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때가 차매 (행 7:18-36)

새벽지기1 2017. 7. 4. 07:16


30절,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셨다.

언제부터 40년이 찼느냐? 모세가 40세때,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스스로 결단한 때로부터이다.

실패하여 광야로 도망간 때로부터이다. 이제 그의 나이는 80세가 되었다.

 

예수님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말씀한다(갈4:4).

이 때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신 창 3:15로부터 4천년이 지나서이고,

처녀에게서 나실 것을 말씀하신 이사야서 7:14로부터 700년이 지났을 때 였다.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도, 주님은 갈릴리 가장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때가 차기를 기다렸다),

목수생활 30년을 지나고 나서야,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정한 때와 우리가 생각하는 때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때, 축복하여 세우는 때,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때를 못기다리고, 얼마나 조급해 하는지, 성취와 성공을 위해 서두르는지요?)

 

성경은 다 때가 있다고 말씀한다.

(전3:1-8)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시37:7-11)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물었다.

(행1:6-8)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에 두신 때와 시기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되는, 때와 시기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회 밖에도 점쟁이들이 많고, 교회 안에도 점쟁이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기다리라고 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받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게 뭘 도움이 되겠느냐이다.

오직 관심 사항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냐 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셔서 그 좌우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우리도 내 인생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회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때가 있는 것이고, 그 때와 시기는,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명하고 있는 것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 모세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 때와 시기의 문제를 교훈하신다.

사람들은 능력과 마음 자세를 갖추게 되면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일을 저질른다.

그런가 하면, 때가 되어 하나님이 일을 맡기시는 데도 아니라고 하고 주저주저한다.

 

모세는 40세가 되었을 때 자신만만하였고 선한 뜻을 위해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애굽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게 되었다.

그 형제 이스라엘을 돌볼 생각이 났다.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실을 인정하거나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도 세상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일들이 능하게 되면 하나님의 일도 잘할 줄 안다.

세상의 기준과 교회의 기준이 얼마나 똑같은지 놀랄 지경이다.

출신학교, 학위 등의 학벌, 사는 동네, 집의 크기, 가문, 직업이 좋으면 능력있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로는 베설물처럼 여긴 것들이, 오늘날 교회는 귀한 것으로 여긴다.

바울은 사람의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목사나 사역자의 말과 지혜가 얼마나 아름답고 잘하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좋아한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시대가 되고 말았다.

바울은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세상 지혜로 혼잡하고 있다고 탄식을 하고 있다.

그것은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이고 다른 영이고 다른 예수라고 했다.

그는 오직 순전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다고 했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지식을 사랑하고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할 스승들을 많이 둘 거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들이 있지만 순전한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아비들은 적다고 했다.

 

왜, 세상 지혜와 능력들을 좋아하느냐? 세상의 성공과 성취가 삶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은, 우리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거룩함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성경은, 세상과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해 주시고, 그 사람을 전적으로 사용하시게 된다.

하나님의 때는 이 그릇을 갖추었을 때이다.

모세는 자기 식의 모든 것을 갖춘 40세가 그 때인 줄 착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모세가 그것들을 다 버리느라 광야생활 40년을 소모하였을 때였다.

그 40년 세월을 광야에서 연단받고서야 모세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광야생활에서 40년이 찼을 때, 모세는 자기의 능력과 지혜를 배설물처럼 내려 놓게 되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지혜로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때가 차매 그를 하나님이 불렀을 때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자기의 꼴을 보니 40세 때에 비하면 이건 너무 엉망이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자기가 노래했는데, 자기가 지금 그 나이 80, 죽을 때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나타나셔서 너를 보낼테니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라는 것이다.

아니, 그 능력 좋고 패기만만할 40살 때는 아니라고 하시더니, 죽을 나이 80인데 기라고 하신다.

(행7: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40세 때의 모세였다.

하나님은 이제 80이 되어, 죽을 때를 기다리는 그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의 반응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출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하나님은 때가 차서 쓸만한 때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은 자기는 죽을 때라고,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자기와 자기가 가진 것만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모세가 다 갖추었다고 자신만만하여, 자기의 선한 뜻을 따라 결단할 때,

그 때는 자기의 때였을 뿐, 하나님의 때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때는 그때부터 긴 시간이 차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하며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금방이라도 기적을 베푸셔서 구원해주실 줄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그 때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레위 족속 가운데 한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낳은 한 아기를 주목하셨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을 다스리며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할 때였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키웠다’(20-21).

 

모세는 40세 때에 하나님의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하실 줄로 알았다.

그것은 모세의 때였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다.

광야생활 40년이 찼을 때가 하나님의 때였다.

 

그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하셨다.

그가 믿고 자랑하던 것들이 하나님이 쓰시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체득하게 하셨다.

또한 그의 성품을 연단하셨다. 거룩함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사십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셨다.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33)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신발은 사람의 인권과 재산권을 상징한다.

가시나무 떨기 불꽃이 있는 땅과 사람이 신는 신발이 대조를 이룬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의지하는 것은 다 내려놓으라는 의미다.

또 중요한 의미는 광야 40년 동안 네게 한 것은 너의 신발을 벗기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의지하는 것 자랑하는 것 그 신발을 신고서는 하나님 앞에 서거나 그분의 일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광야 훈련과 연단을 통해 우리의 신발을 벗기시고 거룩함을 이루게 하신다.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죽을 고생을 했는데 하나님이 자기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주님도 제자가 될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다.

신을 벗지 않고서는 거룩함을 이룰 수 없고, 거룩함을 이루지 않고서는 쓰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신을 벗기며 거룩함을 이루는 연단을 하실 때,

사람은 볼 품 없고, 되는 일이 없고, 되던 일도 망가지고, 험한 세월을 지나게 하신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신다.

때로는 주리게도 하시고 형편 없이 낮추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만나를 먹여주시고 생수를 먹여 주신다.

발이 부릅트지 않게 하시고, 옷이 헤지지 않게 하신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아들을 안음같이 안아서 가나안을 향해 가게 하신다.

 

그 어떤 고난도 위기도 위험도, 다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서 주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롬 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떨기나무에 붙은 불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그 의미가 중요하다.

그것은, 연단을 받느라 떨기나무와 같았던 시절에도 하나님은 불로 함께 하셨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도 네가 떨기나무인 것을 알고 그렇게 살면 하나님은 항상 불로 함께 하시겠다는 의미다.

 

광야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목적으로 하시는 거룩함의 연단이 이루어지면,

신발 벗는 연단이 이루어지면,

풍부에도 궁핍에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면,

주님의 형상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성숙해지면,

하나님은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신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10여년간 통과하게 하셔서 신을 벗고 거룩함을 이룬 다윗을,

하나님은 때가 차니까 왕으로 세우시고 어디로 가든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셨다.

 

나이 열 일곱에 노예로 팔려 갔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던 요셉

하나님은 때가 차니까 하루 아침에 애굽 제국의 총리로 세우셨다.

 

아브라함도 75세에 약속을 받고 하나님은 때가 차니까 100세에 아들 이삭을 주셨다.

 

한나도 자식이 없는 괴로운 세월을 보내더니 하나님은 때가 차니까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 욕망과 비전을 이루는 때가 아니라(비전센타들은 얼마나 우스운 것들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루는 때를 준비하며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의 영광과 축복은 하나님의 때가 차야 한다.

우리가 신을 벗고 거룩함을 이룰 때 작은 가지가 천을 이룰 때가 오는 것이다.

(사60:21-22) '그들은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그 하나님의 때가 찰 때까지 광야 생활의 고난 중에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난의 의미를 알면, 그 고난의 목적을 알면, 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

(롬5:2-4)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 환난 중에도 인내하며 즐거워한 사람의 대표가 하박국 선지자이다.

(합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