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선목사

성경공부 제8강 창12장10-20절 애굽으로 보내진 아브라함 /박영선목사

새벽지기1 2016. 3. 12. 07:30

본문: 창세기 12:10-20

10)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19)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애굽으로 내려간 사실, 또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점-이런 사건을 윤리적인 잣대로만 재단하려고 할 때 아브라함의 인생에 주도권을 잡으시고 그를 위해 분발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실종되고 만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내려감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을 비로소 체감한다.

 

Q 시각교정을 위한 화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 속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과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믿음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이 핵심 주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네 본토 친척들에게서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할 때, 그가 이미 믿음을 갖고 있어서 하고 믿음으로 떠난 것이라면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절망감밖에 배울 것이 없었을 겁니다. 아브라함의 생애가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으로 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믿음으로 본토 친척집을 떠났고 또 말년에 얻은 아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떳떳이 바칠 수 있었다고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기만 해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과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정말 출발 지점에서부터 믿음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여러 가지 증거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출발하여 믿음의 사람이 되어간 것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에게서 발견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이미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애굽으로 내려간 사건은 그가 타락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결론은 뻔해집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수모를 당하게 된 보습을 보라고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이 믿음의 타락이 아니라면 거기서 아내를 빼앗겼던 사건은 무엇이라고 해석해야 되는가?’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한, ‘타락이 아니라면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아브라함을 떠밀어서 가나안까지 들여보내셨다가 다시 그를 애굽으로 몰아내시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고 본문을 추적해봅시다.

 

아브라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사건에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애굽으로 내어쫓으셨을까?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해놓고 당했던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그러면 먼저 이 두 가지 문제를 풀어 봅시다.

먼저 그 사건 이후에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롯과 헤어진 것이고(13:1-12), 또 하나는 가나안 전쟁 속에 그가 감히 끼어 드는(14:1-16) 놀라운 담대함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졌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앞의 과에서도 그가 자기 본토 친척집을 떠날 때 혼자 나오지 못하고 그의 아버지와 조카까지 함께 나와야 했던 상황적 배경을 설명했지만, 그 시대는 자기 목숨을 자기 힘으로 지킬 수밖에 없는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면서 사라를 자기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서 말해야 할만큼 살벌한 시대입니다. 물건이 많고 쓸 만한 사람이 많으면, 언제, 누가, 어떻게 뒤엎고 사람은 노예로, 재물은 자기 약탈품으로 빼앗아갈지 모르는 때입니다. 자신과 혈연관계가 없고 안면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만큼 험한 시대입니다.

그뿐입니까? 창세기 14:1-2에 나타난 사건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엘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앙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앙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여기서 아홉 왕이 싸우는데, 창세기 14:12 이후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조카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318명을 거느리고 쳐들어가 빼앗겼던 조카와 재물들을 다 찾아온 사건이 나옵니다. 그 상황을 오늘날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소련과 중공과 북한과 일본이 한편이 되고, 다른 한쪽은 미국과 이스라엘과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이 한 편이 되어 북한에서 전쟁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살던 우리 친척이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친척을 뺏겨버린 제가 교회에 와서 호소를 합니다. “여러분, 고르바초프가 이북에 있는 제 형님을 잡아갔습니다. 그러니 모두 쳐 없애러 갑시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여러분들 중에 믿음이 좋은 318명이 따라 나와서 한 손에 포크를 들고 한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올라간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배짱은 애굽에서 생겼습니다. 그가 애굽에 내려간 사건은 신앙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신앙을 논할 수준에 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도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일 안 갔다가는 큰 일이라도 터질 것처럼 꿈에 본 환상이 너무나 생생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거기까지 간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 번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하란에서도 나타나시고 또 세겜에서도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어 달립니다.

 

믿음의 훈련지, 애굽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떠나온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그 기근 속에서라도 자신을 먹이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연스럽게 물이 있는 곳, 자기 양떼를 먹일 수 있는 곳, 자기네가 먹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양식을 구하러 애굽까지 갑니다.

가면서 생각하니까 자기 아내가 걱정입니다. 너무 예쁘니까 아내를 뺏기 위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 너무나 뻔합니다. 그러나 만약 사라가 자기 동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빠가 되는 이에게는 후하게 대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를 동생이라고 속이기로 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랬더니 그곳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거짓말이 정말인 줄 알고 사라를 빼앗았습니다.

이런 사건을 보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내려가서 결국 하나님이 그를 치신 거다. 그래서 그가 회개했다라고 성급하게 판단 내리지는 마십시오. 이때 아브라함이 회개한 장면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회개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바로 왕이 회개합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회개를 합니까? 바로 왕은 한밤중에 유명한 권투선수 타이슨에게 얻어맞은 무명선수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는 그 당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지위에 있었습니다. 전세계 문명국의 통치권이 그에게 있었던 때입니다. 그의 권력은 로마시대의 씨이저보다도 강하고, 알렉산더보다도 강했습니다. 그러한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를 뺏은 것 하나 때문에 밤새 하나님께 얻어맞은 것입니다.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아브라함에게 다 데리고 가라하고는 금은 보화까지 줍니다. 이것은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얻어맞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아브라함은 믿음도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크게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바로가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의 믿음을 도박하듯이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믿음은 꺼내놓은 도박이 아닙니다. 우리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시고 넘치는 사랑의 열심입니다. 그 설득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들을 설득해 오십니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 중에 잘못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믿지 않고 무슨 이야기가 됩니까? 일단 믿어보고 이야기합시다우리들은 곧잘 이렇게 설명하기를 좋아합니다. “당신은 아침에 출근할 때 전철 3호선을 타지요? 그때 운전기사를 믿고 타지 않습니까? 그 차가 충무로 역으로 갈 것을 믿고 타지 않습니까? 동호대교를 건너가면서 그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 것을 믿고 통과하지 않습니까? 믿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일단 믿어보고 이야기합시다우리가 믿음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확률이라고 해야 합니다. 믿음은 인격에 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해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만큼 이것이 가장 멋있고 명확하게 나타난 예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습니다. 그 훈련의 가장 좋은 예가 바로 왕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하여

바로가 벌벌 떨자 아브라함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가장 크게 놀랐습니다. 거기서 그의 믿음은 드디어 첫 눈을 뜹니다. ‘,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감히 롯과 헤어지려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너는 너 갈 데로 가라.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다. 네가 이리로 가면 난 저리로 가겠다.”(13:8-9).

이것은 대단한 결정입니다. 그가 기근 때문에 애굽까지 왔던 사건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런 그가 이제 무엇을 믿고 무슨 배경으로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애굽에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이구나, 어쨌든 바로보다 세구나.’ 이것을 배우고 온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신앙생활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란 생활애굽 생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간섭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부터 이삭을 요구받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명심하십시오. 그것은 아브라함의 생애 맨 마지막에 요구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교훈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힘을 내야 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혹시 애굽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직접 경험시켜주시기보다는 옆의 사람들을 통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실 지도 모릅니다. 또 말씀에 의지하여 참으로 힘차게 살고 있을 때 바로 옆에 있는 실족한 영혼으로 말미암아 도전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망갔다가 뼈가 부러져 돌아온 이들이 교회에는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을 볼 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넘겨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바로 왕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그 옆에 서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럴 때 눈을 뜨십시오. 말로 해서 안 되면 드디어 손을 댈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어지간히 대서도 안 되면 더 심하게 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중에 가장 놀라운 것이 그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설득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눈물과 오래 참으심과 긍휼과 자비와 끊이지 않는 열심으로써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라는 그 경험입니다.

 

 

                               본문 되짚어보기

 

1.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 각각은 무엇일까요?

2. 아브라함이 애굽에서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것을 근거로 아브라함은 그 다음 인생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3. 본문은 믿음이란 덮어놓고 믿으라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본문의 표현대로 찾아서 써주십시오.

 

 

                            깨달음에 깊이 더하기

이 과에서 의도한 교훈의 핵심은, 주님은 우리에게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 차근차근 훈련의 과정을 통해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 가까이 오도록 설득하시는 분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나간 우리의 날들을 돌이켜보면, 마치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듯이 우리는 그때그때 현실적인 이유로 우리의 삶을 선택한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있으면 서로 이야기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