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상에서 천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예배입니다. 탁월한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은 “예배는 장차 다가올 종말을 현재 연습하는 것이다. 미래의 천국이 현재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4장, 땅에 대한 환상에서 하늘에 대한 환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봅니다. 이 천상의 모습에서 요한이 본 것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상의 예배를 미리 보여 주신 것은 지상에서도 이 예배를 경험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히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든 만물과 천사들과 함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온전한 기쁨이요, 은혜입니다.
요한의 눈을 사로잡은 첫 번째 모습은 ‘하늘의 보좌’입니다.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그 빛을 발하는 보석에서 나오는 다양한 색깔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노아와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증거입니다. 인류에 대한 진노를 자제하겠다는 자비하심의 상징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 둘레에 24개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는 24명의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24’는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더한 수입니다. 곧 옛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합한 것이므로 모든 시대,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숫자입니다. 이는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가 보좌를 중심으로 모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예배자들이 보좌 앞에 나오려면 이 바다를 지나야 합니다. 이 바다를 지나면서 천국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정결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와 요단강을 건넜듯이, 천국의 백성들은 이 수정 같이 맑은 바다를 건너 보좌 앞으로 가게 됩니다. 또 보좌 가운데와 둘레에 대표적인 동물들이 있습니다. 6절에서 “보좌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네 생물은 창조세계의 모든 생물을 대표합니다. 가장 품위 있는 것을 상징하는 사자, 가장 강한 것을 상징하는 황소, 가장 지혜로운 것을 상징하는 사람, 가장 민첩한 것을 상징하는 독수리 등 모든 만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백성과 만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총 다섯 번의 노래 가사가 나옵니다. 천상의 예배는 찬송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의 노래는 첫째, 네 생물의 노래, 둘째, 24장로들의 노래, 셋째,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합창, 넷째, 천사들의 노래, 다섯째, 모든 만물의 합창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4장, 땅에 대한 환상에서 하늘에 대한 환상으로 전환하는 것을 봅니다. 이 천상의 모습에서 요한이 본 것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상의 예배를 미리 보여 주신 것은 지상에서도 이 예배를 경험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온전히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든 만물과 천사들과 함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온전한 기쁨이요, 은혜입니다.
요한의 눈을 사로잡은 첫 번째 모습은 ‘하늘의 보좌’입니다.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그 빛을 발하는 보석에서 나오는 다양한 색깔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노아와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의 증거입니다. 인류에 대한 진노를 자제하겠다는 자비하심의 상징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비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그 둘레에 24개 보좌가 있고, 그 보좌에는 24명의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24’는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더한 수입니다. 곧 옛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를 합한 것이므로 모든 시대,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숫자입니다. 이는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가 보좌를 중심으로 모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보좌 앞에는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예배자들이 보좌 앞에 나오려면 이 바다를 지나야 합니다. 이 바다를 지나면서 천국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정결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와 요단강을 건넜듯이, 천국의 백성들은 이 수정 같이 맑은 바다를 건너 보좌 앞으로 가게 됩니다. 또 보좌 가운데와 둘레에 대표적인 동물들이 있습니다. 6절에서 “보좌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네 생물은 창조세계의 모든 생물을 대표합니다. 가장 품위 있는 것을 상징하는 사자, 가장 강한 것을 상징하는 황소, 가장 지혜로운 것을 상징하는 사람, 가장 민첩한 것을 상징하는 독수리 등 모든 만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백성과 만물이 보좌를 중심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총 다섯 번의 노래 가사가 나옵니다. 천상의 예배는 찬송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의 노래는 첫째, 네 생물의 노래, 둘째, 24장로들의 노래, 셋째,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합창, 넷째, 천사들의 노래, 다섯째, 모든 만물의 합창입니다.
5가지 참된 예배의 특징
“그들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죽음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또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빕니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네 생물은 ‘아멘’하고 화답했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12~14절).
보좌에 앉으신 분, 하나님, 그리고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비는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예배 마지막에는 네 생물이 “아멘”하고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합니다.
1세기 초대 교회에서는 언제나 예배가 끝날 때면 모든 회중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기에 합당합니다”라는 동의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요한계시록> 4~5장에 나타난 천상의 예배 모습을 기초로 유진 피터슨이 ‘5가지 참된 예배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첫째, 참된 예배는 당신이 하나님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보게 합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당신을 한 가정의 일원으로, 한 회중의 일원으로 만듭니다. 셋째, 참된 예배는 당신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보게 합니다. 넷째, 참된 예배는 당신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다섯째,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 하나님, 그리고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있기를 비는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예배 마지막에는 네 생물이 “아멘”하고 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합니다.
1세기 초대 교회에서는 언제나 예배가 끝날 때면 모든 회중이 우렁찬 목소리로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예배를 받기에 합당합니다”라는 동의와 찬양의 고백입니다. <요한계시록> 4~5장에 나타난 천상의 예배 모습을 기초로 유진 피터슨이 ‘5가지 참된 예배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첫째, 참된 예배는 당신이 하나님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보게 합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당신을 한 가정의 일원으로, 한 회중의 일원으로 만듭니다. 셋째, 참된 예배는 당신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보게 합니다. 넷째, 참된 예배는 당신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다섯째,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하나님이 진실로 어떠한 분인지 고백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고 날개 둘레와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말했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그 생물들이 영원토록 사시는 보좌에 앉으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8~9절).
네 생물의 합창은 하나님이 진실로 어떠한 분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그저 좋은 말을 쏟아 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분이 행하신 일, 또 행하시기로 약속하신 일을 위해 얼마나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인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때 우리가 그분의 높고 위대하심을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상황이나 형편과 상관없이, 우리가 처한 시대의 상황과 상관없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참된 예배입니다. 고난당하고 있을 때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예배가 시작될 때 상황을 보게 되고, 나 자신을 보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상황과 나의 상태, 나의 감정으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면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여 드리는 참된 예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네 생물의 합창은 하나님이 진실로 어떠한 분인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그저 좋은 말을 쏟아 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분명히 알고, 그분이 행하신 일, 또 행하시기로 약속하신 일을 위해 얼마나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인지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할 때 우리가 그분의 높고 위대하심을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상황이나 형편과 상관없이, 우리가 처한 시대의 상황과 상관없이, 내 감정과 상관없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참된 예배입니다. 고난당하고 있을 때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분을 영광스럽게 높여 드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예배가 시작될 때 상황을 보게 되고, 나 자신을 보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상황과 나의 상태, 나의 감정으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면 그분의 임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여 드리는 참된 예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고
“24명의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사시는 분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이시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의 기쁘신 뜻으로 인해 만물이 존재했고 또 창조됐습니다’”(10~11절).
‘엎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해 우리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장로가 엎드려 경배할 때 한 행위가 있습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린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주께서 씌워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을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이 면류관은 우리가 쓰는 그 면류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상급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각자 믿음을 따라 충성스러운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면류관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 면류관을 받는다고 할 때 그것이 경쟁과 시기, 질투 등 세상의 갈등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모두의 기쁨과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의 사고방식으로 천국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습니다. 신약에서 여러 면류관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의의 면류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주를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다”(딤후 4:7~8).
둘째,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모든 순교자가 받는 면류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셋째,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맡겨진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렇게 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전 5:3~4).
넷째,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살전 2:19~20).
‘엎드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해 우리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장로가 엎드려 경배할 때 한 행위가 있습니다.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린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주께서 씌워주신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서 받게 될 면류관을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이 면류관은 우리가 쓰는 그 면류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상급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각자 믿음을 따라 충성스러운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면류관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 면류관을 받는다고 할 때 그것이 경쟁과 시기, 질투 등 세상의 갈등 원인이 되는 게 아니라 모두의 기쁨과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 땅의 사고방식으로 천국을 생각하면 보이지 않습니다. 신약에서 여러 면류관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의의 면류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주를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었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이다”(딤후 4:7~8).
둘째,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모든 순교자가 받는 면류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서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신실하게 지킨 사람들에게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셋째,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맡겨진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렇게 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벧전 5:3~4).
넷째, ‘자랑의 면류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살전 2:19~20).
참된 천상의 예배
24장로들이 이 면류관을 하나님 앞에 벗어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하나님 보좌 앞에 엎드렸을 때 그분이 기쁨으로 씌워주신 면류관조차 자랑할 게 되지 못합니다. 그것마저 내려놓는 것이 참된 천상의 예배입니다. 참된 예배란 우리가 쓰는 면류관조차 초점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이 초점이 되고,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상의 예배입니다. 이 천상의 예배를 우리가 경험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이 초점이 되고,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 이 땅에서 천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C.S.루이스가 쓴 천국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천국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제공합니다. C.S.루이스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도 자기중심적이 되기 위해, 이 땅에서 예배드리면서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천국을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시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이 놀라운 섭리를 가르쳐주십니다. C.S.루이스는 이 세상에서 죄란 근본적으로 ‘자기 집착’이라고 말합니다. 예배란 자기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상실은 예배를 경험하고, 예배를 연습하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상에서 하나님께 엎드리는 연습을 이 땅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상실과 모든 고난은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드릴 예배를 이 땅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단지 시간 내서 액세서리처럼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훈련하는 것이고, 영원한 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하는 훈련입니다. 때로 이 땅에서의 상실과 고난이 예배의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일상에서 천상을 바라봅니다. 천상의 예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토록 집착했던 자기 자신과 가장 사랑했던 것들, 주어졌던 모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상에서 면류관마저 내려놓으며 영원히 경배해야 할 것을 이 땅에서 맛보고, 경험하고,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C.S.루이스가 쓴 천국에 대한 판타지 소설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천국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제공합니다. C.S.루이스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도 자기중심적이 되기 위해, 이 땅에서 예배드리면서도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천국을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먼저 가르치시고, 그 아들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이 놀라운 섭리를 가르쳐주십니다. C.S.루이스는 이 세상에서 죄란 근본적으로 ‘자기 집착’이라고 말합니다. 예배란 자기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상실은 예배를 경험하고, 예배를 연습하도록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상에서 하나님께 엎드리는 연습을 이 땅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상실과 모든 고난은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드릴 예배를 이 땅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단지 시간 내서 액세서리처럼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훈련하는 것이고, 영원한 나라를 이 땅에서 경험하는 훈련입니다. 때로 이 땅에서의 상실과 고난이 예배의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일상에서 천상을 바라봅니다. 천상의 예배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토록 집착했던 자기 자신과 가장 사랑했던 것들, 주어졌던 모든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까지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상에서 면류관마저 내려놓으며 영원히 경배해야 할 것을 이 땅에서 맛보고, 경험하고,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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