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45481

다시 오실 주님! / 봉민근

다시 오실 주님! 글쓴이/봉민근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구름 타고 만민이 보는 가운데 천군 천사의 호령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다.주님의 재림은 우주만물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천하에 공포하는 날이 될 것이다.권능 가운데 심판의 주로 오시리라.그날에 진정한 왕이 누구신지 보여 주실 것이다.죄 있는 자가 떨 것이요 믿지 않는 자들이 곡하는 날이 될 것이다.하나님이 없다고 하던 자들은 두려워 떨며 극한 공포의 날이 될것이다.불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 줄 것이요그날에 하늘이 열리고 지옥문도 열려 행한 대로 믿은대도 갚아 주실 것이다.이제 심판의 날이 가까워졌다.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주님은 도적같이 갑자기 우리에게 임하실 것이다.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지금은 믿음의 날이요..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아 6:4-13)

아 6:4-13 묵상입니다. 이별의 고통을 통해 더 깊어진 사랑과 신뢰.신랑은 신부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합니다.더 성숙하고 더 신뢰하는 사랑의 고백입니다. 신랑은 아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고백합니다.‘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예루살렘 여인들도 복된 자라 칭찬합니다. 신랑과의 만남을 사모하며 달려나아가는 신부.신랑은 자신의 병거에 신부를 오르게 합니다.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눕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흔들릴 뿐입니다.성령님께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소서!

살았으나 죽은 교회(계3:1-6) / 정병선 목사

사데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메시지 성경에서는 “원기 왕성한 것(being alive)으로 유명하다만, 그러나 실은 죽은 자다. 돌처럼 죽어 있다.”고 풀어 설명했습니다. 이 교회는 말 그대로 원기가 왕성하기로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무기력한 교회가 아니라 매우 활력있는 교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교회들도 아마 그 교회를 매우 활기 넘치는 교회로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만은 그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아니라 죽은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활력있고 역동적인 교회를 가리켜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신다는 게 사실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2절이 말해줍니다. 이것저것 하는 일은 많은데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행위가 없다는..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역대하7:3) / 이금환 목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역대하7:3) 솔로몬 왕 때 성전을 완공하고 보인 이스라엘 모든 자손들이 보인 태도입니다. 그들은 돌을 깐 땅에 엎드렸습니다. 돌 위에 모두 무릎을 꿇고, 돌에 머리를 떨구었습니다. 성전이라는 건물의 웅장함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고(대상7:1-2),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믿는 자 안에, 마치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

헤셸(31) / 정용섭 목사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매일 수행 정진하라는 제안에 겁을 먹는다. 내면의 통제와 외적인 학대를 혼동하는 그들은 극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하려고만 한다. 그들은 규범보다는 이상을, 방향성보다는 희망을, 형식보다는 신앙을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목표와 그에 이르는 길은 오래 분리된 채로는 견딜 수 없다. 한 주간의 날들, 우리가 먹는 음식, 한 해의 절기들, 우리의 행위들, 이 모든 것들은 신앙의 미개척지들이다. 우리의 외적인 생활이 내면세계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신앙심은 침체되고 또한 의도는 쇠퇴한다. (183쪽) 헤셸에 따르면 수행이 중요한 이유는 목표와 길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과의 일치가 신앙의 목표라고 한다면 거기에 이르는 길을 가야 한다. 길을 가지 않은 채 그 목표가 이뤄..

헤셸(30) / 정용섭 목사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이상한 점은 그들의 삶이 그들의 이념보다 고상하다는 것, 그들의 신앙은 깊지만 그들의 견해는 천박하다는 것, 그들의 영혼은 억압당하고 있지만 그들의 슬로건은 선포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40년 전에 한 이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이론을 소중하게 간직해서는 안 된다. 신앙은 우리가 한번 얻으면 그대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once and for all)이 아니다. 신앙은 매순간 얻어야 하는 통찰력이다. (178쪽) ‘그들의 삶이 그들의 이념보다 고상하다는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깊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산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을 교양인, 또는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신앙은 깊지만 그들의 견해는 천박하다는 것’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열정은 뜨..

헤셸(29) / 정용섭 목사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가리킬 개념이나 그분을 우리의 마음에 표상할 개념은 없다. 그분의 존재는 우리의 삼단논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분은 실재이기에, 우리가 그 실재에 직면하여 그 실재를 생생하게 자각하게 될 때 모든 개념들은 상투어가 된다. 진정한 기도는 개념으로부터 흘러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기도는 그분에 대한 정보에서 흘러나오기보다는 그분의 신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흘러나온다. (177쪽) 하나님에 대한 흔한 오해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자신들이 잘 아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오늘처럼 냉소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그런 열정이 자칫 하나님을 자기 생각..

헤셸(28) / 정용섭 목사

거듭 말하지만, 기도의 문제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유대교는 신학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한 하나님이라는 말로 그 사람이 무엇을 뜻하든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현대에 흔히 있었다. 이제 하나님이라는 말로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무엇인가? 알맹이가 없는 일반론인가? 하나의 알리바이인가? 우리가 발전시킨 일종의 관념인가? 내가 평생 씨름해 왔던 문제는 그분께 기도할 때 내가 정말로 하나님이라는 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심지어 내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아는 일에 성공했는지 하는 문제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불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