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착각, 1월3일(목)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5. 1. 12. 07:16

오늘 오후에 큰 딸이 대구문예회관에서 (아르바이트) 연주가 있다고 해서 지하철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하양에서 대구문예회관에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운전해서 가는 거다. 밀리지 않으면 한 시간 걸린다. 다른 하나는 버스를 타는 거다. 하양에서 출발하는 518번은 대구 시내를 관통하느라 두 시간이 족히 걸린다. 세 번째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거다. 딸은 지하철을 선택했다. 지하철은 단번에 가지 않는다. 하양에서 안심역까지 버스가 차로 가야하고, 안심역에서 서부정류장까지는 지하철, 서부정류장에서 문예회관까지 택시를 타야 한다. 서부정류장에서 문예회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긴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은 어쩔 수 없다. 이야기를 줄여야겠다.

 

     나는 먼저 나와 아파트 지하에 놓아둔 차를 몰고 나왔다. 뒤따라 나온 큰 딸이 아파트 아래 현관에서 내 차의 뒷자리로 올라탔다. 아파트 마당이 여전히 눈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조심스레 차를 몰아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기름 계기판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주유 중에 내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꺼내기도 힘들어 시간이 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진동이 끝났다. 확인해보니 큰딸 전화였다. ‘얘가 주유 중에 장난하나, 왜 이래.’ 하고 뒷좌석을 돌아봤다. 근데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딸이 없었다. 급히 전화 걸기 버튼을 눌렀다. 딸 목소리다. “아빠, 지금 어디 있어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얘가 언제 차에서 내렸다는 거지. 차 문을 열지도 않고 공중부양으로, 차 문 틈새로 연기처럼 내렸다는 말인지. “지금, 주유하고 있는데, 너 어디냐?” “청구슈퍼 앞이에요.” 아파트 구내 슈퍼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급히 슈퍼 앞으로 차를 몰았다. “어떻게 된 거니?” 했더니, “내가 타지도 않았는데 그냥 떠나면 어떻게 해요?” 하는 거다. 너 분명히 탔잖아. 뒷좌석에 물건이 많아서 올라가지 않고 그냥 문을 닫고 앞좌석으로 가려고 했는데, 차가 떠나버렸어요. 나는 네가 탄줄 알았지.

 

     나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딸은 분명히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나는 뒤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그대로 안고 유유히 아파트를 빠져나와 주유소 앞까지 운전했다. 내가 혼을 어딘가 빠뜨리고 산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한 번씩 쉰다고 한다. 자기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딸들의 템포를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