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가장 큰 계명
(마가복음 12:32-34)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과 권위에 대해서 예수님이 행동과 말씀을 통해 대답하셨습니다. 유대교 사람들과 예수님 간에 3라운드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2:32-34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제기한 문제는 가이사의 권위였습니다(13-17절).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민중에게 책잡히고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로마의 권위로 제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정부의 권위도 인정하지만 보다 큰 권위가 바로 하나님의 권위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달라고 하신 동전에 가이사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과 자연에, 피조물인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 본래의 주인에게 권위를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방법입니다.
부활도 영도 믿지 않는 현실적 종교주의자인 사두개인도 부활 논쟁에 불을 지폈습니다(18-27절). 그들의 질문은 부활이 있다면 천국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중요하게 여기는 족보가 꼬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칠 형제가 차례로 상속자가 없이 죽는 상황을 제시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계대 결혼을 근거로 형이 상속자 없이 죽으면 형의 아내와 결혼해 대를 잇게 해주는 일에 대해 질문한 겁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알든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든가 하라면서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는 육신도 영혼과 합해져 완전한 몸을 가지게 됩니다.
3라운드에서는(28-34절) 1,2라운드에서 예수님이 승리하셨다고 인정한 한 서기관이 회심의 질문을 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29-30절).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사람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 자신은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한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요일 4:20-21). 이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들어간 것은 아니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강조하신 말씀을 잘 깨닫기 원합니다.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게 인도해 주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by 원용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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