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31) (학 2:8)

새벽지기1 2017. 4. 20. 14:49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8)

 

학개 선지자는 유다가 바벨론의 식민통치와 포로생활로부터 해방된 시절에 활동했다. 그때가 기원전 6세기 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원전 520년이다. 유다는 기원전 6세기 말부터 바벨론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다가, 사실은 훨씬 전부터의 일이지만, 결국 기원전 587년에 망한다.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다. 왕궁과 성전은 허물어지고 불타고 무너졌다. 귀한 집기들은 약탈당했다. 왕족과 귀족, 지식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유다 지역은 바벨론에서 파송한 총독이 지배했다. 그런 암흑의 세월이 50여년 흐르고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서 무너진 뒤에 해방을 맞는다. 페르시아 고레스 왕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조국으로 돌아가는 칙령을 선포했다. 그때가 기원전 538년이다. 마치 한민족이 일본 식민 지배에 삼십 여년 시달리다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에 해방을 맞은 형국과 비슷하다.

 

유다 민족들도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일차적으로 성전 재건에 착수했다. 그 내용이 구약 에스라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전 재건의 속도는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성전 건축이 의욕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물적인 토대가 받쳐줘야 한다. 50년 동안 바벨론의 지배를 받은 직후이기 때문에 유다의 경제 상태는 바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다는 원래 작은 나라였다.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거대한 건축 사업은 국력이 가장 번성했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개인들도 먹고 사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성전 재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학개는 성전 재건이 유다 민족을 살리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몇 번에 걸쳐서 받았다. 그 내용이 2장에 걸쳐서 나온다.

 

2:3절에서 학개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그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7년에 무너졌다. 지금 학개가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때는 기원전 520년이다. 거의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성전이 무너질 때 열 살인 사람은 지금 여든 살 가까이 되었다. 지금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는 학개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유다 사람들은 바벨로 포로 상황에서도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후손들에게 전했다. 학개도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학개는 이렇게 호소한다.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 없지 아니하냐.” 성전의 잔해 더미만 남아 있었다. 불에 탄 흔적이 여전했다. 여기서는 옛날 성전의 영광과 위용을 찾을 수 없었다. 6.25 전쟁 때 불타버린 교회당 앞에서 건축을 호소하는 어느 목사의 심정과 비슷해 보인다.

 

학개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앞장서기를 바랐다. 학개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지 실제로 그런 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은 아니었다. 학개가 말하는 핵심은 힘을 내라, 두려워하지 마라, 하는 것이다. 그런 표현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 말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재정이었다. 지금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위해서 세금을 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페르시아로부터 재정을 조달하기도 어렵다. 자칫하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어려운 입장에 서 있는 총독과 제사장을 향해서 학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다시 상기시킨다. 하나님이 일을 하실 테니 당신들은 걱정하지 말고 앞장 서기만하라는 것이다.

 

재정을 걱정하는 그들에게 학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한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8). 이 문장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목사들도 많다. 주로 건축헌금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문장이다. 학개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니까 그렇게 사용될 수 있다. 똑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태도로 쓰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학개는 성전 재건에 필요한 헌금을 내게 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두려움에 빠져 있는 지도자들을 향한 말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관자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은도 내 것, 금도 내 것이라는 문장은 듣기에 따라서 선정적이다. 욕심 많은 어떤 부자의 외침처럼 들린다.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으로 새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종교적 언어는 자칫하면 오해받기 쉽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천박하게 사는 경우가 이런 오해에서 발생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은 모든 것의 주인이 인간일 수 없다는 뜻이다. 부를 독점하는 것은 이런 말씀에 대한 거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천민자본주의는 은도 내 것, 금도 내 것이라는 인간 욕망의 노골화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학개의 외침은 당시로서 최선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이라는 사실을 안다. 히브리서가 말하듯이 이제는 더 이상 제사장들의 제사는 필요 없다. 멜기세덱의 전통에 따라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에 제사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이미 그것을 학개가 내다보았는지 모르겠지만 2:9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학개가 말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근원적인 영광이 아니겠는가.

'좋은 말씀 > -사순절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순절 묵상(33) (빌 2:17-18)  (0) 2017.04.23
사순절 묵상(32) (시 118:22,23)  (0) 2017.04.22
사순절 묵상(30) (행 2:24)  (0) 2017.04.19
사순절 묵상(29) (사 43:11)  (0) 2017.04.18
사순절 묵상(28)  (0) 201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