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相扶相助), 생각하면 할수록 참 오묘한 삶의 이치다.
상부상조는 실로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이며, 모두가 사는 지혜의 길이다.
온 세계를 보라. 세계의 구석구석에는 온통 상부상조의 질서가 가득하다.
하늘과 땅이 상부상조하고, 태양과 지구와 달이 상부상조하고,
꽃과 벌이 상부상조하고, 숲과 인간이 상부상조하고,
남자와 여자가 상부상조하고, 밤과 낮이 상부상조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창조자인 당신까지도 피조물과 상부상조하도록 구조화하셨다.
하나님은 전적 타자이시며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신데
피조물과 상부상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할지도 모르겠지만 깊이 생각하면,
창조는 하나님의 능력을 뽐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피조물에게 묶는 행위,
즉 피조물과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사람은 끝없이 위대함과 완전함을 꿈꾸어왔다.
자기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며 살아갈 수 있는 완전함, 모든 능력을 갖춘 슈퍼맨을 꿈꾸어왔다.
그러나 이 꿈은 상부상조의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겸허를 알지 못한 어리석음의 극치일 뿐이다.
솔직히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은 없다.
설사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또 자기 힘으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 하더라도,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과 존재의 도움이 필요치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과 존재의 도움이 필요치 않으면 모든 관계가 단절될 것이고,
모든 관계가 단절되면 자연스레 자기 존재 안에 갇힌 고독한 영웅이 될 테니까 말이다.
무릇 삶의 기쁨과 행복이란 상부상조에서 피어난다.
내가 가진 것으로 베풀고 돕고 나누는데서, 내게 부족한 것은 받고 의지하는데서,
서로의 약함을 품고 용납하는데서 삶은 무르익는다.
사실 공동체를 살찌우는 것은 빼어난 능력이나 지식이나 돈이나 권력이 아니다.
상부상조다.
그리고 상부상조는 약함과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강함은 공격욕망을 자극하고, 부족함 없음은 교만과 오만을 낳는데 비해
약함과 부족함은 상부상조를 부르고 촉진한다. 삶의 기쁨과 행복을 꽃피운다.
그런 면에서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다.
약함을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지만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직이요 겸허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실로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현자의 덕이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한 번도 위대함과 완전함을 꿈꾸지 않았다. 영웅을 꿈꾸지 않았다.
나는 오직 부족한 인간이기를 꿈꾸었다.
한없이 부족한 인간, 한없는 부족을 아는 인간, 그래서 타인을 받아들 줄 아는 인간,
타인의 손을 잡을 줄 알고 타인에게 손 내밀 줄 아는 인간이기를 꿈꾸었다.
나는 예수를 알고 나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나를 발견했다. 텅 빈 나, 가난한 나를 발견했다.
화들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공부했다. 책 속으로 들어갔다.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채우고 줄 것을 채우기 위해서.
최고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고 풍성히 나누기 위해서.
나는 내가 줄 수 없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줄 수 있는 것에 전념했다.
이것이 상부상조의 세계를 살아가는 길이라고 믿고, 내가 줄 수 있는 하나를 준비하는 일에 전념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식하며 산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음을, 그것도 매우 보잘 것 없음을 인식하며 산다.
교우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교우들의 도움에 감사하며 산다.
말씀샘교회 또한 크고 강한 교회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온 교우가 제각각 독립적 주체이면서 상호의존적인 지체로 겸허하게 살아가는
상부상조의 공동체로 자라기를 꿈꾼다.
상부상조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교회로 자라기를 꿈꾼다.
‘상부상조’(相扶相助), 참으로 오묘한 삶의 이치다.
나는 모든 존재를 독립적 개체이면서도 상호의존적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지혜와 솜씨에 경탄한다.
스스로 있는 분, 완전한 주체이신 분께서 피조세계에 묶이신 한없는 겸허에 무릎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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