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연필로 글을 썼다.
컴퓨터에 글을 쓰기 전에 글의 구도를 잡을 때 나는 연필을 자주 쓴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연필을 잡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중요한 대목 옆에 강조 표시도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색연필을 사용할 때도 있다.
나는 연필을 잡을 때마다 황홀하다.
내가 무엇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그런 단순한 행동도 할 수 없을 때가 곧 오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특히 연필을 잡는다는 것은 나의 전체 삶이 담겨 있는 행위다.
평생 연필을 쥐고 살았으니 말이다.
연필을 잡을 때마다 어릴 때의 장면들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삼선국민학교에 입학해서(당시는 초등학교라 하지 않았다.)
5학년 1학기 때까지 다녔다.
오십년 전 일이다.
그때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가 매일묵상에 그걸 쓸 날이 올 것이다.
당시 연필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
연필의 질은 형편없었다.
흑심이 너무 거칠어서 글씨를 쓸 때는 침을 묻혀야만 했다.
때로는 공책이 찢어지기도 했다.
책받침도 필수품이다.
부자집 아이들의 연필은 달랐다.
간혹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연필을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침을 묻히지 않아도 되고, 연필 끝에 고무가 달려 있었고,
나무도 부드러워서 칼로 깎기도 쉬웠다.
연필 따먹기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저 연필을 보라.
저것은 우주다.
나무와 흑심과 도료와 고무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양은
철판은 우주에서 온 것이다.
저 연필을 내가 손에 쥐고 글을 쓸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이가 들면서 사물에 애착이 깊어지는 것 같다.
그것이 사랑인가, 애착인가.
아마 내가 사물이 되어간다는 무의식이 그렇게 작동되는가보다.
올해도 연필과 더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저 연필은 나 자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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