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 첫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당연히 말씀과 기도로 시작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먼저 기도에 관한 명언을 몇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다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스펄젼>.'
'기도의 실패자는 생활의 실패자이다<이 엠 바운즈>.'
'기도는 죄를 멈추도록 이끌지만, 죄는 기도를 멈추도록 유혹할 것이다<존 번연>'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키에르케고르>'
그렇습니다.
기도가 우리를 살립니다.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기도란?
흔히들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합니다.
이는 신앙이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또한 기도를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 또는 ‘영적 교제’라고 합니다.
이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가 중요하다라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전투>입니다.
요즘 매주 채플 때 우리 지체들의 대표기도 내용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해가 갈수록 영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준비도, 기도의 깊이도, 기도의 애절함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기도에 대한 메시지를 하려고 합니다.
◆본론
그러면 기도는 왜 해야 할까요?
▶첫째, 기도는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기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시편51편입니다.
<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5.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7.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자복하는 기도를 드린 적이 언제였습니까?
1
초신자 때 기도에 대한 공부를 할 때 꼭 배우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호흡을 잘 해야 하듯이 영혼의 호흡도 중요하다.
여기서 ‘호흡’의 어의는 ‘호(呼-숩을 내쉬가 호)’와 ‘흡(吸-숨 드리 쉴 흡)’이다.
즉, 호흡은 이산화탄소를 내 품고 산소를 드리 마시는 것이다.
이 호흡이 잘 안되면 건강하지 않거나 죽을 수도 있다.
‘영적 호흡’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토설하는 것을 ‘호(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덫 입는 것을 ‘흡(吸)’이라고 한다.>
기억나십니까?
하지만 기도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지만 기도는 공부가 아닙니다.
기도는 <삶>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하루에 기도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할애하십니까?
여러분의 영적 호흡은 건강합니까?
여러분의 영적 맥박은 정상입니까?
저는 요즘 기도에 관한 많은 반성을 합니다.
기도 시간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썼던 기도에 관한 칼럼을 다시 읽었습니다.
<첫째, 기도는 '길게'하라!
어떤 기도는 기도와 동시에 응답되는 것이 있지만
어떤 기도는 수년 또는 수십년이 걸리기도 한다.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응답되기 때문이다.
어떤 기도는 기도한 사람이 죽은 후에 응답되기도 한다.
기도는 길게 해야 한다는 말은
기간적으로도 길게 해야 하지만, 시간적으로도 길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 시간이 10분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3분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랑하는 애인과 3-10분 대화하고 헤어지는 사람은 없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을 하루에 10분 이상 내지 못한다면 신앙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둘째, 기도는 '깊게'하라.
기도를 깊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깊이 하는 기도는 잡념이 스며들지 못한다.
깊이 하는 기도는 기도를 길게 할 수밖에 없다.
깊이 있는 기도가 기도를 길게 넓게 할 수 있다.
깊이 있는 기도하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욱 풍성히 한다.
깊이 있는 기도를 습관화하라.
2
셋째, 기도는 '넒게'하라!
사람들이 처음 예수를 믿으면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좁은 기도'에 습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가족을 위한 기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기도 패턴은 대략 이렇다.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회개와 거룩을 위해 기도한다.
다음은 부르심과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한다.
그 다음은 나의 사역지를 위해 기도한다.
당연히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기도가 주류를 이룬다.
지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고 동역자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
이어서 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다음은 나라와 민족의 긍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북한 동포의 구원과 지하교회를 위해 기도한다.
열방을 위해 기도하면 선교사들의 안전과 건강과 자녀와 사역을 위해 기도한다.
이어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마무리한다.
사랑하는 지체들이여!
기도를 깊게, 길게, 넓게 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영적으로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거룩한 삶>을 위해 기도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해야 할까요?
▶둘째,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전형젹인 기도의 예가 바로 요한복음17장입니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기도입니다.
중동의 이스람권 여행을 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하루에 몇 번씩 종소리를 듣게 됩니다.
무슬립들은 하루 다섯 차례 반드시 기도를 하는데,
다섯 차례는 새벽(파즈르), 정오(주흐르), 오후(아스르), 일몰(마그립), 밤(이샤)입니다.
새벽 기도는 동틀 녘부터 해돋이 전,
3
정오 기도는 하루 중 해가 한가운데 있을 때,
오후 기도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여 햇빛이 노래지기 시작할 때,
일몰기도는 해가 떨어져 붉은 노을이 사라질 때,
밤 기도는 해가 완전히 어두워진 때이며 그 시간은 한밤중까지입니다.
성지 순례 때 이집트에서 처음 이 모습을 보고 충격과 도전(?)을 받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저렇게 열심히 자신의 신들에 대한 교제를 갈구하는데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대접이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엊그제 우연히 <인맥관리 10계명>이란 글을 읽었습니다.
다음 그 중에 몇가지만 옮깁니다.
<1. 지금 힘이 없는 사람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라.
2. 평소에 잘해라.
3. 먼저 인간이 되라.
4.좋은 인간을 만나고 싶거든. 먼저 자기 자신부터 좋은 인간이 돼라.
5. 남을 도와줄 때는 화끈하게 도와줘라.
6. 적을 만들지 마라. 열명의 친구가 한명의 적을 당하지 못한다.
7. 스승부터 찾아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 50% 이상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인맥관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 지 아십니까?
떠나면 그만인 직장에서도 그렇게 처절하게 인맥관리를 하는데
하물며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해서야 되겠습니까?
전에 한번 인용한 예화입니다.
날마다 오후가 되면 딸과 산책하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성탄절 날 저녁 딸이 산책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다음날에서야 아빠의 덧신을 선물로 드리기 위해
딸이 산책에 나올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딸아 나는 네가 나에게 성탄선물을 주기 위해 산책을 하지 않는 것 보다
아빠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 아빠는 더 기쁘단다.’
어쩌면 주님도 이런 심정이 아니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A. W. 토우저목사가 했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열심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아주 많다.
교제를 게을리 하면,
그 교제에서 얻어지는 평안, 충만함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4
그러면 성경속의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을까요?
주님은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으며(눅22:30) 새벽에 기도하셨고(막1:35)
밤새도록(눅6:12) 홀로 기도하셨습니다(눅5:16)
들(눅5:16)과 산(눅6:12)에서도 기도하셨으며
심지어 십자가 상(눅23:34,46)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무릎 꿇고 기도(눅22:41)기도하셨고, 땀이 나도록 기도(눅22:44)하셨습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으셔도 될 그 분이 무엇 때무에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셨을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시고
또한 몸소 그렇게 기도하심으로 모법을 보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과의 길고 깊은 영적 교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우선 확보하고
결심한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해야 할까요?
▶셋째, 기도는 <대적과 일전을 벌이는 영적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출17장은 이와 관련하여 기도가 영적 전투임을 들어내는 가장 극명한 장면입니다.
<출17: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이 전투는 출애굽 3개월 후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정예군대가 없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민족에게 무슨 군대가 있겠습니까?
사실은 여호수아도 장수라기에는 너무도 준비가 안 된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는 보편적인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이 전투의 본질은 <영적 전투>였습니다.
11절이 그 증거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1)”
이런 장면은 신약 사도행전16장에도 나옵니다.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할렐루야!
5
이 뿐만이 아닙니다.
남 유다의 7대 왕여호사밧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암몬과 모압족속이 침공했습니다.
그들의 기세가 하도 강해서 여호사밧은 두려웠습니다.
왕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3절).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
여호와께서 사자를 통해 여호사밧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15절)”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17)”
이 전투는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투의 결말이 궁굼하지 않으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스스로 자멸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니 정확히 말하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전투>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린도후서 10: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엡6:11-13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그러므로...)18.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한 절에 무려 <기도>라는 단어가 가 5회 반복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독교는 정적(靜的)인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역동(逆動)적인 종교이며, 전투적인 종교입니다.
전투적인 종교라고 하니까 IS를 연상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사단에 대하여> 그렇다는 말입니다.
6
◆결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도는 자신에게 있어서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영적 교제>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단과의 관계에 있어서 <전투>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앞의 두 가지에 대하여는 익히 알고 있지만
기도가 영적 전투라는 사실에 대해여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찍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이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400년경)였던
요한네스 크리소스톰은 <기도의 위력>에 나오는 명언을 인용하고
오늘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기도의 위력 속에는
화염을 소멸함과, 사자의 포효를 누름과,
폭군의 횡포를 막음과, 전쟁을 종식시킴과, 마귀를 쫓음과,
죽음의 사슬을 끊음과, 하늘의 문을 활짝 열음과,
질병을 박멸함과, 위선을 드러냄과,
도시를 파멸에서 구출하는 것과,
태양을 머무르게 하는 것과, 천둥번개를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기도하는 곳이 전투현장입니다.
여러분 모두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전사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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