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깨어 있으라 (막 13:32-37)

새벽지기1 2017. 3. 21. 06:54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관한 언급이다.

이 땅에서 살기가 편안하고 좋아서 그런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까맣게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에 대비할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니까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어떻게 하나님이신 아들도 그 날을 모르겠느냐? 당신이 오시는 날인데? 의문이 있어 왔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어떤 일도 모를 수 없다.

그러나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모르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어왔다.

 

그리스도의 인간 영혼이 슬픔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52에서 그리스도의 “그 지혜가 자라 갔다”고 한 것을 보면

때때로 그의 인성이 몰랐던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큰 이단들은 그 날과 그 때를 안다는 데서 출발하였다.

정확히 몇 년 몇 월 몇 일까지 알아서 예언을 하고 소동을 벌렸다.

문제는 그 예언이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똘똘 뭉쳐서 이단을 키워간다는 것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영적인 역사인 것을 알 수가 있다.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대부분의 크고 작은 이단들이 그러하다.

그러한 영에 한 번 사로잡힌 사람들은 대개 헤어나질 못하고,

설령 나오더라도 대부분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못하고

또 다른 어두운 영적 집단에 계속 끌려다니는 것을 본다.

 

그러한 영에 사로잡히지 않게 지켜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 주님은 부활하여 40일동안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말씀하셨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행 1:7)

 

주님이 영광의 왕으로 재림하시리라는 것은 신구약 모든 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재림을 부인하면 기독교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아주 중요한 성경의 교리이다.

 

주의 재림을 말씀하는 그 많은 성경귀절들이 거짓으로 판명되면서

다른 것도 다 믿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처럼 자기들 입맛대로

필요한 말씀만 골라서 믿는 사람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모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은 이 말씀으로 끝맺고 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그분이 속히 오실 것을 대망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분이 늦게 오심으로 인하여 사도시대 때부터 많은 조롱과 비난들이 있어 왔다.

베드로 후서에 나오는 말씀이다.

 

(벧후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때를 늦추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벧후 3:8-9)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깨어 있는 것이다. 오늘 짧은 본문에서만도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33절,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5절,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7절, 깨어 있으라.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왜 깨어 있어야 하느냐?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홀연히 와서 우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벧후 3:10)


누가복음에서도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눅 21:34-3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바울 사도도 말씀한다.

(살전 5:6)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로마서에서도 자다가 깰 때가 되었음을 말씀한다.

(롬 13:11-12)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깨어라!”는 성경 구절들은 너무 많이 있다. 다 재림을 준비하기 위한 말씀들이다.

(고전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자다가 깰 때가 된 것이다.

지난간 날들은 어쩔 수 없다.

회개할 것은 회개하며, 오늘 지금부터 깨어 있기를 시작해야 한다.

 

영원히 안식하고 쉼을 누릴 날이 오고야 만다.

그때 주님 앞에서 지난 날의 우리의 죄악과 게으름 때문에

후회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일어나야 한다.

 

더더군다나 함께 있다가 혼인잔치에 못들어가는 다섯 처녀에 속하는 일은 없어야 겠지요.

(마 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런 기막힌 일들이 왜 일어나지 않겠어요?

이렇게 되지 않도록,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일까요?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갖는 것은 등을 가진 것이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는 것이다.

낮에서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을 가슴에, 소망을 머리에)

 

베드로 사도가 기름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잘 말씀해 주고 있다.

(벧후 3:11-12)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라고 하신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살 수 있는 삶이다.

 

왜, 우리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못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보물을 쌓는데 바쁘고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의 동기와 소망이 어디에 있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다.

천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라 했다.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 매달려 사는 육신의 사람은 결코 천국을 살 수도 갈 수도 없다.

 

천국을 사는 첫째 조건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살고 누리는 것이다.

그 결과 평강과 희락을 함께 누리는 곳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렇게 심령 속에 천국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영원한 천국에도 가는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사모하면서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벧전 1:13-17)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재림) 때에 우리에게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고 한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 이를 힘쓰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려면 우리의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야망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시니까 무엇보다도 우리의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우린 외적인 모양과 업적을 중요시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우리가 사욕을 따라 살았는지, 거룩한 행실로 살았는지, 심판하실 것이다.

그분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고 있은즉 우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행인이고 나그네임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살아야 할 천국에서의 영생에 비하면 그런 것이다.

우리도 청교도들처럼 천국을 눈동자 속에 지니고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들”(벧전1:1)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나그네가 누구냐? 보통 나그네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나그네이다.(벧전1:2)

 

그리고 그 나그네는 “썩지 않고 더럽히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받을 나그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나그네이다.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임을 알고 두려움으로 지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어려움과 두려움이 도무지 없는 시대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다시 말씀한다.

(벧후 3:13-15)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는 이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약속대로 의기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점도 없고 흠도 없이(의와 거룩함이다)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될 줄로 알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겼다고 하신다.

주님 오실 때 깨어 있으라고 문지기에게 명령하신다.

홀연히 오실 때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하신다.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른지 ,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들에 깨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야 한다.

 

그 일에 충성되고 착한 종이 되어야 한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아야 한다.

다섯 달란트를 주셨으면 다섯 달란트를 남겨 드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두 달란트를 주셨으면 두 달란트를 남겨 드리는 종이 되어야 한다.

 

지난 주에 라일 목사가 쓴 존 웨슬리의 전기를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웨슬리는 정말 깨어 있었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그의 말이다.

 

부지런하십시오. 어느 한순간도 일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 없게 하십시오.

결코 단 한순간도 그런 시간이 없도록 하십시오. 결코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 필요한 장소, 필요한 일에 매달리지 않은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게 하십시오.

진지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이 당신의 동기가 되게 하십시오.

사소하고 가벼운 모든 일들, 농담이나 어리석은 대화들을 피하십시오.

귀족인양 하지 마십시오.

죄 외에는 어떤 것에도 수치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허락된다면 나무를 하거나 물을 긷고,

자신의 신이나 이웃의 신을 닦는 것과 같은 허드렛일 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엄수하십시오. 모든 일을 정확한 시간에 하십시오.

되도록 규칙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먼저 지키기를 힘쓰십시오.

진노하심을 입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준비하고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절)라고 하신다.

흠없이 깨끗하고 평강 가운데서 우리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