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스크랩] 우리는 한 몸이다!

새벽지기1 2016. 10. 6. 21:18

우리는 한 몸이다!

(고전12:12-27)

◆서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최근 제가 속한 총회가 양분되었습니다.

총회원인 나에게 양 총회본부에서 공문이 옵니다.

모두가 참 뻔뻔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가장 큰 범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상숭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죄악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몸 된 교회를 나누는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12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라 하는것이니”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말 그대로 4분 5열 된 교회였습니다.

나는 바울파다. 나는 예수파다. 나는 베드로 파다. 나는 아볼로 파다.

사도행전 20:28 말씀에 보면 교회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밖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고린도교회는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책망합니다.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무슨 말씀입니까?

너희가 아직도 영적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미성숙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 생활을 오래한다고 해서 영적으로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장로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분열의 주법이 있는지 아십니까?

심지어 목회자들 가운데에도 분별력 없이 처신해서 교회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잠재력(?)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안하지만 여러분에게도 그런 잠재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교회를 세우는 일은 힘들지만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은 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허무는 일의 배후에는 바로 사단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분열시키는 행위가 무섭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총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고 성도는 그 지체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 몸 된 교회가 찢는 것은 바로 ‘우리 즉 성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찢겨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본론

그러면 몸 된 교회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의 한 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1:18에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27절에도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가 되고 성도는 그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머리와 몸, 몸과 몸의 관계는 어떨까요?

좀 쉽게 말하면 머리가 없으면 몸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체 일부가 없는 몸은 있어도 지체가 모두 없는 몸은 없습니다.

몸은 하나지만 지체는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교회의 각 지체들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12-14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 지체의 중요성입니다.

15-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

 

다시 말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아주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18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우리는 그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비록 어떤 사람은 금수저로 어떤 사람은 흙수저로 태어났을지라도

18절 말씀대로 모두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신 것’입니다.

동방의 거부 욥도 고난을 받아 불행한 한때가 있었고

거지 나사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로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몸 된 교회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둘째, 그러므로 우리는 각 지체들을 <잘 배려>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가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지체라는 사실’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도 중요하고 나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 초청목사님께서 이런 예화를 하셨습니다.

손가락 다섯이 서로 자기 자랑을 했다.

첫째손가락 : 엄지손가락, 대지(大指), 거지(巨指)-‘내가 가장 굵고 힘이 세다.’

둘째손가락 : 집게손가락, 검지, 식지(食指)-‘무슨 소리 내가 가장 많이 쓰이는데...’

셋째손가락 : 가운뎃손가락, 중지(中指), 장지(長指), 장지(將指)-‘웃기지 마. 내가 가장 커. 내가 대장이야.’

넷째손가락 : 약지(藥指), 무명지(無名指)-‘내가 없으면 결혼반지 못껴!’

다섯째손가락 : 새끼손가락, 소지(小指)-‘(할 말 없이 있다가) 나 없으면 병신이야.’

만들어 낸 이야기지만 오늘 본문의 지체에 관한 설교를 하는데는 아주 적격이라 옮겼습니다.

목사님의 의도는 ‘나 아니면 안돼?’라는 말과

‘너 없으면 안돼’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예화를 인용하셨습니다.

그러면 본문 14-17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3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래서 우리는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 존중해 주고 싶어도 도저히 존중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교회 성도들의 문제요 한계입니다.

가지원 여러분 다음 달에 가지원 헌신예배 준비하고 있지요?

잘 준비되고 있지요?

다시 말하지만 가지원 헌신예배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가지장으로서 헌신을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최고 헌신은 ‘가지장의 삶’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세상 만물이 한 해나 두해가 지나면 열매를 맺습니다.

DFC의 가지회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가지원의 삶을 결단하십시오.

‘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부르심에 순종’이 먼저입니다.

가지원 헌신 예배의 목적 두 번째는 ‘동역자의 하나됨’입니다.

혹시 노파심에서 권면합니다.

모두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배려 존중해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지 말고 누가 했으면 좋겠다고 추천 받는 사람이 우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해도 자신을 드려내는 예배는 의미가 없습니다.

‘잘 포장된 예배’가 아니라 ‘받으실 만한 예배’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러면 각 지체들을 <잘 배려>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세우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가지원 단톡방 소식을 듣습니다.

역대 이런 아름다운 나눔이 없었을 만큼 성숙한 나눔이 있다고 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모쪼록 잘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몸 된 교회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셋째, 특히 연약한 지체들을 <잘 돌봐야> 합니다.

 

 

요즘은 많이 눈높이가 낮아졌지만 옛날에는 청춘 남녀들이 눈이 높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에게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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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은 우선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면 좋겠어. 좋은 직장을 가졌으면 좋겠구.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췄으면 좋겠다. 당연히 건강해야 하구’

친구가 이 말을 듣고 한 말이 뭔지 눈치 챘지요?

‘그런 사람 있으면 내가 결혼하겠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그런 사람 있습니까?

있다면 그 사람 성격이 아주 안 좋을 것입니다.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성향을 종합해 보면

말 잘하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

말 많은 사람, 말 없는 사람!

실력보다 PT 잘 하는 사람, 실력보다 잘 못하는 사람!

잘 가르치(teaching)는 사람, 잘 보살피)care)는 사람!

아침에 약한 사람, 아침에 강한 사람!

노래(그림, 운동...) 잘 하는 사람! 잘 못하는 사람!

심지어 스킨쉽을 잘 하는 사람, 스킨쉽이 전혀 없는 건조한 사람등 다양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동을 못하거나 노래를 잘 못하거나 그림을 잘 못그리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노래 잘하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쓰면 되니까요?

하지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말이 많아도 너무 없어도

주변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닙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 중에 누군가의 연약함입니다.

저는 ◯◯형제가 기타를 치고 바이얼린을 켜는 것이 참 부럽습니다.

나는 음치에 악기치에 공(구기)치입니다.

하지만 가끔 그 형제의 눈치 없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가 불신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불우한 이웃을 돌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연약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지체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21-26절을 제가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더 강한 지체에 대한 경계>로 ‘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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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이는 약한 지체(보이지 않으나 중요한 부분)가 도리어 요긴한 지체들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몸 안의 심장, 뇌, 허파, 간, 신장등이 있고,

몸 밖에는 눈, 혀, 고막, 손가락, 발가락등이 있습니다.

심지어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실 것입니다.(악어와 악어새의 예)

손가락이 없이는 가시를 빼낼 수 없고, 발가락이 없이 서 있거나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배, 허벅지)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수치스런 부분)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학자들은 우리 몸의 은밀한 부분은 예쁜 팬티 브라자로 몸을 가려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는 죄를 짓고, 수치스런 일을 한 지체들에게 더 많은 위로와 격려로 덮어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됩니다.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그 이유는>‘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약한 자를 돌아보게 하신 이유

그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가 든든히 서기 위함입니다.

25-27절 말씀을 다함게 읽겠습니다.

몸(교회) 가운데서 분쟁(분열)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결론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두 분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고 메시지를 마치고자 합니다.

먼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 호수가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묻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 후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1절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사도요한)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이 답변하십니다.

“네가 알바 아니다”

베드로는 은근히 사도 요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는데 그것을 들킨 것입니다.

6

 

다음은 바울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하기전 바나바와 심히 다툽니다.

행15장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성경은 그 결말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물론 후에 바울은 마가를 동역자로 다시 받아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나 바울은 기독교사의 우뚝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이런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 메시지를 하게 된 배경은 요즘 지체들 가운데 약간의 불협화음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단에게 틈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분열 되는 것은 거창한 사건도 있지만 사실은 알고보면 아주 사소하고 작은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단이 틈타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친구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제 말로 여러분을 훈계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드리는 다음 말씀을 가슴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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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복음과 청년
글쓴이 : 광야의 개척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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