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마지막 재앙을 준비해 두고 계시다고 말씀하신다(1절). 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이 죽는 재앙이다. 이 재앙이 내리면 바로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그들을 서둘러 내보낼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러 이집트인들에게 은붙이와 금붙이를 요구하라고 하신다(2절). 하나님은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시고, 모세를 위대한 인물로 여기게 해 주신다(3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넉넉한 재물을 가지고 이집트를 떠나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모세는 바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의 집안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집트의 모든 집안의 첫 아들과 모든 짐승의 맡배가 다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4-5절). 그 일로 인해 이집트에는 전무후무한 곡성이 들릴 것이라고(6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에서 면제될 것이며(7절), 모든 신하들이 바로에게 제발 떠나 달라고 사정할 것이라고(8절). 이렇게 말하고서 모세는 바로의 궁을 떠난다.
9-10절은 그동안 있었던 과정에 대한 간단한 요약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이유는 바로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바로의 고집을 꺾기 위해 마지막 조치를 준비하고 계시다.
묵상: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죄악에 대한 선택권이 무한정 허락되기를 바라는 반면,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악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얼마든지 허락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한 없이 용서하시고 인내하시고 기다리기를 기대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혹은 “징벌하시는 하나님”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은 존재할 수 없고, 지옥이 있다면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좁은 시각에는 사랑과 정의가 모순되어 보입니다. 사랑을 위한다면 정의를 외면해야 하고,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을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에게 '정의 없는 사랑'만을 기대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 가지 재앙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서도,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정의의 원리에도, 사랑의 원리에도 위배되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정의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정의가 있고,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무력하고,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합니다. 참된 정의는 사랑을 포함하고, 진실한 사랑은 정의를 수반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죄에 대한 징벌을 요구하는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죄인에 대한 용서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으로 정의를 이루고 정의로써 사랑을 완성하신 자리입니다. 이런 뜻에서 열 가지 재앙 이야기에 대한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향하게 만듭니다.
기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정의와 사랑이 만난 자리입니다. 심판과 용서가 품어 안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저희의 존재를 내어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게 하시고 의에 대해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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