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목사와 먹사

새벽지기1 2017. 3. 10. 07:04


한국인의 언어 조어력은 실로 탁월하다.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얼굴이 큰 사람은 ‘얼큰이’,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은 ‘쌩얼’,

잘 생긴 사람은 ‘얼짱’,

못 생긴 사람은 ‘얼빵’,

남성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진 엘리트 영성은 ‘알파걸’,

만사를 귀찮아하며 게으르게 사는 것은 ‘귀차니즘’,

먹고 사는 일에 전념하는 것은 ‘먹고사니즘’ 등등

기발하고 톡톡 튀는 조어력의 생산물들이 기존의 언어세계를 휘젓고 있다.

 

신조어 중에는 비틀기의 고난도가 발휘된 것들도 많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첩공주’라,

그녀의 너무도 객관적인 말투를 ‘유체이탈화법’이라 한 것은

실로 정곡을 찌르는 비틀기의 전형이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목사를 ‘먹사’라 하는 것도 정곡을 찌르는 비틀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묻자. 기독교와 목사가 왜 비틀기의 대상이 됐을까?

두 말할 것이 없지 싶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다고 봤기 때문일 게다.

교회와 목사는 세상과 ‘어떻게’가 달라야 하는데

‘어떻게’가 다르지 않다고 봤기 때문일 게다.

이런 현실을 돌아보며 곰곰이 나를 돌아본다.

나는 목사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죄인인 목사요, 목사인 죄인이다.

목사와 죄인의 조합이 나다.

 

목사와 죄인의 조합,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님은 분명하다.

수많은 직업군 중 담당자와 담당해야 하는 업무의 부조화가 도드라지게 큰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말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죄인으로서 최고의 의와 사랑과 용서의 길을 가야 하는 것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목사로서의 삶이 무겁게 다가오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게다.

 

목사와 죄인의 조합.

목사가 ‘먹사’ 되기 쉬운 이유다.

'좋은 말씀 > -목회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적 회심과 인문적 이해  (0) 2017.03.12
법을 필요로 하는 교회  (0) 2017.03.11
삶의 예찬  (0) 2017.03.08
메르스 정보 공개의 중요성  (0) 2017.03.07
우리는 불행하게 살도록 교육받았다  (0) 2017.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