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프란시스 쉐퍼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 / 주도홍

새벽지기1 2016. 8. 1. 11:11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

Francis August Schaeffer(1912-1984)  

                                                                                                           

 

I. 들어가는 말

 

기독교 사역 동역회한국 라브리가 주관하는 이 특별강의에서 역사신학도인 본인에게 주어진 주제는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이었다. 먼저 그의 72년간의 생애를 개략적으로 살펴볼 것인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삶을 주장하셨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니까 쉐퍼의 이 땅에서의 영적 순례자의 삶을 추적하게 될 것인데, 특히 그가 추구했던 진정한 영성이 무엇인지, 곧 구원 이후의 진정한 성도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인식하게 될 그의 성화관(聖化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주된 텍스트로서 그의 저서 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 1971)을 중심으로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쉐퍼의 영성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특히 그의 생애와 사역은 라브리 공동체와 함께 하는데, 영성이 곧 라브리 운동의 기본이며, 생명 줄이었기 때문이다. 쉐퍼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책임의 막중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각주는 가장 간략하게 제시하도록 노력했다. 참고문헌을 비교해 보면 금방 자세하게 알게 될 것이다.

 

 

II. 다루는 말

 

1. 생애

 

1) 어린 시절

 

쉐퍼는 1912130일 미국 펜실베니아의 독일인 촌에서 어머니 베씨 윌리암슨과 프란시스 어거스트 쉐퍼 3세의 독자로 태어났다. 육체 일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노동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사다리를 오르고, 나무를 톱으로 베며, 전선을 바로 교정하고, 파이프를 수리하는 일을 도우면서 셀 수 없는 시간들을 아버지와 함께 잡다한 노동 일들에 익숙하였다. 그 어떠한 지성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그저 신체를 쓰는 일들에 종사하는 아버지의 아들로 일찍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그의 학교생활도 단지 이러한 손재주 개발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그런데, 일찍부터 그의 비범한 지적 능력이 드러나고야 말았는데, 그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문을 연지 20년 역사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두 번째 우수한 학생이라는 편지 때문이었다. 그를 아는 주위의 모든 부모들은 기뻐하였다. 그러나 오직 한 부모만이 이 기쁨에 동참하지 않았는데, 쉐퍼의 부모였다. 이유는 그가 기술학교에 가서 기술을 익히기보다는 대학의 상아탑에 파묻혀 부모에게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잘못된 길로 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2) 청소년기

 

아버지의 완고함 때문에 고등학교에서도 기술교육 방향으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쉐퍼는 어느 날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의 음악에 매료되었는데, 그일 이후로 고전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전 음악과의 만남은 쉐퍼에게 있어서 새로운 문화적 만남이었다. 두 번째 그가 새로운 환경과 문화를 접하게 되는데, 불신자의 가정의 자녀였던 그가 어느 날 신학적으로는 좀 자유스러운 장로교회에 출석하는 일이었다.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를 통하여 그는 우연찮게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헬라 철학서였다. 이 책을 읽는 중 그는 철학에 심취하였고, 인생의 거대한 문제들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17세의 청소년이었던 그가 아무리 자신에게 도전을 준 헬라 철학과 씨름을 하여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6개월 동안 성경을 통독하던 중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해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기에 있으며, 왜 우리는 이곳에 있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1930년 어느 날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로 헌신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그의 삶의 모든 기준이며, 완벽한 지침이 되었다.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그에게 모든 우주 만물은 분명한 의미를 주고 있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고, 풍요로운 영적 생활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의 모든 구절들이 새롭게 자신에게 부딪혀 왔다. 모든 성경이 새로웠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만이 성경을 믿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3) 반대하는 부모

 

1932126일 그는 장차 그의 평생 동안 동역자요 반려자가 될 에디드(Edith)를 만났다. 이제 쉐퍼는 목회자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여전히 부모님은 이러한 쉐퍼의 생각을 반대하며, 전기 엔지니어가 될 것을 고집하였다. 아버지는 이러한 아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가까이 위치한 직업학교에 입학하여 한 학기 전기공학을 수학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목회자로의 소명은 결코 그를 가만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로 결심하고 버지니아에 있는 헴프덴-시드니 대학(Hampden-Sydney College)에 등록하였다.

비로소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가야하는 아침에 그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을 때, 아버지의 너무도 강력한 반대에 또 다시 직면하게 되었으며,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재고할 것을 주장하였다. 부모의 뜻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뜨거운 기도를 드렸다. 한참을 기도한 후,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동전이 잡혔다. "하나님, 내가 떠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동전에 머리가 그려진 부분을 보여주십시오."하면서 동전을 던졌을 때, 머리가 그려진 동전 부위가 보여졌다. 다시 반복하였다. "하나님, 이제는 동전의 반대 면을 보여 주십시오." 이번에도 역시 동전의 반대 면이 보여졌다. 세 번째 기도를 한 후, "하나님, 이제는 다시 머리 부분을 보여주십시오."라고 말한 후, 던졌을 때 또 다시 머리 부분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 쉐퍼의 확신은 더욱 굳어져서 아버지께는 유감스럽게도,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더욱 분명히 믿는 믿음 가운데서 대학이 있는 버지니아로 떠나야만 했다. 이 순간 부모님들은 이제 더 이상 쉐퍼의 결심에 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4) 대학시절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쉐퍼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밤샘을 하며 공부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다른 학생들은 술과 향연으로 세월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어느 날 쉐퍼는 학과를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나름대로 사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토요일 밤은 성령이 역사 하는 감동적인 시간이 되었다. 나름대로 전도의 열매가 있었고, 쉐퍼는 가까이 위치한 흑인교회에 나가서 주일학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곳에서 국제 어린이 선교에 대한 꿈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고향집에 와서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고, 교회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고향 교회야말로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에 서 있는 장로교회였다. 어느 날 저녁 예배에 한 연합교회(Unitarian) 목사가 와서 청년들에게 특강을 하였는데, 제목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나는 아는가?"(How I know that Jesus is not the Son of God, and how I know the Bible is not the Word of God)였다. 그 자리에서 쉐퍼는 일어서서 1520년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루터가 외쳤던 것처럼 그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대적한 쉐퍼의 논증은 그렇게 내용이 뒷받침이 되지 못한 힘이 없는 것이 되어, 못내 아쉬웠다. 이렇게 쉐퍼의 발언이 진행될 때, 젊은 한 여성이 한 편 구석에서 그를 주목하였고, 그가 누구인지를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프란시스 쉐퍼이며, 부모가 목사가 되려는 그를 싫어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쉐퍼가 발언을 끝내고 자리에 앉자마자, 이제는 그 젊은 여성이 일어나서 단지 쉐퍼가 언급 정도로 끝냈던 내용을 보다 충분하고 명료하게 설명을 했다. 이 때 쉐퍼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제는 거꾸로 쉐퍼가 옆 친구에게 그녀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물어야만 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디드 세빌(Edith Seville)이며, 바로 얼마 전 토론토에서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것이었다. 쉐퍼는 비로소 같은 영적 동료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선교사의 딸로서 중국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기도와 헌신된 제자의 삶을 배웠다. 또한 신앙의 지성적인 면도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그녀의 가정에 초대되어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여기서 쉐퍼는 개혁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에 참여하곤 하였다. 보다 논리적이고 신학적이었던 그녀가 쉐퍼에게 개혁주의 신학자 그레샴 메이천(Gresham Machen)의 저술들을 소개하였다. 메이천은 두 사람의 신학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3년 동안 사귄 후, 1935726일 결혼하였다. 그 해 1월 쉐퍼는 헴프덴-시드니 대학을 최우수(magna cum laude)의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5) 신학교 시절

 

1935년 같은 해 9월 가을 학기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 등록하였다. 여기서 그는 메이천, 코르넬리우스 밴틸(Cornelius Van Til), 알렌 맥래(Allan MacRae) 등의 교수들과 함께 흥미로운 신학수업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입장 등등의 문제로 메이천이 성직 정직을 당하는 등의 교단 내의 문제로 학교는 나누어지게 되었다. 메이천은 미국장로교단(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을 세우는데 앞장섰고, 1937년 버즈웰(James O. Buswell Jr.), 매킨타이어(Carl McIntire) 그리고 레어드(Harold Laird) 등의 교수들이 함께 나와 페이스 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와 성경장로교단(the Bible Presbyterian Church)을 따로 세웠다. 1937618일 첫째 딸 프리실라의 아버지로서 쉐퍼 역시 이 페이스신학교의 학생이 되었다. 쉐퍼는 1938년 페이스 신학교의 첫 번째 졸업생이 되었고, 역시 첫 번째 목사 안수를 이 성경장로교단에서 받았다. 1938년부터 48년까지 펜실베니아와 미주리에서 목회를 하였다. 목회 초년생으로서 쉐퍼는 어린이들과 청년 사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부인 에디드 역시 이러한 사역에 특별한 은사가 있었다.

 

6) 영적 위기와 기회

 

세계 2차 대전 후 19473개월 동안 유럽 교회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났던 쉐퍼는 1948년 유럽으로의 이주를 결정하고, 아내 에디트(Edith)와 세 딸(Priscilla, Susan, Deborah)이 스위스로 선교하기 위하여 짐을 챙겼다. 도착한 곳은 스위스 로잔이었다. 그곳에서 어린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국제 기독교 교회협의회 창립을 도왔다. 그러던 중 1951년 쉐퍼는 영적 위기를 체험하였다. 1년 후 1952년 아들 프랜키(Franky)가 출생하였다.

그럼 이 영적 위기에 대해서 조금 더 언급하기로 하자. 1951년 겨울 어느 날 영적 위기를 인식한 쉐퍼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영성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소명의 확인과 헌신적인 삶의 결단을 새롭게 하였다. 자신의 저서 참된 영성(True Spirituality)에서 쉐퍼는 이에 대한 간증을 하고 있다.

 

"1951년과 1952년에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영적인 위기를 맞았다. 나는 여러 해 전에 불가지론자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십 년 동안 목회를 한 후에 내 아내 에디스와 함께 유럽에 건너와 수 년 동안 사역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시기 동안에 나는 그리스도인의 역사적 입장과 가시적 교회의 순수성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는 강력한 짐을 느꼈다. 그러나 점차 하나의 문제, 곧 실재의 문제가 내게 다가왔다. 이것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첫째, 정통 신앙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 성경이 기독교의 결과여야 한다고 아주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들의 실재를 본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내게는 느껴졌다. 둘째, 내 자신의 실재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초기보다 더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내게 점차로 커져갔다. 나는 정직하게 내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나의 입장 전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나는 맑은 날에는 산에 올랐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우리가 살던 옛 농가의 건초로 된 다락에서 서성거렸다. 나는 걷고 기도하면서 성경이 가르쳤던 것을 심각하게 숙고하였고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들을 검토하였다. ... 점차 나는 내가 그리스도가 이루신 사역의 의미에 관하여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거의 듣지 않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 해가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하였고 찬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정말 흥미롭게도 나는 여러 해 동안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그 기쁨과 찬송이 흘러나올 때에 나는 시() - 확신, 삶에 대한 긍정, 감사, 찬양의 시 - 가 다시 한번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 그 시는 내게 경이로웠던 나의 마음속의 노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과거나 현재나 라브리 공동체의 실질적인 토대이다."(기독교 영성관, 217-218)

 

어거스틴, 루터에게 찾아왔던 극적 순간처럼, 각성과 헌신에로의 새로운 전환을 체험한 쉐퍼는 3년 동안의 강한 영적 체험을 배경으로 1953515일 동안의 미국 방문 중 진정한 영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346회의 강연했는데, 신학적으로는 성화(sanctification)를 다루는 이 내용이 1971참된 영성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쉐퍼의 영성이 라브리 공동체의 영성이며 라브리 운동의 실질적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쉐퍼의 생애와 사역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7) 라브리(L'Abri) 공동체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를 소개하는데 있어서, 라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라브리를 빼 놓고 쉐퍼의 생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쉐퍼는 이 라브리 영적 포도원의 근면 성실한 일군이요, 소명 받은 충성스런 주의 종이었다. 영적 은신처라는 의미를 가진 불어 라브리(L'Abri)는 쉐퍼를 쉐퍼 되게 한 사역의 현장이요, 꿈이 현실화되는 영적 보금자리였으며,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심을 확인시키는 기적의 실체였다.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이 무언인가를 확실히 보여준다.

 

"라브리는 영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특히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아내는 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붙어 싸우기 마련인 기본적인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사람 모두를 위한 영적 은신처다."(라브리, 15)

 

또한 라브리는 거룩한 낭만이 있는 사역의 현장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까, 중세 수도원적인 엄격성과 금욕주의적인 타율적 규율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밤이 오면 스위스 알프스에서 얻어진 향기 그윽한 장작들로 지피는 따스한 벽난로 가에서 복음의 풍성함을 실감하고 삶의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율적이고 균형 잡힌 영성이 지배하는 영적 공동체였다.

 

"때로 음악의 밤을 가질 때면 전에 오페라 가수였던 라브리 일꾼이 멋진 독창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바이올린, 오르간, 첼로 등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라브리, 17)

 

어떻게 이 라브리 사역은 시작되었는가? 50년대 중반 열심 어린 사역을 위한 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님,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가르쳐 주소서! 이 때, 큰 딸 브리스길라가 몇몇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는데, 그들은 서로간에 하나의 물음을 놓고 진지한 논의를 하게 되었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아버지 쉐퍼를 그 현장에 불러와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러한 일에 은사가 있었던 쉐퍼는 이제 여러 모습으로 소문이 번져가게 되었다. 결국 보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쉐퍼를 중심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리고 영적 대화에 진지하게 참여하기를 시작하였다. 어느 듯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토론, 상담, 그리고 기도가 이 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라브리 사역은 태동되었다. 사실 이러한 사역을 쉐퍼는 어느 때고 생각하고 계획해 본 적은 없었다.(Burson & Walls, 41)

 

8) 저작들

 

그의 저서는 전집 5권으로 미국 일리노이즈 주에 위치한 웨스트체스트( Westchester, Illinois)에 있는 크로쓰웨이 출판사(Crossway Books)에서 1982년 완간 되었다. The complete Works of Francis A. Schaeffer로서 첫 권은 "A Christian View of Philosophy and Culture"라는 주제 밑에 4부로 나누어져 있다 : "Book one: The God Who Is There - Book Two: Escape from Reason - Book Three: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 - Book Four: Back to Freedom and Dignity". 두 번째 권은 "A Christian View of The Bible as Truth"이라는 주제로서 5부로 나누어져 있다 : "Book one: Genesis in Space and Time; Book Two: No Final Conflict - Book Three: Joshua and the Flow of Biblical History - Book Four: Basic Bible Studies - Book Five: Art and the Bible". 세 번째 권은 "A Christian View of Spirituality"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4부로 나누어져 있다: "Book one: No Little People - Book Two: True Spirituality - Book Three: The New Super-Spirituality - Book Four: Two Contents, Two Realities". 네 번째 책은 "A Christian View Of The Church"라는 주제로 5부로 나누어져 있다 : "Book one: The Church at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 Book Two: The Church Before the Watching World - Book Three: The Mark of the Christian - Book Four: Death in the City - Book Five: The GGreat Evangelical Disaster". 마지막 다섯 번째 책은 "A Christian View of the West" 주제로 4부로 나누어져 있다 : "Book one: Pollution and the Death of Man - Book Two: How Should We Then Live? - Book Three: 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 Race? - Book Four: A Christian Manifesto". 필자는 1988년에 제 2판으로 나온 영어 전집을 소유하고 있다.

쉐퍼의 전집은 한국에서도 크리스찬 다이제스트의 수고로 번역 완간 되었는데, "I. 기독교 문화관", "II. 기독교 성경관", "III. 기독교 영성관", "IV. 기독교 교회관", "V. 기독교 서구관"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생명의 말씀사에서도 적은 분량의 단 권으로 하여 전권 22권으로 보급하고 있다. 아무튼 출판사들의 노력으로 쉐퍼의 전집이 독자들에게 우리말로 읽혀지고 판을 거듭하면서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쉐퍼의 사상이 70년대 이후 한국 교회에 미친 영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쉐퍼의 어떠한 점이 한국교회의 독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하겠다. 특히 쉐퍼의 우주적, 균형 잡힌 전인적 영성이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 영성

 

1) 정의

 

먼저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의해 볼 것이다. 전인적이며 우주적 영성을 쉐퍼는 제시한다. 우리의 하나님이 만유의 주시며, 만 왕의 왕이시라면 그의 주되심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밝히 들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쉐퍼의 영성의 특징은 두드러진다. 신학적으로 볼 때 쉐퍼의 영성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성으로서 곧 성화론이라 하겠다.

 

"참된 영성은 실재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죄악 된 것들 - 하나님의 성품에 일치하지 않는 것들 - 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삶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참된 영성은 삶의 모든 부분을 포괄할 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모든 부분을 동등하게 포괄한다. 이런 의미에서 실재와 관련하여 영적이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기독교선언, 17)

 

그러니까 우주적 영성을 쉐퍼는 강조한다. 골방의 영성이 아니라, 우주적 영성이요,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자신의 모든 피조물을 향한 영성이다. 영성의 폭이 삶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결코 부분적이지 않다(not fragmented).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성경의 우주관의 통일성과 관련되어 있다."(기독교 영성관, 282)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에는 전 인격이 포함된다. 하나님과 사귀며 산다는 것에는 전 생활이 포함된다. 그러나 현세에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결단을 한다는 것에는 실생활이 포함되고 영원 전체가 포함되는 것이다."(라브리, 187)

"하나님은 전인을 만드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것도 전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그리스도의 주권은 전인에 미친다. 그것은 이른바 인간의 영적인 것들, 지성적인 것들,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것들을 포함한다. 그것은 법률, 사회학, 심리학을 포함한다. 그것은 인간과 그의 존재의 모든 부면을 포함한다."(기독교 영성관, 439)

 

그렇다고 참된 영성은 쉐퍼에게 있어서 성도의 보여지는 외적인 삶만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내적인 삶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참된 영성은 결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 모든 것의 목표는 우리가 내적인 어떤 상태에 이르는 것이며 외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기독교 영성관, 225) 이 점에 있어서 쉐퍼는 세 가지 결론에 이른다.

 

첫째,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친교의 실재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내적 자아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 둘째, "인간의 진정한 싸움은 외적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세게 안에 있다는 것", 셋째, "참된 영성은 언제나 내부, 우리의 사고 세계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기독교 영성관, 342-344)

 

그러니까 참된 영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바로 형성되어질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칭의라는 순간적인 관계와 동시에 순간 순간의 모든 성화의 포괄적 관계가 하나님과 바로 유지되어질 때만이 참된 영성은 가능하다. 전인(the whole man)과 전 문화(the whole culture)를 포함시키는 영성이야말로 성경적이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모든 삶과 문화'는 먼저 하나님, 다음으로 서로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토대로 하였다. 그것은 단지 종교적인 생활이 아니라 문화 전반이었다. 그것은 총체적인 문화 관계였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더 이상 하나의 나라로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화와 삶의 방식 전체가 사랑과 교제의 결정적인 다양성에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삶에 있어서 '영적인 것'과 그 밖의 다른 것들 간에 플라톤적인 이분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기독교 영성관, 400)

 

2) 오해된 영성

 

쉐퍼에게 있어서 진정한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오해되고 있는 영성에 대한 언급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해되어지고 있는 영성이란 신앙훈련 수준의 영성, 율법주의적 영성, 반지성주의, 탈세상주의적 영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쉐퍼는 이원론적 영성을 경계한다. 곧 영혼은 중시 여기나, 물질적인 삶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 영성에 대한 오해를 지적한다.

오해된 영성에 대한 쉐퍼의 분명한 지적은 당시 자신의 교회적 배경, 곧 신학교 교육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되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쉐퍼의 비판적 지적은 미국 보수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장로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는 너무나 자주 플라톤적이며 지나친 영성주의적 기독교의 징후를 보여왔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이해하는 영성이란 흔히 삶의 전 영역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신앙과는 다른 것이었다. 이 영성은 종종 아주 좁은 영역으로 한정되었다. 또한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은 그들 자신의 계획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가 전적으로 그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매우 자주 나타났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질문을 제기한다. 왜 우리는 길에서부터 그토록 멀리 탈선할 때까지 스스로를 방치해 두었던가? 틀림없이 이 질문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기도 할 것이다."(기독교선언, 58)

 

특히 사랑이 없는 죽은 정통에 대한 쉐퍼의 지적은 예리하며, 더욱 강도가 더해진다.

"이 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정통 개 교회들이 사랑과 교제의 흔적을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죽어 있는지 모른다. 정통이라고 하지만 죽어서 추한 모습뿐이다! 개 교회 차원에서 아무런 실재도 찾아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부인하는 정도가 극에 이른 것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부인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 교회에서는 교인이라거나 출석자라거나 기부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사람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정신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들은 사람들이고,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인 우주를 믿는다고 하는 말과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기독교 영성관, 400)

 

이의 - 쉐퍼의 오해:

 

게다가 쉐퍼는 경건주의의 영적이며, 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요소가 플라톤적 영성 이해로 현대 기독교인들을 잘못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은 기독교의 지적인 부분이 무시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길지 않게 언급한다. 그러나 과연 그가 역사적 경건주의를 바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느 시대든지 기독교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인 경건주의를 향한 오해에 의한 쉐퍼식의 발언은 수정을 요한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경건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안될 것이다. 경건주의야말로 진정한 종교 개혁적 사상, 곧 바른 교리에 근거해서 바른 삶을 강조했던 균형과 조화를 강조했던 운동이었다. 어쩌면 쉐퍼가 그토록 강조하고 구현하고자 했던 바로 그 전인적 경건과 영성을 추구했던 운동이었다. 경건주의에서 복음적 사회활동이 출발되었다는 사실은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하겠다. 특히 프랑케가 이끌었던 할레 경건주의는 이 점에 있어서 분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리를 한다면, 부분적으로는 이원론적인 삶의 모습을 지적하는 쉐퍼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경건주의에서 왔다는 언급에는 숙고가 요한다 하겠다.

 

3) 두 가지 요소

 

쉐퍼에게 있어서 영성은 편이적으로 내지는 교육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신앙 영성과 생활의 영성을 말한다.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교리의 영성으로 이해 할 수 있으며, 삶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으로 묘사된다. 교리의 영성은 "바른"(right)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공동체의 영성은 "아름다움"(beautiful)을 나타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는 신앙의 영성은 강조하여 왔기에 쉐퍼에게 있어서 강조되는 공동체의 영성은 신선한 느낌을 우리에게 준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성이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과 조화가 있는 영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쉐퍼가 나누는 이 두 가지 영성은 근원적으로 또한 사랑의 영성이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된다. 사랑은 영성의 절정을 이루며, 영성의 모든 면을 포괄한다. 곧 이것이 라브리 공동체의 균형 잡힌 영성으로의 추구였다.

 

"가시적 교회의 순수성을 위한 최종 목적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다음으로 우리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기독교 영성관, 398)

"성경 안에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여야 한다. ...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는 영성을 적절하게 강조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라브리 공동체에서 행하고자 했던 것이다. ... 참된 영성은 그러한 것들 속에서 균형을 위해 싸우는 나의 시도이다. 단지 추상적인 교리의 균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개개인과 단체가 살려내야 하는 균형이다."(기독교 영성관, 429)

 

 

4) 영성의 근거 : 기도

 

기도의 영성은 쉐퍼에게 있어서 근원적이면서 실제적인 영성이다. 근원적이라는 말은 그가 편이 상 구분하여 말하는 모든 영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요구되고, 기본이 된다는 말이다. 기도가 실제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의식으로서의 끝이 나서는 안되고, 삶의 능력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성령의 9가지 열매가 기도의 열매로 맺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성도의 성화적 삶에 있어서 기도의 영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그의 라브리 사역은 이 점을 확인하게 한다. 특히 쉐퍼의 동역자 부인 에디드 쉐퍼의 말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제공하는데, 라브리 사역에 있어서 네 가지 원칙은 기도의 영성을 확실히 보여준다. 라브리의 목적은 바로 이러한 기도의 영성에 확고하게 서 있었다. 기도의 영성을 빼놓고 쉐퍼의 영성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 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쉐퍼의 영성은 매우 영적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전인적, 전문화적 영성을 향한 강력한 행동의 배경에는 내적이며, 영적인 영성이 강한 기도의 물줄기와 더불어 도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렇게 정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과 일 속에서 실증적으로 보여 주자.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몇몇 영역에서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구체적인 영역에서 기도로 살 것을 선언했다."(라브리, 18)

 

"우리는 이렇게 하도록 인도 받고 있다고 여겼다 - , 우리의 일,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실증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 주님께서 이런 식으로 살도록 계속 인도하시는 한 말이다. 우리는 라브리 회 설립에 기초가 될 만한 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택하신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고, 그저 스키 타러 오거나 개방된 가정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사람은 모두 막아 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마다 그리고 달마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과 당신이 우리를 돕도록 보내 주시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 등을 댈 충분한 돈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영적인 양식과 육적인 양식 모두 집에 온 어느 손님에게나 거저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3. 우리는 우리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여러 모로 하나님의 활동 계획을 알려 달라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하심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

4. 우리는 또한 만일 이 일이 커 간다면, 우리가 광고하거나 우리를 도울 사람을 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택하신 일꾼을 보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라브리, 148-149)

 

요약하면, 첫째, 기도로 필요한 재정 및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만 아뢴다. 둘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만 보내주시기를 위해 기도한다. 셋째, 사람이 장래를 계획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을 계획하셔서 날마다 그 계획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기도한다. 넷째, 하나님께서 사역에 필요한 동역자를 보내주시기를 기도한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기도의 철학이 라브리를 움직여서, "크든 작든, 널리 알려지든 덜 알려지든, 우리의 기도는 단지 하나님의 목적을 신실하게 이루려는 것이었다."(라브리, 19)

 

이러한 기도의 영성의 배경에는 실질적 체험을 배경으로 하는 나름대로의 확실한 기도의 신학이 정립되고 있었다.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전능하시다. 주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일하실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중 한 가지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영역에서 그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불어넣으실 수 있다.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이나 '신념'을 느끼게 하실 수 있다."(라브리, 150)

 

생활의 영성과 기도의 영성의 불가분리성을 쉐퍼는 말한다. 라브리의 목적을 보면, 더욱 그들의 삶의 실질적 영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영성은 기도의 영성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생활의 영성은 기도를 근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이렇게 정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삶과 일 속에서 실증적으로 보여 주자. 말하자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몇몇 영역에서 기도를 기초로 하여 살기로 한 것이다."(라브리, 18)

 

5) 기본적 고려 사항들: 능동적인 수동성

 

쉐퍼는 참된 영성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잊지 않아야 할 세 가지 고려 사항들이 있음을 주지시킨다. 특히 진정한 영성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에 관한 대답들을(Know-How)을 구체화한다. 기본 전제는 "단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화하면, 첫째,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우리를 통해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는 능동적인 요소가 있다: 그리스도가 행위주체이어야 한다."(기독교 영성관, 276) 둘째, "성령의 사역이 존재한다. ...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섬김을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것이 성령이다."(기독교 영성관, 277) 셋째, "참된 영성은 우리편에서 단지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 여기에는 능동적인 수동성이 있다."(기독교 영성관, 278)

영성의 방법론에 있어서 쉐퍼에게는 부정의 측면으로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는 것이며, 긍정의 측면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는 성경에 근거한 두 축이 있다. 쉐퍼에게 있어서 "바로 이것이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기독교 영성관, 279)

쉐퍼는 온전히 우리의 영성은 크리스천의 능력으로서, "능력은 믿음으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역을 통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셔서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다."고 강조하면서도, 인상적인 점은 참된 영성은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단지 수동적이어서 만은 안 된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그러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조금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아무튼 참된 영성에 있어서 성도의 능동적 책임성을 부각시킴은 의미로운 점이라 하겠다.

 

 

III. 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프란시스 쉐퍼의 생애와 영성을 살펴보았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과 도우심이 있었던 생애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라브리 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그의 영적 생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의 저작은 진정한 순례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독자로 하여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어렵지 않게 친절한 상담자와 같이 이야기한다, 아니 구수한 할아버지처럼 대화한다. 그러기에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그를 부담 없이 사랑하는 것 같다.

예배당에 갇혀 버린 영성에서의 탈피를 요청하는 쉐퍼는 실제적 성경적 영성을 말한다.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성으로서 그 기도를 골방에만 가두어버리는 기도가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능력 있게 하는 영성의 견고한 반석이 된다. 쉐퍼의 영성은 첫째는 바른 교리의 영성이며, 둘째는 아름다운 삶의 영성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묶어주는 말이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곧 쉐퍼의 영성은 사랑의 영성이다. 교리와 삶을 연결시키는 성화론에 강조점을 둔다. 문화 변혁적 사명을 강조하는 쉐퍼는 우주적 영성을 공동체의 영성으로 강조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천지의 주가 되게 하는 보다 폭넓은 바른 영성을 내세운다. 이런 맥락에서 쉐퍼를 우리는 20세기의 진정한 청교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성 내지는 경건성이 너무 일방적인 되어버린 한국교회, 영성이 예배당에 갇혀버린 한국교회는 그러기에 쉐퍼의 사상에서 해갈을 경험하는 것이다. 특히 쉐퍼의 전인적이며, 모든 문화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문화 변혁적 영성에로의 선언은 움추린 채 활짝 펴지 못하고 자존감을 상실한 한국교회에 바른 신앙의 정체성을 일깨워 줌으로 신앙의 영역이 예배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포함하고 있다는 비전을 심어주었다. 라브리 공동체를 통한 쉐퍼의 영성은 그러기에 바르고, 아름다운 영성이었다. 라브리의 쉐퍼 부부는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이제 제 2세기를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영성의 또 다른 한쪽을 바르게 키워나가는 성숙한 교회로 우뚝 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