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서재> (새물결플러스, 2012)에 실린 박영선 목사님의 인터뷰입니다.
참고로 이 책에는 2010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복음과 상황>에 연재했던 열여섯 분의 인터뷰가 담겨있습니다. * 박영선의 신앙 이력*
[질문] 박 목사님 하면 ‘하나님의 열심’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목사님의 신앙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독자들을 위해 먼저 목사님의 신앙 이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격동기인 1948년 11월, 그것도 평양 출생이시네요. ...
역사적 격동기라니까 무시무시하군요. (웃음) 신앙 이력을 자세히 얘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꼭 필요한 만큼만 소개되면 좋겠어요. 친가와 외가 모두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증조부가 선교 초기에 개종한 신자셨고, 외할아버지와 친척 중에도 목사님이 계셨을 정도지요. 제가 태어난 즈음 한국교회는 결사 각오의 신앙, 순교의 시대를 막 지나고 자유의 시대로 접어들던 시기였어요. 순교의 시대를 일제와 북에서 보내고 6․25 전쟁이 나서 서울로 피난을 와서도 교회에서 컸어요. 덕수궁 옆 2층 건물의 교회에 붙어 있는 사택에서 하루 종일 지냈지요. 그 교회가 나중에 회현동으로 옮기면서 교회를 짓는 것을 봤는데 소위 교회의 성공을 강조하는 낙관적인 분위기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지금 어떤 책임을 갖고 살아내느냐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는 것은 이렇게 순교와 성공 시대를 아우르는 시기에, 교회의 순교와 성공을 모두 보며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질문] 목사님의 출생 시기뿐 아니라 청년 시기도 한국현대사에서 큰 사건들이 있었고, 그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평가가 분분한데, 그런 상황이나 개인적인 정황이 목사님의 신앙의 고민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초등학교 때 4.19, 중학교 때 5.16,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 등을 경험했지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선택권이 없었던 사회적 정황이었고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하나님은 세상보다 크다’라는 그 한 가지는 저한테 분명했던 것 같아요. 외적인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서 고민을 한게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뻔히 알면서 안 되는, 내 자신에 대한 문제에서 걸리니까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더 큰 틀에서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 분이십니까?”,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하게 됐어요. 하나님을 믿고, 내가 신앙인인 것은 의심해 본 적이 없는데, 그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인지 모호했어요. 제가 자주 말하듯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자고 얘기는 늘 하는데 왜 안 되는지, 어떻게 해야 아브라함, 다니엘 같은 신앙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못하는 막연한 현실에 걸린 거예요. 교회에 가면, “믿기만 하면 다 된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그 ‘믿기만’이 해결이 안 됐어요. 이렇게 당면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이면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문제를 놓고 막막한 씨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희한하게 신학에 대한 소명을 받아 총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죠. 제 신앙적인 질문에 대한 받을 받은 것이 아님에도 그 막막한 부르심에 ‘네’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답을 주실 거다’라는 기대 때문이었어요. 제 신앙의 문제를 푸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도 평생에 걸쳐 하나씩 풀어 갔어요. 하나님이 답을 주는 방식은 그거였습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더라’, ‘믿으면 되더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 즉 그분의 그런 속성과 성품을 하나씩 가르쳐 주시는 것이 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고 답을 주시는 방법이었어요.
[질문] 당신(撞神)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당구에 빠지셨던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이었겠군요. (웃음) 신학교에서 김정우(총신대학원 구약학 교수), 권성수(대구 동신교회 목사) 같은 친구 분들을 만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할 때 당구에 빠졌더랬어요. 지금은 예전 같지 않지만 당구 하면 지금도 어디 가면 지지는 않을 정도는 칠거예요. 신학교에서 만난 동료는 그밖에도 여럿 있지만, 특히 이 두 명은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함께 공부할 정도로 가까웠어요. 매일 자정에 잠들고 새벽이면 일어나 함께 공부했지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업을 준비하고 예습했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우리의 책임이 공부라고 생각했던 거죠. 한때는 봐야 할 책, 보고 싶은 책도 많고 공부할 내용도 너무 많아서 불면증을 달라고 기도했을 정도였어요. 출신과 성장 배경, 성향이 다르지만 졸업한 이후에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질문] 신학교에서 목사님의 고민은 어떤 것이었고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신학공부가 그전에 고민했던 질문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신학을 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의 현실성’ 문제가 가장 큰 숙제였어요. 내세적이고 종말적인 이해로 외면 받고 있는 ‘지금’이라는 삶과 인생의 가치에 관한 문제, 목적론적이고 결정론적일 뿐 그 방법과 과정에 대한 어떤 설명도 주지 못한 신앙의 비현실성이 항상 고민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런 문제를 ‘성화’와 ‘일반 은총’의 차원에서 이해하게 됐어요. 성화라는 개념은 신앙을 인격적 특성과 관련지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일반 은총은 ‘은혜’와 ‘초월’만이 아니라 ‘자연’과 ‘내재’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죠. 하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공부하고, 해병대에서 얻은 병이 도지는 바람에 건강이 좋지 못해 수업을 들은 날보다 빠진 날이 많을 정도로 학교생활을 충분히 하질 못했어요. 그래도 책을 통해 공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신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훈련을 비롯해 교리적인 체계를 쌓는 기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당시 전통적이고 근본주의적이었던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던 성향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한 기간이기도 하고요.
[질문] 그런 신앙의 고민이 교회에서도 이어졌을 텐데요. 당시 김희보, 김성환, 고영민 목사님 등이 목회하셨던 성도교회를 출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성도교회는 전통과 권위가 살아 있는 교회였어요. 한국교회 성장의 시발점이기도 하지요. 온통 그런 증거들이 교회에 가득 차 있었어요. 옥한흠 목사님, 고왕인 같은 선배와 방선기, 황성철 목사, 박성수 회장 같은 바로 아래 후배들로부터 한국교회 대학부 신화라는 게 시작됐지요. 선배나 후배들 모두 그 동기와 신앙심이 진심이고 건강하고 좋은데, 저는 그걸로 항복이 안 되더라고요. 그들에게 신앙은 사명(mission)이었는데 저에게는 신앙은 삶(life)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뭐라고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거의 혼자서 말이죠. (웃음)
[질문] 지금은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라고 연배가 비슷한 분이 있는데, 이분이 저랑 비슷한 인생 경로를 걸었더군요. 이분이 서구 기독교의 와해에 대한 대안 가치로 나온 복음주의 기독교의 허점을 보고 이에 대해 맹렬하게 분노하고 비판하다가 나중에는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복음주의 신앙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큰일을 하고 있어요. 최근 읽은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분이 신앙은 성경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이분의 질문이 제 생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교회는 성경이라는 텍스트만 가지고 있고, 현실이라는 텍스트는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어요. 또는 성경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텍스트를 붙잡고 있다 하더라도 현실이라는 텍스트를 ‘순교’라는 절박했던 과거로, 성공이라는 부흥주의 속에서의 현실로만 못 박아 버렸다고도 할 수 있지요. 성경을 삶에 녹여내기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한 오늘, 일상을 어떻게 살아내느냐 하는 싸움을 하는 게 신앙인데, 그걸 접고 명분, 목적을 성취하는 쪽으로만 가는 건 복음을 굉장히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당시에 제가 그 가운데서 몸부림 쳤던 것은 바로 현실이라는 텍스트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고 크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질문] 목회를 반대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신학교에 입학하시기 전에 김장환 목사님이 한국 대표로 있었던 YFC라는 선교단체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동원 목사님을 알게 되셨다고요. 보수주의자 제리 포웰이 설립한 버지니아의 리버티 신학교로 유학을 갔다 오셨는데 그 기간 동안 신앙적 유익은 어떤 것들이었는지 궁금하네요.
YFC나 유학은 짧은 기간이라 길게 말씀드릴 것까진 없을 것 같네요. 구원 그 즉각성과 점진성을 다룬 제 초기 책의 기본 텍스트가 된 존 헌터와 이언 토마스 경의 책을 유학 기간 동안 만났던 게 유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박영선의 독서 편력 *
[질문] 지금까지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고민과 문제의식을 갖게 되기까지는 다른 사람의 도전과 영향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이나 인물 같은…. 고민과 문제의식은 지적인 진공상태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도 그 당시 책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지는 못했어요. 당시에 구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지 않았어요. 나중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사람을 책을 통해 만났지요. 신학교 1학년 때 우연히 로이드 존스의 『산상수훈』을 접했는데 무척 좋아서 푹 빠졌죠. 그래서 그의 책을 구해서 거의 다 읽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뭐가 좋았나 하고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던 것에 매료되었다는 걸 알았지요. 사실 그 전에 ‘믿으면 된다’는 설교와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던 차원에서는 도무지 풀리지 않던 문제를 기독교 복음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몫이 크다는 점에서 답을 얻은 거예요.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는 두 기둥을 갖고 자유주의의 공격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 위기에서 서구 기독교를 지켜내는 제방 역할을 했더랬죠.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죄,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 이 세 가지가 제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초석인데, 그걸 로이드 존스에게서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그의 어느 설교를 봐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점이 그의 탁월함이 아닐까 합니다.
[질문] 일반 은총의 중요성을 언급하셔서 헤르만 바빙크의 『일반은총론』이나 소위 신칼뱅주의자들을 언급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요.
바빙크의 『일반은총론』을 잊었군요. 차영배 교수님을 통해 소개받은 바빙크의 영향은 정말 컸어요. 정말 중요한데 늦게 배웠죠.
[질문] 그 외에 목사님의 신학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던 분이 있는지, 어떤 책의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제 책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제가 공부할 때는 벤저민 워필드,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마나 바빙크, 게할더스 보스, 존 머리, 헤르만 리덜보스, 조지 래드 등의 책들은 대부분을 읽었어요. 이런 학자들의 책을 읽으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칼 헨리나 팔머 로버트슨, 행스텐버그 같은 분들의 책은 깊이와 방향성을 고루 갖춘 좋은 책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래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래드는 깊은 신학자는 아니었고 개론을 잘 가르치는 분이죠. 존 머리는 성경관을 심어 줬고요.
[질문] 이런 분들의 책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보다는 한국교회의 신학적 수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겁니다. 한국교회의 신학은 매우 가난해요. 예를 들면, 우리에겐 “예수 믿고 천당 가자” 밖에 없어요. 거기에 ‘구원의 확신’이 첨가되어 “예수 믿고 구원받아 헌신하고 천당 가자” 정도가 됐죠. 지금은 거기에 ‘복 받고’가 하나 더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삶을 살아 보면, 교회란 무엇인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떻게 오는가, 인간의 책임은 뭐고 하나님의 방식은 무엇인가 하는 신학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는데, 이런 걸 주제로 삼지 못하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말한 신학적 작품을 대할 기초가 너무 부족했어요. 신학교에서 그런 책을 교재로 택하고, 외국에서 공부해서 그것을 가르칠 교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책을 보고 감동할 만큼의 준비가 미흡했어요. 신학생인 저나 가르치는 분들 모두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는 읽고 감동하고 비평하질 못했어요.
[질문] 말씀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텍스트에 대한 고민이 인상적이었는데, 성경 본문과 우리 현실에 대한 좀더 치열한 고민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분은 어떤 분이 있을까요? 김홍전 목사님을 굉장히 높이 평하셨던 것 같은데요.
김홍전 목사님은 본문이 무슨 뜻인지 말해 주는 분이 희소했던 우리 때에 굉장히 귀한 역할을 했던 분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김홍전 목사님은 당시에는 드물었던 성경신학자였던 셈이지요. 저는 김홍전 목사님과 관심이 달랐습니다. 어느 책에서나 저는 저 나름대로의 관점, ‘삶’이 뭐냐, 왜 안 믿어지는가 하는 실존적 질문들을 주로 다뤘고, 김홍전 목사님은 그런 점에서는 좀 더 학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분의 신학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편이긴 하지만 한참 배우는 과정에서도 심취하지는 못했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받았냐고 물으면 답하기 조금 난감하네요. 읽어 보고 ‘설교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고 만날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질문] 워필드나 존 머리, 로이드 존스, 조지 래드의 책을 신학 공부 초기에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연도로 보면 아직 국내에 번역 소개되기 전인 듯합니다. 원서를 보신 듯하군요.
네, 원서였어요. 그때는 외국 선교사들이 원서를 수입해서 값싸게 팔았어요. 아내가 몰래 감춰둔 쌀값 갖고 와서 사기도 하고 그랬지요. 부산 고신에 책이 많다 그러면 기차를 타고 내려가서 사기도 했고요. 조직신학, 교회사, 교육학, 성경신학 같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일단 다 샀어요. 그러면 그중에 10분의 1이나 봤을까요? 나중에는 관심이 한쪽으로 집중되고 해서 다른 책은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질문] 총신이나 고신이라는 학풍을 고려하면 네덜란드 개혁파 책들이 아니었겠나 싶은데요.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당시 선교사들이 대부분 그쪽이었으니까요. 신학적으로 보면 그 바깥을 나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질문] 목사님 설교에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워치만 니에 대한 얘기는 종종 언급하셨습니다. 워치만 니는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1970년대 초반, 한국교회에 신앙 서적이라는 건 전무했어요.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밖에 없었을 때였는데 그 책이 나왔으니 당연히 볼 수밖에요. 당시에 워치만 니에 안 미쳤던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웃음) 그런데 워치만 니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죠.
* 박영선의 서재 이야기 *
[질문] 서재 구경을 좀 시켜 주시면 좋겠습니다.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게 가장 눈에 띄는데요....
2008년 즈음 여러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책을 대부분 처분했어요. 학교에 기증도 하고 집에 갖다 놓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책이 많지 않을뿐더러 이것저것 섞여 있어요. 신학 서적은 군데군데 흩어져 있고, 신앙 서적은 책상 뒤 책장에 두고, 자주 보는 책은 책상 위에 두기도 하고요. 요즘은 요한복음 설교를 다시 하고 싶어서 읽다만 레슬리 뉴비긴의 『요한복음 강해』를 읽고 있어요.
[질문] 책상 위에 유진 피터슨 책이 몇 권 쌓여 있군요. 최근 설교하실 때 유진 피터슨을 자주 인용하시는 걸 들었는데 피터슨의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
최근에 번역된 『메시지』도 있고, 『한길 가는 순례자』,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같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일상과 현실에 대한 이해와 강조가 제 시각과 많이 비슷해서 최근에 즐겨보고 있는 저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폴 악트마이어의 『로마서 주석』은 설교 준비를 위해 보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고 또 그 책을 통해 다른 책들을 소개받기도 해서 매우 유용하더군요. 저는 읽은 책 가운데 필요한 부분은 책 앞에 있는 면지를 사용해 해당 페이지의 내용, 주제, 이슈 등을 적어 놓고 설교할 때 인용을 합니다. 좋은 책은 별도로 표시하고요. 최근에 교회에서 강연해 주신 강영안 교수 책도 여러 권 있는데 그분 책은 프로 냄새가 나서 좋아합니다. 진짜 전문가답습니다. 김홍전 목사님 책도 보긴 하는데 관심이 서로 달라서 거의 인용을 안 하게 되지만, 지금 열왕기 설교하는 데 참고하느라 『이스라엘 열왕의 역사』(전 4권)를 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할 때도 『예수님의 행적』(전 10권)을 좀 봤는데 활용은 다르게 합니다.
[질문] 제럴드 싯처 책들이 여러 권 있는 게 눈에 들어오는군요.
고통에 관한 싯처의 책은 선물용입니다. 찾아오는 분들한테 선물합니다. 싯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으로 처음 접한 저자인데 읽으면서 ‘미국놈 중에도 나 같은 놈이 있구나’ 하고 쾌재를 부른 책이에요. ‘침 삼킬 동안도 놓아두시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욥의 고백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그걸 이야기하고 있더군요. 고통을 주시되 마취를 안 시키시고, 복기를 할 수 있도록 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말이죠. 이쪽에 있는 책들은 시바 료타로라는 사람의 기행문입니다. 료타로 얘길 좀 하죠.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책이 ‘후대망’이라는 제목으로 전에 나왔던 『료마가 간다』예요. 대학교 때 우연히 만난 책인데 작가의 문체가 매우 인상적인 책이랍니다. 따뜻하게 그려요.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우리는 경쟁사회를 살아서 그런지 빈정거리고 냉소적으로 컸단 말이에요. 누군가를 밀쳐 내야지 끌어안는 건 못 보고 자랐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그걸 따뜻하게 그려 내더라고요. 그렇게 글을 쓰는 료타로에게 반했죠.
[질문] 최근에 재미있게 읽으신 책은 어떤 게 있나요.
『열매 맺다』를 읽었어요. 참 유익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보이는 책인데,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언제 우리는 이런 걸 다 설명하나 싶기도 하고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겠나 싶어요. 신앙의 사적 영역, 공적 영역, 포스트모더니즘이 뭔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걸 충분히 이해하려면 한 세대는 지나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 특별히 시간을 정해서 독서를 하시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냥 정해진 시간 없이 하루에 300페이지 정도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 초에 목 디스크 판정을 받은 이후로 독서를 충분히 할 수 없었어요. 그렇다고 책 읽는 걸 중단할 수는 없어서 목 받침대를 구입해서 읽었는데 100페이지로 줄더군요. 제럴드 싯처가 이런 얘길 하죠. 자기가 가족을 돌보는 바람에 충분히 시간을 내서 강의 준비를 못한다, 그러면 어떠냐? 대강 가자, 그래요. 요즘 제가 그래요. (웃음)
[질문] 도서 구입은 어떻게 하시나요.
신문에 책 소개가 나오면 꼭 관심 있는 책들을 표시해 뒀다가 나중에 구입합니다. 주변에서 신뢰할 만한 분의 추천을 받기도 하는데 저한테는 예장 합신 출판부의 조주석 목사(현, 영음사 책임편집)가 그런 분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방면의 추천도서 목록을 한 달에 한 번 주는데, 대부분 구입해서 읽어요. 최근에는 『세잔의 사과』라는 책을 추천해 줘서 읽었는데 복잡하더군요. 그런 책들은 대부분 3분의 1정도 읽다 말아요. 책을 보면 끝까지 볼 책인지, 어느 정도만 봐도 되는 책인지 알게 되더라고요.
[질문] 기독교 세계관 관련 책도 몇 권 보이는군요. 이쪽 책들을 좀 보셨나요. 프랜시스 쉐퍼 책은 보셨을 듯하고요.
쉐퍼 정도죠. 지금 같은 학교에 있는 이승구 교수가 쓴 책도 봤어요. 한참 사회학 책이 소개되던 2,3년 전에 베버 책도 보고 몇몇 책을 열심히 봤고요.
[질문] 아까 인용하셨던 맥그래스의 책도 보이는군요. 최근 학생들에게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를 추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하지만 쉬운 책은 아니죠. 저도 그 책 읽는 데 진이 빠졌어요. 그래도 끝까지 읽었습니다. 저는 재미가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역사와 흐름을 따라 썼기 때문에 그걸 따라가면 굉장히 유익합니다. 맥그래스가 쓴 책이 여러 권 있지요. 『기독교 교리 이해』도 읽었는데, 어디선가 필이 꽂혔어요. 그래서 그 사람 책은 쭉 보고, 작년에 수업할 때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적 지성』 얘길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 책은 재미는 없다. 하지만 신학교에서 다뤄야 할 건 다 다루고 있어 유익하다”고 추천했지요.
[질문] 몇 년 전 많은 이들에게 읽혔던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도 보이는군요. 이 책과 다른 몇몇 책을 텍스트로 해 강연도 하셨고 책도 내셨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온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목사님의 설교가 전에 갖고 있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신앙에 대한 강조가 복음주의 같은 거대 담론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신학자들의 이름과 인용이 설교에 나오게 되는 것도 그렇고요.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스텐리 하우어워스나 알리스터 맥그래스, 레슬리 뉴비긴, 데이비드 웰즈나 마이클 호튼 같은 이들의 주장이 분명히 저에게 한몫씩 했을 겁니다. 일상에 대한 강조는 아직도 한국교회가 이전에 제가 계속해서 던진 질문에 답을 못 주고 있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어요. 일상이야말로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에게 물어 오시는 곳이라는 제 주장은 동일해요. 하지만 이제는 아웃라인을 제대로 그려 주자는 생각이 생겼어요. 내가 산만큼, 내가 걸어온 길만은 똑같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게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거대 담론이 아니라 한 시대를 먼저 산 사람이 가지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이런 점에서 기회가 되면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씩 더 하려고 합니다.
[질문] 방금 언급하신 하우어워스, 뉴비긴, 맥그래스와 웰즈, 호튼 같은 이들은 많이 추천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각각의 신학적 입장을 살펴보면 사실 여러 차이가 있는데 그런 것은 어떻게 수용하시는지요.
전 온건파예요. 데이비드 웰즈나 호튼에게는 그들만의 역할이 있고, 하우어워스에겐 하우어워스만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다만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질문]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독서가 절반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신앙적인 고민을 할 당시 읽어야 할 책이 많지 않았지만 말이죠. 지금 한국교회는 신학적으로는 복음주의 문제, 시대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문제에 직면해 있어요. 데이비드 웰즈의 책과 필립 케네슨의 『열매 맺다』도 모두 논의와 비판이의 배경에 복음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전제하며 논의를 전개해 나가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여기에 무방비 상태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교회가 그 문제를 거의 언급을 안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성공, 형통했던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이제는 시대적 분석, 이해하고 교회를 준비시켜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있어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를 한 조각으로 파편화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전체가 못 되게 하는 거죠. 기독교 신앙인에게는, 우리가 가진 것이 이 세상에서는 파편으로 취급받지만 기독교가 전체를 담아내는 유일한 진리라는 것을 구현하는 싸움을 준비시켜야죠. 잘못하면 파편임을 인정하고 감수, 만족하는 상태에서 차별화하려는 타협이 이뤄질 수 있어요. 기독교가 스스로 사회 전체에서 교회로, 미션으로 숨습니다. 그러면 사회 참여라는 것이 무엇이냐가 아주 큰 문제로 대두됩니다. 어떤 식으로 참여할 것이냐, 구제, 봉사는 참여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 참여는 그것보다 큽니다. 하나님이 세상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그걸 논의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하고 우리 후배들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복음주의가 성공이라는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고 그것을 잘못 확장해서 신학과 신앙의 유일한 증거물로 제시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각 개인에게 의미를 주고 이 시대에 확인을 받는 것이라는 데까지 기독교를 끌어 내려서 절대 기준과 확인의 자리를 현대성에 넘겨주었습니다. 현대성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자가 아니라 개인이 절대 기준자로 자리바꿈하는 거거든요. 이 싸움이 여기까지 오니까 중요한 싸움이 된 거지요. 우리가 한국교회 앞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하고 준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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