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태평성대에 입버릇처럼 하는 찬양이 아니다.
이 고백은 다윗이 늙어서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서 하는 고백이다.
시 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서두에 나와 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아주 준수한 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다윗이 늙어서 이에 그 운명이 다한 줄 알고
대부분의 명망있는 부하들은 멋도 모른채 압살롬의 편에 붙었다.
(1-2)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다윗은 이제 하나님께도 끝났다고 하는 거지요..
그는 도망하여 감람산으로 올라갈 때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걸어가면서 크게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는 이 위로의 시를 썼다.
그는 울면서 기도하고, 울면서 노래하며, 울면서 믿었다
책략가 아히도벨의 안이 받아들여졌더라면 다윗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다윗은 그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삼하15:31)
이 압살롬의 반란은 사실은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이미 예고된 재앙이었다.
다윗은 우리아의 일로 인한 자기 죄 때문에 고난당하였다.
하나님께서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겠다'고 경고하셨던 그 죄로 인한 재해였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햇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칼이 제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12:9-11)
죄는 환난과 재앙을 불러옴을 알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이 점을 확실히 말씀하고 있다.
의롭다 하심이 된 자들이 혹시 죄를 범해도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계속적으로 용서하신다. 비록 그들이 범죄한다 해도 칭의권 상태에서 떨어지게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 범죄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아버지로서의 분노를 당하게 된다. 그럴 때에 그들이 스스로 낮아져서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빌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얼굴 빛을 자기들에게로 회복하지 못한다(Ⅺ:ⅳ).
다윗의 위대한 점은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확신을 버리거나 구원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다.
죄로 인해 슬퍼한다 할지라도 그 슬픔이 하나님의 구원과 신뢰를 잃게 해서는 안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기도하면 성산에서 응답하실 줄 다윗은 굳게 믿었다.
우리도 위기 가운데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조금만 위기가 와도 절망하고 손놔버리고 은근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1.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시다.
(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다.
어떤 환난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롬 8:38-30)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이보다 더한 보장과 방패가 어디 있는가?
사망도, 어떤 일도, 높고 깊은 위기와 문제도, 권세자들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우리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셨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존재할 수 없다.
저도 수많은 위기를 거쳐 왔지만 어렇게 건재하고 있다.
여러분도 돌아보시면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어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울 경우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다윗만 수 많은 위기 가운데서 방패가 되어주셨겠는가?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다.
그로부터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긴 기도 가운데 방패 기도를 해주셨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옵소서'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때가 되어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그리고 영화의 그날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존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많은 고난을 겪게 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지키시며 보호하시며 인도하셨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생수를 공급하시고
옷이 헤지지거나 발이 부릅트지 않게 하셨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고 계신다.
고난의 의도를 모르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할 수밖에 없다.
어떤 고난과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방패가 되심을 믿었기에
믿음의 선진들은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만물의 찌기같은 대접을 받을 때도
굳건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실 때 우리도 믿음으로 응답하여야 한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아주 넘어지지 않음은
주께서 붙드심이라'고 하였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자.
2.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이시다.
우리는 고난이 길어지고 문제가 계속 꼬이고 안 풀리면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인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다.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며,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분,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 나의 힘 구원이 되신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는 방패와 영광이 함께 언급되어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방패가 있으면 구원의 칼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구원이요 힘이라는 뜻이다.
(시 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 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영광을 해(태양)로 비유하기도 했다.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다윗은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그의 영광인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7-8)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이 기도의 끝에 다윗은 ‘셀라’라고 덧붙인다.
이 셀라는 다윗 시대에 시편을 노래하기 위해 붙인 곡조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또 다른 학자는 이것을 장중하게 멈추라는 표시로 본다.
셀라, 즉 "그것을 표하라." 또는 "거기서 멈추고 잠시 생각하라."
2절에도,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셀라‘) 하고 있다.
다윗은 시글락의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었다.
하나님이 그의 영광인 것을 신뢰한 것이지요.
(삼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구원하시고 힘이 되어 주시며 영광이 되어 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라고 고백하고 찬양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련을 주시지만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시련은 영광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는 것은 나의 영광을 보장하는 분이라는 뜻도 된다.
그래서 시련이 올 때 기뻐라하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상속자로서 그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시련과 고난이 없이 곧장 축복과 영광을 말하는 가짜 복음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죄가 많고 허물이 많은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하늘같이 높아진 턱없는 자존심과 의로움들이 고난을 통해 낮아져야 한다.
낮아짐과 정결함의 과정 없이 영광을 바라는 것은 결국 사망과 재앙을 불러오고 만다.
주께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이 한다고 하였다.
참된 영광을 가져오는 것은 성결과 겸손이지 성취와 교만이 아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다.
낮추심은 높임을 위한 것이다.
머리를 낮추시고 볼품 없게 하시고 도살양같이 되게 하시는 것은
결국은 머리를 들게 하기 위함이시다.
그러나 그 낮아짐의 세월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모세의 낮아짐의 세월은 자그만치 40년이었다.
왕궁의 왕자에서 전락하여 이방 객지의 양치는 목동으로 이 40년을 보냈다.
다 소망이 없다고 하였을 것이고, 미친 짓을 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이 머리를 들게 하실 것을 믿었다.
야곱처럼 자기 양떼를 소유하고 늘릴려고 애쓴 흔적이 없다.
하나님이 40년 만에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도 그는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다.
(출 3: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요셉의 생애도 13년의 낮추심의 세월 끝에 머리를 들게 하시는 역사였다.
(창 41:41-43)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한나도 노래한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고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 2:7-8)
우리 주님의 생애도 낮아지심과 머리를 들게 하심의 역사로 말씀한다.
(빌 2:8-1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 주님에 이르기까지 낮아지심의 과정을 거쳐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이 과정 없이 시험만 잘보면 줄만 잘 서면 부와 소유만 늘리면 된다고 하는가?
그런 세상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세월을 날리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머리를 들게 하셔야 한다.
내가 학력과 경력을 쌓아 부를 쌓아 힘있는 사람들을 의지하여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 허망함을 백발이 되어서야 깨달으면 이미 늦은 것이다.
하나님,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고 방백을 의지하는 것이다.
(렘 17:5-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하나님이 낮추실 때는 반항하지 말고 용쓰지 말고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성막위의 구름은 언제고 떠오를 날이 있고,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달릴 날이 있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믿음을 지키며 미래를 준비하노라면
머리를 들게 하시고 높이실 날이 올 것이다.
(시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낮추심의 세월 동안 풍부함이나 부족함이나 자족하며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우리에 양이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게으르지 않도록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애쓰며 지혜롭게 시간들을 활용해야 한다.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다 가도록 힘써야 한다.
순전함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결한 삶으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영광스런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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