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슬프게도 나는 사울처럼 성령의 버림을 받는 사람들을 보아 오고 있다. 기록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임했지만 그가 그 거룩한 영향력에 대해 진실하지 않자 그 영이 떠나가고 대신 악령이 그 자리에 들어 앉았다. 버림받은 설교자는 참된 복음전도자의 골칫거리다. 그는 철학의 마술을 부리고 내세우며 여러 가지 잘못된 이단으로부터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이미 빠져 나가고 없으며 머지 않아 블레셋 사람들은 그가 사망자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버림을 받고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처럼 되기도 한다. 이 사칭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 내지만 마귀들이 그들을 덮쳐 쓰러 뜨리고 만다. 이처럼 어떤 설교자들은 죄를 짓지 말라고 큰소리치지만 사실은 그들을 저주하는 그 죄악들로 넘어지고 만다.
아아, 슬프게도 어떤 목회자들은 발람과 같이 되고 있다. 그가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싸웠으며 교만하게도 선민을 전복하는 계략을 꾸몄다. 오늘날에는 복음의 일꾼들이 로마 카톨릭교도, 불신자, 자유 사상가가 되어 그들이 한때 소중히 여기노라고 외치던 것의 파멸을 획책하고 있다. 우리가 사도라 해도 유다처럼 멸망의 자식으로 드러날지 모를 일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서 떠난다면 우리는 여로보암 시대에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던 속은 선지자처럼 갑자기 제거될지도 모른다. 더욱더 한심스러운 것은 우리들의 삼손의 생애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으나 그는 들릴라의 무릎에서 힘을 잃었으며 감옥에서 그의 눈을 잃었다. 그는 눈 먼 장님의 신세였지만 용감하게 그의 숙원을 마쳤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그러한 운명을 자초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모세처럼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영의 버림을 받아, 고통스럽게도 자신의 평생 사업의 마지막 부분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멸망을 받거나, 하늘에 가서 받을 면류관을 빼앗기거나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평판이 먹칠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우리의 생각을 경솔히 내뱉은 잘못으로 우리의 마지막 시절을 구름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모세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다윗의 범죄처럼 흉측한 것도 아니요, 베드로의 실수처럼 엄청난 것도 아니요, 자기 형 아론의 큰 잘못처럼 허약하고 어리석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평범한 심판의 저울에 달 경우 지극히 적은 잘못인 것 같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모세의 죄였음을 주목하라.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한 사람, 그 민족의 한 지도자, 거룩한 왕의 한 대변자의 죄였다.
주께서는 다른 사람에게서라면 그것을 눈감아 주셨을 것이지만 모세의 경우는 문제가 달랐다. 모세는 그 민족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채찍을 받아야 했다. 물론 그는 비스가 산정에서 영광스러운 광경을 그의 눈에 담았으며 그 처벌의 가혹성을 완화시켜 주기에 충분한 다른 모든 것도 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상속지에 결코 발을 들려 놓지 못하는 것은, 그것도 꼭 한 번 경솔하게 말한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하나의 크나큰 절망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주인의 일을 기피하지 않겠지만 그의 임재 앞에서는 벌벌 떠는 사람이다. 모세까지 실수를 했는데 그 어느 누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들이여 모세의 자리를 열망하라. 그러나 그 자리를 받으면서 벌벌 떨어라.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일어나게 할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두고 두려워하며 부들부들 떨어라. 여러분에게 이 영의 열매들이 더없이 가득 차거든 보좌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수그리고 두려워하면서 주님을 섬기라.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우리를 높이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자신을 높이려는 뜻에서라는 점을-- 자나깨나 그 분의 영광만을 우리의 모든 행동의 유일무이한 목표가 되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오! 하나님이여, 저희들을 이 경지에 데려다 주소서. 그리고 날마다 아주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살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샅샅이 뒤지고 시험하시 마련이다. 그 까닭은 심판은 주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며 그의 집에서라면 우리들의 차례가 맨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부적격자로 판명된 사람이 있는가? 저 지옥의 무저갱이 우리 목사단에서 그 일부를 끌어다가 그 비참한 곳의 식구들을 삼을 것인가?
쓰러진 설교자의 운명은 끔찍스러울 것이다. 그가 정죄받는 것을 보고 일반 범죄자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옴을 영접하되”(사14:9). 그들이 한 목소리로 ”너도 우리와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와 같이 되었느냐?“고 외칠 것이다. 오, 하나님의 영이여,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살아 있도록, 저희들의 직분에 충실하도록, 우리의 세대에 쓰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영혼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도록 만들어 주시고 그대로 지켜 주소서. 아멘.
- 찰스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2권, pp 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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