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 나라(4)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5. 6. 06:00

하나님 나라(4)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를 미래에 속하는 현실성(reality)이라고 선포했다. 이것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이다. 이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대망의 한 전통적 관점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주장은 기본적으로 오고 있는 그의 통치에서 제시되어야 한다는 예수의 이해가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통치와 그의 존재는 불가분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는 아직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75)

 

그대에게 꺼림칙하게 들리는 구절이 위 인용문에 있을 것 같소. 하나님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거요? 하나님이 존재의 과정에 놓여 있다니, 그렇다면 그분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거요? 신학자들의 말은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라는 하소연도 들리는 듯하오.

 

쉽게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완전하지 않소이다. 완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성에 위배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으오. 예컨대 이유 없는 고난에 휩싸이는 사람들의 운명이 그것에 대한 증거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하나님이 무능력하거나, 하나님이 사랑과 정의를 본질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이오. 오해는 마시오. 이런 현상만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성을 의심하는 것도 아니라오. 하나님이 자신을 아직 다 드러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뿐이오. 하나님의 통치가 아직 완전하게 실행되지 않았다오. 그렇다면 그의 존재도, 그의 나라도 아직 완전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옳지 않겠소.

 

위의 설명은 신학적으로 따분한 이야기라서 별로 듣고 싶지 않다면 다 잊어버려도 좋소. 대신 다음의 사실만은 기억해두기를 부탁하오. 하나님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을 닫아두지 마시구려. 그대가 생각하는 그 어떤 하나님도 미래에 우리에게 온전히 자기를 들어내실 그 하나님과 일치하는 게 아닐 가능성이 열려 있소. 우리는 지금 코끼리의 털 하나를 붙들고 있는 형편이라오. 아직 코끼리를 직접 보지 못했소. 코끼리의 흔적만 보고 있는 거요. 코끼리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날 코끼리의 진면목을 알아 볼 수 있듯이 그분이 우리에게 자기를 드러내시는 날 그분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을 거요.

 

2천 년 전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냐, 하는 그대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오. 옳소이다. 그 말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먼저 알아야 할 거요. 그 문제를 오늘 이야기할 수는 없소. 오늘은 주일이어서 그대도 좀 쉬어야 할 거고, 나도 좀 이제 쉬어야겠소. 다음 한 주의 삶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하는 게 좋겠소. 한 가지 질문만 드릴 테니 잠에서라도 생각해보시구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왜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겠소?(2010년 2월21일, 주일)