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롬 11:20-22)

새벽지기1 2017. 3. 30. 07: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특권은 순전히 인자하심의 은혜로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에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신 은혜를 입기까지는 과정이 있었다.

오늘 롬 11장에서는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유대인은 참감람나무였고 이방인인 우리는 돌감람나무였다.

 

사실은 참감람나무는 교회이고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참감람나무의 가지가 하나님을 먼저 믿은 유대인들이었다.

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그 가지들이 꺾이고 말았다.

 

그 꺾인 가지에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의 믿는 가지가 접붙여진 것이다.

그것이 교회가 세워져 온 역사적인 과정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뿌리로 하여 교회인 참감람나무를 이룬 것이다.

 

골로새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신다.

(골1:21-22)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것이 교회이다)

 

에베소서의 증거는 더 자세하다.

(엡2:12-16)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진정한 교회이다)

유대인이라고,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이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교인이라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고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는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고발한 내용이 11장 처음부분에 나온다.

(롬11:3-5)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다 부패하고 다 망한 것 같은데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남겨두시는 것이다.

이 남겨 드신 자들을 구원하고 이 남은 자들로 교회는 지속되어 온 것이다.

매튜 헨리는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궁정에도 도시에도 지방에도 어디나 할 것 없이 바알이 우위를 떨치고 있었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다소간에 바알에게 경의를 표했었다. 자신의 순결(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을 내보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증거는 물살이 강할지라도 시내를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모습이다. 모두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때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한 일이다. 온전한 정신의 굳건한 의지는 일반적으로 진실함의 상징이다.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고 하면서도 바알을 더 섬기는지 모른다.

바알은 재물이요 돈이요 권력이요 명예이다. 썩어질 존귀와 영광이다.

교회 안이고 밖이고 다 바알 앞에 무릎을 꿇는다.

 

다 그러니까 그것이 대세니까 물살이 강하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니까 하면서

진리의 길보다는 우선 내가 좋은 길, 편안한 길, 이익이 되는 길로 가고자 한다.

물살이 강할지라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모습이 성결을 지키는 자세이다.

 

모두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때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높이 평가할 일이다.

진실함의 표지는 온전한 정신과 굳건한 의지를 들어내 보이는 것이다.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망했다.

 

하나님은 항상 인자하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준엄하심으로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기도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분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함께 보아야 한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되 그분을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한 없는 인자하심을 보여주시고 축복하셨지만

그들이 끝내 바알에게서 돌이키지 않고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고 악을 행하니까

그들을 원가지에서 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예수를 진실로 영접하고 믿고 순종하는 이방인들을 접붙이신 것이다.

 

(20-21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꺽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믿음은 입술로만 하나님과 가깝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분께 대한 순종과 행함이 따를 때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다.

 

내가 그분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할 것 같으면 행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분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할 줄 알고 어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뒷방 늙은이처럼 내버려 두었다가 위급할 때면 끄내서 찾으면 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롬 2:24)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이 말씀이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하는 말씀이겠는가?

오늘날 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은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구원받는 자가 많지 않다고 하셨다.

 

남겨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협착한 길로 가는 적은 수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신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도무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르는 것이 문제이다.

사울왕이 40년 동안 왕노릇하고 특권을 누리고 산 끝이 무엇이었는가?

계속되는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장 불이 안떨어지니까 태평성대를 구가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전장터에서 세 아들과 함께 맞이한 것 아닌가?

 

엘리 제사장이 98세를 살고 40년동안 사사의 특권을 누리고 산 끝이 무엇이었는가?

경고에도 회개할 줄 모르고 태평하게 배두들기며 지내다가

두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언약궤는 빼앗기고 그는 목이 부러져죽고

그들의 악행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떠나가게 한 것 아닌가?

 

주일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선지자의 경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서 나의 일생의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

과거의 이스라엘 없이 현재의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술로만 믿고 행함이 없다가 참감람나무에서 꺾이고 말았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접붙여졌지만 순종과 행함이 없으면 꺽이는 것이다.

(22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이 말씀이 구약 선지자들의 글 가운데 있는 말씀이 아니라

신약 로마서 11장에 있는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약시대의 예수 믿는다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한가족교회 성도들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준엄하심 앞에 꺾이는 가지가 없기를 바란다.

넘어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계속 거하면 그 인자하심이 계속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로마서 2장 말씀이다.

(롬2:3-8)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남이 잘못하는 것을 보면 잘 보이고 할 말도 많은 것이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같은 잘못을 하고도 그것은 보이지 않고 합리화하고 남의 탓으로 돌린다.

우리는 눈감고 아웅하지만 로맨스쯤으로 치부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가 없다.

 

그걸 깨닫게 하실려고 여러모로 인도하시고 회개케 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모른다.

진노의 날, 심판하시는 날은 반드시 온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아가지 말아야 한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괞찮으니까,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모르고

점점 대담해지고 끝간 데까지 달려 가는 것이 죄의 특성이다.

죄란 놈은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모르는 악한 본성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싹둑 잘라내지 않으면, 점점 커지고 담대해지고 죽음의 지옥문을 향해 가고야 만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우리는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일에 대하여 성령으로 힘을 다해 싸워야 한다.

죄는 우리 주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죽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죄의 속성과 힘을,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사탄의 속성과 힘을 가볍게 보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구해야 할 것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이다.

 

같은 영광과 존귀일지라도 세상이 주는 것들은 썩어질 것들에 지나지 않다.

거기다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생애를 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썩지 아니할 영광과 존귀이다.

 

세상은 영광과 존귀가 무너지면 또 다른 자가 그 위에 올라가서 더욱 악을 행한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의 역사였고 패망의 역사였다. 세계 정치의 역사였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과 존귀는 영원한 것이다.

이 땅에서 누리다가 천국에 가서 영원히 누리는 면류관들이다.

 

이 존귀와 영광을 구하신다면 참고 선을 행해야 한다.

고난 중에도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이 아버지의 뜻을 묻고 분별하고 그 뜻에 준비하고 헌신해야 한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찾고 묻고 확인하고 준비하고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실 진노의 날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만다.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그것을 보게 하실 것이다.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던 그들에게

그들의 그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행한 대로 보응하실 날이 오고야 만다.

그들이 쌓은 진노에 대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실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신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우리에게도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잘못과 죄를 안 지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으로 역사하실 때

우리는 얼른 깨닫고 회개하고 우리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운 것처럼

믿음으로 서있는 우리도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도 비유로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눅 13:4-9)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회개)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자하심 끝에 준엄하심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알고

행여 우리는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시기 바란다.

우리의 일생이 그렇게 긴 것이 아니다.

웃고 즐기고 춤추다가 소돔과 고모라성에 종말이 오고야 말았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탐심과 정욕으로 살 때가 지나간 때로 족하다.

우리 주님의 몸이 찟기심으로 열어놓은 휘장사이 새로운 살 길로 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에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자주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를 멸시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참고 기다리심을 멸시하다가

큰 코 다칠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 날에 땅을 치고 통곡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날에 내가 도무지 너를 모른다 하시고 문을 열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준엄하심과 인자하심을 함께 기억하시고

우리가 구할 것, 행할 것, 나아갈 것을 다시 한번 챙기시기 바란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썩지 않을 영광과 존귀의 영생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