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사람이 갖고 있는 하나님 형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핀다.
그는 어거스틴의 하나님 형상 개념을 받아들여 자기 체계에 맞게 수정하였다. 아퀴나스의 하나님 형상 이해는 하나님을 존재로 보는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존재이기 때문에 지음 받은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고 생명을 갖는 한 하나님을 형상화한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하나님 형상은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말한다, ‘어떤 것은 하나님과 비슷하다, 그것이 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한, 어떤 것은 그것이 생명을 갖는 한, 그리고 세 번째 경우는 그것이 지력이나 지성을 갖는 한.’ 지음 받은 그 어떤 것도 지성적인 존재보다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지성을 갖고 있는 피조물만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아퀴나스는 사람이 하나님 형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해하는 합리성은 합리주의자의 방식처럼 하나님과 질적으로 비슷한 능력이나 재능있는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능력임에 확실하나, 아퀴나스는 그것을 어거스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러면 하나님 형상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아퀴나스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갖는 지성적 본질 때문에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답한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지성적 본질이 하나님을 가장 잘 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진 지성적 본질이 하나님을 가장 잘 닮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점에서이다.
아퀴나스는 사람이 갖고 있는 하나님 형상을 세 가지 방식으로 이해한다.
첫째,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본래적 습성을 갖고 있다. 이 습성은 지성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이다. 둘째, 사람은 습관적 행동에 따라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나, 완벽하지 않다. 이것은 은혜에 따른 형상이다. 셋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행동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광이 하나님과 비슷한 형상이다.
하나님 형상의 첫 번째 의미는 아퀴나스가 표현하고 있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형상, 곧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고 보편적인 인간성이다. 하나님 형상의 두 번째 의미는 신약이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 형상으로 형성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형상의 세 번째 의미는 충만하고 완전한 활동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하나님 형상이란 말이 가진 첫 번째 의미가 두 번째 및 세 번째의 의미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하나님 형상은 능력이나 재능을 나타내는 것인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하나님 형상은 행동하는 사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누구나 갖고 있는 하나님 형상은 사실상 본질적으로 주어진 선물 곧 하나님 앞에 지속적으로 서는 특권이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나 결정은 이러한 대면에 따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기독교 교리의 역사에서 아퀴나스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아퀴나스의 하나님 형상 이해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그가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형상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능력이라고 본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하나님 형상은 확실히 하나님께 반응하는 능력이고, 그 반응은 대상에 관한 지식이 포함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실제로 사랑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이 공로를 행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위험에 빠진다.<계속>
출처...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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