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철목사

회복의 목회(8)

새벽지기1 2017. 4. 21. 10:08


8.중단 없는 회복의 은혜들

늘 아름다운 일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실수도 있었고 잘못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나 주님께서 주인 되시는 교회를 이루어가기 위하여 깨어 있기를 힘쓸 때,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나 잘못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끔 회복시켜 주시곤 했다.

가장 큰 잘못은 1992년 8월 4일 오후, 제4회 전교인 여름수련회장에서 일어났다. 소년부 어린이였던 정민홍 군이 생명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일종의 안전사고였다. 전혀 사고가 날 장소가 아닌 연수실 내에서의 사고사였기에 충격은 더했다. 황급히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이미 절명했다는 의사의 사망확인이 내려졌을 때,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수련회를 총지휘한 나의 실책이요,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전교인들이 참여한 수련회장에서의 사고인만큼 교회가 큰 시험에 빠질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 일로 인하여 다섯 번을 놀라야 했다. 뜻하지 않았던 민홍이의 죽음, 그것도 수련회장에서의 죽음으로 인하여 놀란 것이 첫 번째였고, 사고 이후 민홍이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의 의연한 모습으로 인하여 놀란 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교회 예배당에서 드려진 민홍이의 장례예배 시, 민홍이의 아버지인 정성기 집사님의 인사말로 인하여 세 번째 놀라야만 했다. 정집사님은 교인들 앞에 서서 다섯 가지를 감사드리는 것이었다.

첫째 주님께서 민홍이를 모태에서부터 믿게 하시고, 어릴 때 유아세례 받게 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둘째 이세상의 죄악과 탐욕에 오염되기전, 순결한 영혼의 상태로 아들을 하나님 나라로 불러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셋째 교통사고나 세상의 궂은 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을 배우던 수련회장에서 불러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넷째로 그 동안 민홍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당장은 공허하게 보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시험밖에는 주지 않는다 하셨으매, 그 빈 자리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반드시 채워 주실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고 이후 교인들은 모두 깊은 깨달음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 주일 교인들은 정집사님 가족이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는 강단에 꽃을 바치고, 교인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는 전교인이 먹을 분량의 떡을 준비한 것을 보고 네 번째로 놀랐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하여 교회가 시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은혜 속에서 더욱 굳게 세워짐으로 인해 놀란 것이 마지막 다섯 번째였다 . 슬픔을 초월한 정 집사님 가족들의 성숙한 신앙적 모습이 모든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함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민홍이의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당회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비록 모든 것이 은혜롭게 마무리되었다 할지라도 사고는 엄연한 사고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고보다 더 큰 사고는 있을 수 없기에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하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담임목사인 나의 몫이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나의 사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8월 9일 다음과 같은 책벌을 결의하였다.

·이재철 목사 : 8월 셋째주 부터 11월 셋째 주까지 3개월 근신-이 기간 중 설교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근신
·이재원·김도묵·홍근용 장로 : 3개월 근신-이 기간 동안 당회원 직무를 정지하며 모든 예배 시 기도를 금함
·황기언 교육부장·이성우 소년부장 : 한 달 간 정직
·이진호 소년부 전도사 : 한 달간 설교 정지 (민홍 군은 소년부 어린이였다.)

3개월 동안 설교 시간과 민홍이의 무덤을 찾는 일 외에는 두문불출하면서 나는 나의 부덕함을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였다. 그러나 하찮은 인간에 불과한 나의 근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직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교회도 가정도 회복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 사고는 오히려 주님의교회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정 집사님 부부에게 딸 한 명과 아들 한명을 선물로 주셨다. 애진이와 세홍이_모두 두 눈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이다. 그 모든 것이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1995년으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위기가 있었다. 어느 집사님에 의하여 선교비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외부의 사람들이 거짓으로 선교비를 타내는 것은 혹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 내부 사람에 의하여, 그것도 기름 부음 받은 안수 집사에 의하여 교회의 헌금이 의도적으로 그릇되이 사용되었다면 그것은 교회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교회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본질이어야 할 교회 내에서 교회 내부의 사람에 의해 불미스러운 일이 자의로 행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참된 의미의 교회일 수가 없었다. 정체성의 위기였던 것이다. 당회에서는 심사숙고 끝에, 당사자가 서리 집사도 아닌 안수 집사인 만큼, 재발방지와 교회의 거룩성 및 순결성을 지키기 위하여 먼저 진상을 규명한 다음, 그 집사님을 주님의 사랑으로 포용하여 바로 세워 드리기로 하였다. 그것이 공의의 주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주님이신 하나님의 방법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당회에서 구성된 진상조사 위원회에 의한 조사가 끝날 즈음 그 집사님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사고가 난 금액은 물론 변제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당회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종결지었다. 이미 떠나 버린 집사님에게 법의 힘을 빌려 변제를 요구한다는 것은 덕스럽지 않다는 중론에 의해서였다. 당회는 제직회를 열어 진상을 설명한 다음 교회 재정관리를 잘못한 데 대하여 사과를 구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나의 책임이었다. 내가 좀더 말씀을 잘 전했더라면, 내가 그 영혼을 좀더 바르게 인도했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 집사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를 집례했던 나로서는 참으로 괴로웠다. 그분이 앞으로 어느 교회를 다니든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신뢰하시는 멋진 주님의 종이 되기를, 나는 오래도록 기도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우리의 선교 구제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제 요청이 오는 대로 나누어주는 소극적인 방법을 탈피하여, 뭔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을 찾아 나설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이 뒤에서 언급할 정신여고 강당 건축의 한 동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주님의교회에서 안수 받은 한 집사님을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했던 나의 잘못을 , 주님께서는 또다시 회복의 은총으로 반전시켜 주신 것이었다.

1995년 가을, 전혀 예상치 않았던 위기가 한 번 더 닥쳤다. 9월에 실시되었던 장로 피택선거가 문제의 발단이었다. 사전 선거운동이 있었던 것이다. 사전 선거운동이라고해서 금품 같은 것을 돌리는 등의 행위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 문제는 특정인을 놓고 당선시키려는 측과 낙선시키려는 축이 서로 충돌한 것이었다. 서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부탁의 전화를 했는데, 적지않은 사람들이 양측으로부터 상반된 전화를 동시에 받음으로써 문제가 표면화되었던 것이다. 선가가 끝남과 동시에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찍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느니, 누구는 누구에게 누구를 찍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느니, 누구는 누구에게 누구를 찍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양측으로부터 모두 부탁을 받았던 사람 가운데는 교회에서 행하는 선거에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면 어찌 주님의교회일 수 있느냐며 항의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전혀 사실무근인 헛소문이 난무하였고, 그로 인하여 마침내 당회까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주님의교회 창립 7년만에 찾아온 최대의 위기였다.

나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92년 여름 수련회에서 민홍이가 세상을 떠난 이래, 나는 두 번째로 교회를 떠날 것을 생각하였다. 92년 사고 때에는 나의 책임감으로 인하여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이번에는 인간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떠나려 했다. 주님의 교회는 오직 주님만이 주인이심을 망각치 않기 위하여 담임목사 스스로 임기를 정하여 둔 교회이다. 부지중에라도 인간이 주님의 자리에 앉는 우를 범치 않기 위하여 장로들도 자신들의 임기를 정하여 둔 교회이다. 지난 7년 동안 나는 주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역설하여 왔다. 임직자 선거가 있을 때마다 모든 임직은 결코 명예직이 아니라 헌신직임을, 그러므로 누구든지 임직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는 자에게는 오히려 임직이 화가 될 수 있음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이것이 지난 7년 동안의 주님의교회였다. 이런 교회라면 적어도 임직자 선거시 사전 선거운동이 있을 수 없음이 마땅했다.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주님에 의해 피택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한 표만을 은밀하게 행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투표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주님의교회에서는 임직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인간의 투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선거인 명부를 만들고 칸막이가 쳐진 기표소에 한사람씩 들어가 철저하게 비밀투표를 한다. 신성한 교회에서 행해지는 투표에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입김이나 부정이 작용치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이름만이 주님의교회가 아니라 모든 면에 걸쳐 진정한 주님의교회가 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만 7년 만에 주님이 주인 되신 주님의교회에서 주님의 종을 선출하는 투표로 인하여 주님의 교회에 심각한 분란이 일어났으니, 나의 심정은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참담한 만큼 인간에 대한 절망은 더 깊기만 했다. 지난 7년 동안 밤잠을 설치며 전념해 온 나의 목회가 내 속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이 곳에서 할 일이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의 임기를 앞당겨 교회를 떠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인간-이것은 타인을 의미한다-에 대한 절망은 곧 나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 모든 분란의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주님께서 통감토록 해 주신 것이었다. 내가 7년이나 목회한 주님의교회에서 투표로 인한 분란이 빚어졌다면, 그것은 그 때까지 내가 교인들에게 주님이 주인 되신 교회의 형식만 보여 주었을 뿐, 주님의교회의 참된 본질을 아직까지 그들에게 심어 주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주님 앞에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전혀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나의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에 대해 절망치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썩 목회를 잘하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했던 나 자신의 교만함과 우둔함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에 대한 절망은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로 이어졌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절망했던 대상들에 매한 사랑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들은 모두 내가 사랑해야 할 주님의교회 교인들이었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임기를 앞당겨 교회를 떠날 수가 없었다. 아니 떠나서는 안 되었다. 만약 떠난다면, 그것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열을 의미할 따름이었다. 오히려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을 더욱 바로 세워 감으로써 모두와 더불어, 주님께서 주님의교회를 진정 주님의교회로 가꾸시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만 했다. 그 이후에,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가 있거니와, 6개월간의 심사숙고 끝에 당회는 목사와 장로를 제외한 모든 임직자의 임기도 제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주님만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우리의 재다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종을 선출하는 교회의 투표에서 표대결을 벌인다는 것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내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주님의교회에서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다. 그만큼 그 사건은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것 역시 회복케 하시는 주님의 은총이 아니었던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거듭하여 잘못을 저질렀고,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수많은 위기를 당하곤 하였지만, 그러나 우리의 중심이 주님을 향하여 있을 때, 우리의 모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때마다 회복의 은혜로 더욱 굳건하게 회복시켜 주셨다. 그래 서 주님의교회는 변함없는 주님의 회복의 은총 속에서, 오늘도 주님의교회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글은 회복의 목회 49∼62쪽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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