에 담겼으니, 우리의 가정과 미래를 천국과 그 영광으로 가득 채우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느라 수고한 모든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고난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들을 받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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