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자연과 은총에 관한 참되고 통일된 지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프란시스 쉐퍼

새벽지기1 2016. 7. 26. 07:04


역사적인 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칼빈은 1509년에 탄생하였으며, 그가 기독교 강요를 내놓은 해가 1536년이었다. 레오나르도가 죽은 것이 1519, 즉 루터와 에크 박사가 논쟁을 벌였던 바로 그 해였다. 레오나르도를 그의 만년에 프랑스로 데리고 온 사람이 프란시스 1세였는데, 바로 이 왕에게 칼빈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를 헌정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교차되는 시기였다.

 

이 통일의 문제에 대하여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 완전히 반대되는 대답을 제시했다. 종교개혁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해석을 거부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자라나는 묵은 인본주의와 자율적인 인간으로 풀어놓아주는 불완전한 타락을 말하는 아퀴나스의 신학에서 문제점이 싹트게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성경에서 말하는 전적 타락을 인정하였다.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진리였다.

 

첫째, 최종적 권위면에서 볼 때 자율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종교개혁자들은 궁극적이며 충분한 지식은 성경에 있다고 주장했다. 교회나 자연 신학 등 다른 어떤 것을 성경과 동등하게 여겨 성경에 첨가하는 견해와는 달리, 성경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구원 문제에서 인간이 자율적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구원을 얻는 데에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인간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을 자격을 갖추는 일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본주의적 요소가 개입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인간의 자율적이거나 인본주의적인 노력, 또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시공간에서 죽으심으로 완성하신 사역을 근거로 해서만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빈손을 들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즉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역에는 분열이 있을 수 없다. 궁극적인 규범이 되는 지식에는 분열이 없다. 교회나 자연 신학이 말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것이 달라서도 안 되고, 성경과 합리주의자들의 견해가 차이가 나서도 안 된다.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분열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성경과 믿음만이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이라고 하였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누구든지 종교개혁자들이 가졌던 성경관을 떠나면, 그리스도란 말에서 아무런 내용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신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다. 현대 신학은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분리시키고 있으므로 결국 그리스도라는 낱말을 내용 없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하신 계시를, 기록된 성경의 계시와 연결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자신의 교훈을 따른다.

 

성경은 두 종류의 지식에 대한 열쇠를 제시한다. 즉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인간과 자연에 관한 지식이다. 위대한 종교개혁의 고백문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자기의 속성을 인간에게 계시하였으며, 또한 이 계시는 인간에게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참된 지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북부 유럽에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문화는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참된 진리는 성경에서부터 얻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원리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진리와 인간에 관한 참된 진리를 알며 또한 자연에 관한 참된 것을 알게 된다. 즉 우리는 성경을 기초하여, 비록 완전한 지식은 아니지만 참되고 통일된 지식을 소유한다.

 

- 프란시스 쉐퍼, 「이성에서의 도피」, 2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